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2시의 혁명가, 강 팀장

by 강준형

​오후 2시. 점심 식사 후의 식곤증이 몰려오고, 사무실의 공기가 눅눅한 솜사탕처럼 나른해지는 시간이다. 모두가 모니터 앞에서 무거운 눈꺼풀과 싸우고 있을 때, 강 팀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집중력 떨어지는 시간에 붙잡고 있지 말고 퇴근합시다. 우리 팀, 지금 나갑니다!”
​그의 선언은 늘 당당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비효율을 혐오하는 리더였다. 평소 팀원들을 무섭게 다그치며 성과와 고과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함이었다. 팀장이 되기 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그는 사장실 문을 두드려 담판을 지었다. 가장 비효율적인 오후 2시를 아예 회식 시간으로 통째로 바꿔버리고, 대신 업무 시간에는 극강의 몰입도를 증명해 보이겠노라고.
​그렇게 시작된 회식은 강 팀장다운 철학으로 가득했다. 오후 3시에 고기로 배를 채우고, 5시면 노래방 문을 두드렸다. 대낮에 나타난 넥타이 부대를 보며 의아해하던 사장님에게 호탕한 웃음으로 서비스를 받아내던 그는, 마이크를 잡은 팀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1절에서 끊지 마라. 간주도 노래다.”
​평소 업무 보고서의 오타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던 날카로운 눈빛은, 노래방 조명 아래서 동료의 서툰 노래 5분을 온전히 기다려주는 깊은 경청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 5분만큼은 고과도 실적도 잊고,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자는 그의 무언의 배려였다. 남들이 퇴근길 정체에 몸을 싣는 6시, 우리는 이미 3차 술집에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마지막 4차 카페에서 차 한 잔으로 하루를 매듭지었다.
​하지만 강 팀장이 회사를 떠난 뒤, 그가 지켜주던 ‘나른한 2시의 기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2시는 꾸벅꾸벅 졸음을 참아야 하는 고역의 시간이 되었고, 회식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비효율의 극치가 되었다. 간주 점프 버튼은 다시 쉴 새 없이 눌렸고, 누구도 타인의 5분을 기다려줄 여유를 갖지 못했다. 강 팀장은 퇴사 후 자신의 성격답게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1인 출판사를 차려 길을 떠났다.
​그가 없는 사무실에서 나른한 오후 2시를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고독했다. 지독하게 그리운 건 일찍 끝나는 술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기꺼이 사장실 문을 두드려 방패가 되어주었던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타인의 간주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던 그 시절의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쯤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 진동이 정적을 깨뜨렸다. 화면에 뜬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멎어있던 오후 2시의 공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강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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