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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페이커, 세계최초 롤드컵 3연패로 산업 새 지평

by 강준형
T1·페이커, 세계최초 롤드컵 3연패로 산업 새 지평 열다

청두에서 쓴 3년 연속 제패의 기록…‘팬덤·기술·플랫폼’으로 진화한 K게임


2025년 중국 청두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T1이 KT를 3대 2로 꺾으며 사상 첫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중심에는 ‘페이커’ 이상혁(29)이 있었다. 그는 개인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한국은 다시 한 번 e스포츠 종주국이자 세계 산업 표준의 생산지임을 입증했다. 글로벌 시청자 수는 670만 명(중국 제외),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은 29억 달러 규모, 시청 인구는 6억 명에 달한다. 게임은 더 이상 오락이 아니라 경제·기술·문화가 융합된 산업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롤드컵

라이엇 게임즈가 주최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최대 규모 세계 대회. 정식 명칭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나, 한국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롤드컵(롤+월드컵)’이라 부름


한국이 만든 e스포츠 시스템의 완성


1999년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프로게이머, 리그, 방송, 스폰서 구조가 정착되며 ‘프로게임리그’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북미·유럽으로 확산된 글로벌 리그오브레전드(LoL) 생태계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여전히 그 중심이다. 초고속 인터넷, PC방 문화, 체계적 리그 시스템이 결합되며 선수 육성과 팬덤 관리의 선진 모델을 구축했다. T1의 3연패는 이 시스템의 성숙한 결과물이다.


롤(리그 오브 레전드, League of Legends)

• 라이엇 게임즈가 개발한 5명씩 팀을 이루어 상대팀의 기지에 있는 핵심 건물인 넥서스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 기반의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 게임
• 플레이어는 각기 고유한 능력과 역할을 가진 챔피언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해 상대와 전투하며, 팀원과 협력해 공격로를 장악하고 포탑과 억제기를 파괴해 승리를 쟁취
•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e스포츠 대회도 활발히 열리고 있음


장기 경쟁력, 팬덤, 기술이 만든 ‘페이커 신화’


기량의 지속성

페이커의 3연패는 개인의 재능을 넘어 산업 구조와 기술 생태계가 맞물려 이룬 결과다.

우선 기량과 지속성 측면에서 이상혁은 2013년 데뷔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상 자리를 지켜왔다. 그의 여섯 번째 우승은 단순한 운이나 일시적 전성기가 아닌, 세대를 초월한 경쟁력 유지의 증거다. 젊은 선수들이 빠르게 교체되는 e스포츠의 특성상, 그는 지속적 성과의 상징이자 ‘장기 경쟁력’의 모델로 평가된다.


또한 조직 운영의 산업화가 3연패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T1은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 선수 관리, 경기 데이터를 활용한 전력 분석, 코칭 스태프의 체계적 의사결정 시스템 등 프로스포츠 구단 수준의 운영 구조를 갖추었다. 단기 성적 중심이 아닌 지속가능한 시스템 중심 구조가 팀의 일관된 경쟁력을 유지하게 했다.


이와 함께 팬덤의 글로벌 확장도 눈에 띈다. 중국 상하이, 뉴욕 타임스퀘어, 런던 버스 외벽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옥외 광고와 SNS 캠페인은 T1과 이상혁을 향한 팬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팬들은 단순한 관람객을 넘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를 주도하는 참여형 경제 주체로 성장했다. 이는 e스포츠 산업이 ‘팬 경제(Fan Economy)’를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기술 산업과의 접점이 한국 e스포츠 경쟁력의 근간을 이룬다. 고성능 그래픽카드, 스트리밍 기술, 네트워크 인프라 등은 게임 산업의 필수 기반이며, 한국의 PC방 문화와 게이머 생태계는 이러한 기술 발전을 촉진해왔다. GPU 기업 엔비디아가 “한국의 e스포츠와 PC방 문화가 자사 성장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힌 것처럼, e스포츠는 이미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과도 긴밀히 연결된 첨단 기술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K-게임 신화 뒤 '그림자'…제도·인식·균형의 삼중 과제


한국 게임 산업이 콘텐츠 수출 최전선에서 열풍을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독사행성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힌 사회적 인식부터,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미비점, 그리고 e스포츠 리그의 ‘승자 독식’ 구조까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발목 잡는 ‘중독’ 프레임과 잔존하는 제도적 논란

한국 게임 산업은 문화적, 경제적으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게임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접속을 강제로 막았던 셧다운제가 2021년 마침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둘러싼 제도적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사행성 논란을 부추기며 불필요한 규제와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다. 산업의 성숙도에 걸맞은 새로운 진흥과 자율 규제 모델이 절실한 상황이다.


e스포츠, 과열된 팬덤과 경쟁 불균형의 딜레마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e스포츠 리그 역시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특정 팀이나 스타 플레이어에게 팬덤이 과도하게 집중되며 산업의 다양성과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 나아가, 리그에서 특정 팀이 독점적 우위를 장기간 점할 경우, 리그 전반의 경쟁 밸런스(균형)가 무너지고 시청자들의 긴장감과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곧 글로벌 리그로서의 매력 감소로 이어져 장기적인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다.


탁월한 성과를 지속하려면: 구조 개혁이 필수

한국 게임 산업은 세계적인 기술력과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단기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생태계의 활력을 잃을 수 있다. 업계는 물론 정부와 사회 전체가 게임을 ‘미래 산업’으로 인정하고, 제도와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K-게임, ‘플랫폼 국가’로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


한국 게임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현재의 선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플랫폼·데이터·콘텐츠 중심 구조로의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규제와 통제에 매몰되었던 과거 정책 기조에서 탈피하여, 투명성, 공정성, 참여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산업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세계적인 리그와 선수를 배출하는 현재의 강점을 넘어 글로벌 게임 유통 및 플랫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국 e스포츠가 가진 선진적인 리그 운영 표준과 기술 인프라 자체를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아가, 팬덤을 단순한 광고 소비자로 취급하는 대신, 참여 기반의 문화 자산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통해 산업 생태계에 대한 팬들의 기여도와 애정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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