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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Jul 15. 2024

옥수수 단상

찰옥수수 맛있게 삶는 팁 

옥수수 삶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 여름 냄새다. 옥수수 언제 다 되냐고 부엌을 서성이던 아이에게 갓 쪄낸 옥수수를 후후 불어 대궁이에 젓가락 하나 꽂아 전해준다. 맛있다고 난리다. 아침에 밭에서 수확해 온 옥수수로 껍질 벗겨 바로 찌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싱싱한 옥수수 한 망 20개를 한꺼번에 능숙하게 쪄내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대견했다. 살림을 모르던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무수한 시간이 필요했다. 





대용량 가공시절


옥수수에 한이 맺혔던 시절이 있다. 아이가 어렸을 적 자식 입에 들어갈 먹거리에 초집중했을 시기. 1년 동안 쟁여놓고 간식으로 먹을 옥수수를 50개씩 100개씩 사서 껍질 벗겨 공장처럼 삶아댔다. 옥수수 좋아하는 동네 엄마들과 강원도에서 직배송 공동구매해서 한 집에서 삶아 나누기도 했다. 다 삶은 옥수수는 재빨리 냉동실에 넣어 꽝꽝 얼렸다. 갓 찐 옥수수를 바로 냉동한 후 먹고 싶을 때 살짝 찜기에 올리면 갓 찐 옥수수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옥수수를 특별히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 영양간식을 위해 대용량으로 양식을 쟁여놓던 그 시절. 2살 터울 어린아이 둘 키우던 육아 집중기에 고될 법도 했을 텐데 내 새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본능이 컸을까, 음식에 대한 열정이 본능만큼 폭발했었다. 아이들 10여 년 키우고 나니 이제는 위장도 줄어들어 그때만큼 먹을 수도 없고 아이들도 적당히 맛있게 먹고 다른 먹거리를 찾기에 그때만큼 쟁여놓지도 않는다. 냉장고 칸칸이 들어있던 옥수수는 추억이 되었다.  


고향집의 옥수수

고향에선 매년 옥수수를 심었다. 창고 처마에 종자로 쓸 짧고 붉은 옥수수가 잘 말려져 있었고, 할머니와 부모님은 매해 씨앗을 사는 대신 그 옥수수를 두 세알씩 밭에 심어 그 해에 먹을 옥수수를 수확했다. 할머니는 옥수수를 특별히 좋아하셨는데 삼성당이라는 감미료를 달달하게 넣고 달콤한 옥수수를 쪄주셨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짧고 찰진 토종옥수수를 여름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당연했는데, 직장 생활한다고 독립하며 내가 먹을 음식 내가 만들어먹으면서부터는 옥수수 하나에도 큰 수고로움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옥수수 삶는 법도 몰랐다. 엄마 택배에는 껍질까지 벗겨진 갓 딴 옥수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옥수수를 상온에 오래 두면 딱딱하게 굳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몇 주씩 방치해 뒀다 버리기를 일쑤. 엄마가 냉동실에 바로 넣어뒀다 삶으면 된다고 하셔서 냉동실에 보관해 뒀건만, 삶아도 삶아도 돌덩이처럼 딱딱해서 이것도 못 먹었다. 아마도 며칠 상온에 묵혔다 냉동실에 넣어서 더 딱딱해졌으리라. 이후로는 옥수수는 택배에 부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농사학교 다니던 시절 알게 된 것들

이십 대 중반에 다녔던 귀농학교에 시판 옥수수 종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흔히 알던 옥수수 색깔이 아니라 선명한 분홍색 또는 파란색이었다. 농약으로 코팅된 씨앗. 판매되는 옥수수는 품종과 수확량이 중요하기에 매년 종묘회사에서 나온 씨앗을 사서 심어야 했다. 그제야 내 고향집 옥수수가 토종 종자임을 알아차렸다. 


옥수수는 거름을 많이 줘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전문용어로 '다비성' 식물이라고 한다. 봄철 심기 전에 충분한 거름을 시비해 주었다. 또 심는 시기에 따라 수확하는 시기가 달라지는 작물이라 한꺼번에 수확하고 갈무리하느라 애쓰지 않으려면 적절히 간격을 두고 심는 방법도 있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는 채소의 세계. 


옥수수 제대로 삶는 법 또한 귀농학교에서 알게 되었다. 옥수수 수확 후 같이 껍질을 벗기고 농사학교 식구들 먹을 옥수수를 대용량으로 쪘다. 여기저기서 서로 들은 정보들을 한꺼번에 적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삶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씨앗 심어 거둔 첫 옥수수라 더 맛있었다. 



찰옥수수 맛있게 삶는 팁


1. 수확 후 당일 삶는다.

옥수수는 따온 즉시 삶아야 한다. 하루 안에 삶으면 제일 좋고, 안 되면 수확한 다음 날에라도 삶으면 좋다. 오래 두면 공기 중에 수분이 말라서 점점 단 맛은 없어지고 딱딱한 옥수수가 된다.


2. 속껍질 한 두 장은 남긴다. 

껍질과 수염을 제거하는데 제일 마지막 속껍질 한 두장은 남겨서 찌면 더 달다. 귀찮으면 이 과정은 패스하고 그냥 껍질을 다 벗겨도 좋다. 아이들과 함께 껍질 까기 놀이를 해도 좋다. 나는 한 사람당 5개씩 까지 할당량을 주었다. 


3. 물에 오래 씻지 않는다.  

껍질 벗긴 옥수수를 흐르는 물에 살짝만 헹군다. 유기농 옥수수의 경우 나는 껍질 벗셔 바로 찜통에 넣기도 한다. 물에 오래 담가두면 당분이 빠질 수 있다. 


4. 찜기에서 30분 정도 찐다. 

찜솥에 물 받아 김이 오르면 찜기 위에 옥수수를 찐다. 딱딱해진 옥수수는 물에 푹 담가서 삶기도 하는데, 갓 딴 옥수수는 스팀으로 찌는 게 가장 좋다. 압력솥이면 더 쫀득쫀득하게 쪄지는데, 그냥 큰 찜냄비도 괜찮다. 나는 큰 찜솥이 있어서 한 번에 20개 정도의 껍질 깐 옥수수를 넣을 수 있다. 30~40분 찌면 다 익는다. 


5. 따로 감미료를 넣지는 않는다.

갓 딴 옥수수를 찌면 삼성당 등의 감미료가 필요 없다. 몸에도 그리 유익하진 않기에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찐다. 시중에 파는 달달한 옥수수는 거의 인공적인 단맛을 주는 감미료를 넣고 찐 것. 가급적 감미료 없이 당일 수확 당일 쪄 먹자. 


6. 삶은 옥수수를 밀봉하여 냉동실에 얼린다. 

다 익은 옥수수를 바로 먹으면 제일 맛있지만, 양이 너무 많을 때는 삶은 옥수수 한 김 식혀 봉지에 밀봉한 다음 바로 얼려두는 방법이 있다. 연중 보관해 두었다가 옥수수가 먹고 싶을 때 김 오른 찜기에 살짝 쪄내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 아침식사도 이런 방법으로 찐 옥수수를 주는 중. 하지만 예전처럼 어마무시한 대용량으로 저장하진 않았는다. 적당한 양을 제 때 먹는 게 가장 맛있기에. 




찰옥수수 농사짓는 동네 아저씨가 옥수수 딴다는 소식에 바로 한 망을 주문했다. 친환경으로 농사지었음에도 한 망 20개에 만원. 농산물 가격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는 좋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서글프다. 어쨌거나 감사한 마음으로 한 망 가져와서 바로 삶았다. 식구마다 손으로 잡고 서너 개씩 먹고, 이웃집에 나누니 금방 없어진다. 


다음 새벽에 수확하신 옥수수를 샀다. 껍질을 까서 다시 삶았다. 이번에는 냉동실에 10개 정도는 얼려두었다. 제철 농산물을 먹을 있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제철 옥수수는 먹었고, 다음 순서는 제철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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