[즉석 시] 59년 마포의 설 여명

나는 늙어가는데, 너는 젊어지는구나

by 성낙필

오래전 서울의 끝자락,


판잣집과 기와집이 서로의 어깨를 빌려

다닥다닥 군락을 이루던 곳.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투명하고 시린 눈물이었고,

골목마다 풍기던 흙냄새는

수줍은 생존의 땀방울이었습니다.


​어디서든 고개를 들면

온 하늘을 거울처럼 마주할 수 있었던

그때 그 마포의 하늘이,


​어느덧 반백을 몇 해 더 넘겨

이제는 59년 묵은

마음의 비밀번호가 되어

설 아침, 나를 내려다봅니다.




​내가 변한 것일까요, 하늘이 변한 것일까요.

마치 서식지를 이동한 철새처럼

나는 지금 고향의 낯선 여명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숲은 억지로 여름을 붙잡지 않듯

변해버린 고향 하늘도,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도

그저 자연스러운 계절의 흐름일 뿐입니다.


​8년 전엔 "젊어지라" 빌었지만

이제는 "여기까지 잘 왔다"고

이해되지 않는 세월을

그저 가만히 안아주고 싶습니다.


​변함없는 건,

여전히 우리 모두가 각자의 숲에서

가장 붉게 타오르는 안부를 전하고 있다는 것뿐.


그래, 여기까지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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