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아. 다시 배우면 되지"

시험을 앞둔 아이에게 들려준 말

by 샨티

백점에 대한 열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생도 월말평가 시험이 있었다. 깡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내일이 시험이니 준비하라 이런 안내는 없었다. 아이가 시험을 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부모님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등교하면 '자 오늘 시험 본다'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 회색 빛깔 종이의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타격감 1도 없이 시험을 봤고, 초등 고학년쯤 되어서는 시험 본다는 소리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미리 복습하지 않아도 그때는 기억력이 좋았던지 100점도 받고 90점도 받고 그랬다. 100점을 많이 받은 날엔 아빠가 용돈을 만원씩 주시곤 했다.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받은 귀한 돈이었다. 강화물이 강력해서였을까 시험을 잘 보고 싶었다. 백점을 받고 싶은 마음에 두근대며 시험을 보곤 했었다.


초등학교까지는 귀여운 설렘이었다.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에서 중고등학생이 되는 것은 예고도 없이 입시를 향한 열차를 타는 모양새와 같았다. 출구도 없는 그 기차에서는 분기마다 시험이 치러졌고 점수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졌다. 하나라도 틀릴까 봐 두려웠고 도착역까지 높은 성적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나쁜 성적으로 졸업한 것도 아닌데 그 시절 시험에 대한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뿌연 회색 도시를 걷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다가온다.


"틀려도 괜찮아. 모르면 배우면 되지"

그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틀리면 한 문제당 1대'라는 끔찍한 신체 처벌까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모르니까 학생이고 학생은 배우면 된다, 틀려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어른이 1명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까? 내 주변에는 열심히 하라고 사기를 북돋아주는 분들은 있었어도, 틀려도 아무 일 없고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의 초등학생에서는 시험을 치고 등수를 나누는 평가방법을 쓰지 않는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단원평가 정도를 본다. 학군지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단원 평가 보기 전날에도 전 과목 복습을 하며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아이들에게 시험을 위해 복습하라는 이야기를 아직은 해본 적이 없다. 인간 공통의 잘하고 싶은 감정선이 있는 모양인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아도 틀리기 싫고 가능하면 100점을 받고 싶은 아이에게 다만 이렇게 말해줬다.


"그동안 배운 것들 생각하면서 천천히 문제를 읽고 풀어봐.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공부거든."

"그리고 틀려도 괜찮아. 다시 배우면 되지."


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틀렸는지 맞는지에 너무 집착해서 문제가 틀렸다는 표시 자체를 강박적으로 거부하는 아이도 있다. 배우는 학생이 어찌 동그라미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괜찮아, 틀려도. 다시 배우고 확실히 알면 되는 거야"

아이를 토닥이며 말해준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색연필로 색칠해서 다시 확인해 보는 회복탄력성을 가진 아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면서.


부모가 되니 어린 시절 쉽게 넘겨버린 마음들을 다시 짚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가 1살 때는 내 1살이 연상되고, 아이가 10살이 되니 내 10살이 따라온다. 남녀노소 누구나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백점 못 받으면 인생 끝장날 줄 알았던 청소년의 나에게, 인생은 생각보다 많이 길고 실패해도 다시 배우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주어진다고 꼭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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