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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16. 2016

바보야,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스토리야.

리처드 파넥의 <4퍼센트 우주>를 지루하게 읽었다. 아니 과연 다 읽었는지 확신도 서지 않는다.  머리맡에 두고 침대에 들 때마다 책을 펼쳐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다 포기하고 다시 집어 들기를 반복했다. 한 장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나간 페이지가 머릿속에 남는 것도 아니었다.


이 여파로 한 동안은 과학책을 잡기가 어려울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리처드 파넥의 <4퍼센트 우주>

이 책은 암흑물질을 다루는 책이지만 책의 중반부까지 암흑물질에 대한 소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경쟁과 야사를 다룬 지루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계속된다.


어떤 의미 있는 이론들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보여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일기장처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회전문처럼 돌고 돈다.


물론 책 후반부에 가더라도 암흑물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암흑물질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빨리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책 내용이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깨달을 수 있다. 물론 그 깨달음이 꼭 이 책에서 기인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힘겹게 이 책을 잡고 있는 동안 내겐 이런 의문이 가끔 떠 올랐다.


왜 이 천문학자들, 우주론자들의 지루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어야 하는 걸까?


이들의 지루한 삶이 나의 따분한 삶으로 옮겨 오는 것 같았다.


어쩌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주장한 이론이라는 것도 역사 속에서만 남고 다른 이론으로 또 대체될 것이다. 그들의 이론은 잊혀지겠지만, 그들이 힘겹게 지나온 길은 우주과학의 역사 속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할 것이다.


독자들은 이 지루한 이야기들을 좋아할까?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도 대단하고 출판한 출판사도 존경스럽다. 그러나 거기 까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럽게 느껴지는 게 하나는 있었다. 이 지루한 책을 쓴 작가를 비롯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가능성을 탐구하고 탐험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교수 자리를 제공했다는 것도.


나의 연구직 생활은 어땠던가? 과연 지적인 탐구가 있기는 했던가? 대부분은 단순한 분석이나 실험에 머물렀다. 서론( introduction)을 쓰기가 힘들었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웠다. 실험은 있었지만 스토리가 부실했다. 내용은 풍부했지만 상상력은 늘 부족했다. 사람들은 지루한 데이터가 하는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것은 의미 없는 반복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리처드 파넥의 이야기에는 스토리가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스토리가 있다. 이 지루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발견과 함께 새로운 스토리의 소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에는 결과만 존재한다. 외국의 누가 좋아하더라는 남들의 평가만 존재한다. 철저하게 타자화된 객관적 평가만 존재한다. 평가는 언제나 메마르고 상상력이 자랄 토양은 척박하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만드는가?


남들을 따라 하는 것, 남들보다 더 열심히 분석하고 밤늦게까지 연구해서 따라 하는 것,  그리고 또 따라 하는 것 그것 이외에 뭐가 더 있었을까?


자동차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고 스마트폰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기술이 무슨 가치를 만들어 낼지에 대한 스토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아무런 과학사를 만들지도 못했고, 스토리를 재미있게 만들지도 못했고, 존경할만한 과학자를 가지지도 못했다. 우린 여전히 실리를 따진다.


세상은 이미 물건으로 넘쳐난다.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실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또 하나의 스토리, 다른 사람들의 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리만을 추구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과학의 스토리를 만들어가지 못했을까? 연구는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큰 틀에서 알기나 했을까?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데 왜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것일까? 여전히 산업시대의 성과주의에 목메고 있는 것은 아닌지.....  GDP 대비 가장 높은 R&D 투자 비율 속에서도 빈곤한 창의력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오늘날 우리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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