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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Nov 29. 2023

비는 모난 걸 보여준 적이 없으시다​

약자에게 관용을 베푼 인물 이야기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사람이 있다. 대부분 사람이 그럴 것이다. 강자한테 강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약자한테 강하기는 쉬워도 관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기]에는 무수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는 관용을 베푼 사람이 제법 있다. 

   먼저 김수열 시인의 <파문>을 감상해보자.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한 번도/모난 걸 보여준 적이 없’다면 혹시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비는

   잊지 않고

   원만한 것들을 손수 가지고 오신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사는 게 이런 거라고     

   지상의 못난 것들에게

   비는 

   한 번도

   모난 걸 보여준 적이 없으시다     

                        <파문>, 김수열빙의(실천문학사, 2015)          


  앞글에서 원앙의 인물됨을 살펴보았다. 원앙은 위 사람이나 권력 있는 자에게는 원칙주의자였으나 자기보다 아랫사람은 관대하게 대했다. 양왕의 청탁을 받고 원앙을 죽이려는 자객의 말에서 원앙의 관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원앙이 태상으로 오(吳)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다. 오 왕은 원앙을 장군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자 죽여 없애려고 도위 한 사람에게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원앙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한편 이에 앞서 원앙이 오나라 재상으로 있을 무렵, 그의 속관 종사(從史) 한 사람이 원앙의 시녀와 밀통한 일이 있었다. 그때 원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는 체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대우해주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종사에게 말하였다. 


  “재상께서 자네가 시녀와 밀통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신다네.” 이 말을 듣자 그는 고향으로 달아났다. 그것을 안 원앙은 직접 말을 달려 뒤쫓아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 시녀를 그에게 보내 주고 종사를 전처럼 지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원앙이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포위되어 감시당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교위사마(校尉司馬)가 되어 있던 종사가 원앙을 감시하게 되었다. 교위사마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와 물건들을 몽땅 팔아 독한 술 두 섬을 샀다. 마침 날씨가 무척 춥고, 사졸들은 굶주리고 목말라 있었다. 그런 사정에 교위사마가 술을 내주자 사졸들은 모두 취하도록 마시고 잠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마는 원앙을 깨워 말하였다.


  “어서 달아나십시오. 왕은 내일쯤 상공을 죽일 것입니다.” 원앙은 이런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사마가 답했다. “소인은 전에 종사로 있던 사람으로 상공의 시녀와 밀통했던 자입니다.”

  그러자 원앙은 놀라며 거절하였다. “그대는 양친이 살아 계시지 않는가? 나로 인해 그대에게 폐 끼칠 생각은 없네.” 종사는 재촉하였다. “상공께서는 달아나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도망쳐 양친을 피신하도록 하면 될 텐데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사마는 칼로 군막을 찢어 벌리고 원앙을 인도하여 취해 잠들어 있는 사졸들 틈을 누비며 서남쪽 모퉁이를 빠져나온 다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초나라에 부임한 원앙은 경제에게 몇 번씩 상소를 올렸으나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었다. 그는 결국 병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서민들과 어울리면서 투계와 투견 놀이를 즐기면서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낙양의 협객인 극맹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원앙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를 보고 안릉의 어느 부자가 원앙을 비난했다.     


  “극맹이란 자는 투전꾼이지 않습니까? 재상을 지내신 분이 왜 투전꾼을 만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원앙이 대답했다. “극맹이 투전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장례에 참석한 조객의 마차가 천 대를 넘었다. 그걸 보더라도 그의 사람됨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인데 그런 때에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이라면 뭇사람 중에서 계심(관중의 용맹한 협객)과 극맹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려울 때 부탁하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불효를 저지른다거나 있으면서도 없다고 하는 몰인정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대는 언제나 몇 명의 호위병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위급한 때에 그런 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씨춘추]에는 평소 관용을 베풀어 위기 순간에 도움을 받은 진목공(秦穆公)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수레를 몰다가 수레가 부서졌는데, 수레를 끌던 말 한 마리가 달아나자 어느 시골 사람이 이를 잡아갔다. 목공이 몸소 말을 되찾으러 갔다가 시골 사람이 기산(岐山)의 남쪽 기슭에서 말을 잡아서 막 먹으려는 모습을 보았다. 목공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준마의 고기를 먹고서 빨리 술을 마시지 않으니, 나는 말고기가 그대의 몸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오.” 그리고는 빠짐없이 두루 술을 마시게 하고는 돌아갔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한원(韓原)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진(晉)나라 군대가 이미 목공의 수레를 포위했고, 진량유미(晉梁由靡)는 목공 왼쪽 곁말의 고삐를 이미 낚아챈 상태였다. 진나라 혜공(惠公)의 거우(車右)인 노석(路石)이 창을 휘둘러 목공의 갑옷을 치니, 그의 갑옷에서 떨어져 나간 비늘이 이미 여섯 조각이나 되었다. 이때 기산의 남쪽 기슭에서 말고기를 먹었던 시골 사람을 비롯한 그의 족속 3백여 명이 목공을 위하여 그의 수레 아래서 힘껏 싸웠다. 마침내 무리가 진나라 군대를 이기고 혜공을 잡아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시경』에서 말하는 바, “군자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올바르게 함으로써 덕을 행하고, 천한 사람에게 임금 노릇을 하려면 관대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다하게 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어찌 덕을 행하고 백성을 아끼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덕을 행하고 백성을 아끼면 백성들이 그들의 임금을 어버이로 여기고, 모두가 그들의 임금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이 투월초의 난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총희(寵姬)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총희는 왕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한 여인을 말한다. 밤이 되도록 주연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왕의 총희가 부르짖었다. 


  “지금 누가 자신의 몸을 건드린 자가 있는데, 그자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왕에게 고했다. 감히 임금의 여자를 성추행한 것이다. 범부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일인데 하물며 왕의 여자를 건드리다니, 발각되는 날에는 살아남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장왕은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제지하고는 오히려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갓끈을 끊어버리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고 여흥을 다한 뒤 연회를 마쳤다.     


  3년 뒤, 초나라가 진(晉)나라와 전쟁을 하였는데, 한 장수가 선봉에 나서 죽기를 무릅쓰고 분투한 덕에 승리하였다. 장왕이 장수를 불러 물었다. 

  “특별히 잘 대우해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토록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느냐?”

“3년 전 연회 때 술에 취하여 죽을죄를 지었으나 왕께서 범인을 찾아내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해준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관용은 유연성과 관계있다. 원칙과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유연성 있는 관용이 설득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재상의 시녀와 밀통한 부하라면 엄하게 다스렸을 법도 한데, 원앙은 유연성을 발휘하여 그를 용서했다. 왕의 말을 잡아먹은 경우는 어떠한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목공은 오히려 술을 사 먹이는 관용을 베풀었다. 유연한 태도는 감정적인 자극에 휩싸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도록 한다. 


  『역사에서 발견한 CEO 언어의 힘』(박해용 저)에는 유연성이 돋보이는 간디 이야기가 나온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도하여 마침내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는 정치적 독립 못지않게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섬유 생산을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인도는 대부분 영국에서 들어오는 면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간디는 이러한 경제적 종속이 계속되는 한 진정한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어느 날 간디가 면섬유의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답답한 소리 그만 집어치우고 차라리 스스로 목이나 매시오!” 그러자 간디는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선 우리가 목을 매는 데 필요한 끈을 생산한 다음에나 할 일이지요.” 

  어떤가?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에 화를 낼 법한 상황에서도 유머로 받아치는 간디의 유연성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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