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사막은 다시 울창한 숲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점진적으로 변할까? 정기적금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듯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바로 답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量)적인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강하고 질(質)적인 변화는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대학교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는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진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기후변화나 운석 충돌, 화산 폭발과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생태계의 평형이 깨어지면 순식 간에 종이 소멸하거나 다른 종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를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 Theory)이라고 한다.
단속 평형설은 진화의 중간단계의 종이 왜 발견되지 않는 지를 잘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논리적인 약점은 계속 남는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 돌연변이는 어째서 바람직한 괴물만을 만들었을까? 2) 파충류에서 새로 진화했다면 다리는 어떻게 날개가 되었나? 3) 새로 태어난 괴물은 누구와 짝을 이루었을까?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속 평형설은 현대에도 가장 큰 세를 얻고 있는 진화 이론이다.
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분자 진화설도 단속 평형설을 지지한다. DNA의 변화가 유전자에 축적되지만 표현형으로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설 때가 오면 전혀 다른 단계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애벌레가 변태하여 나비가 되는 것처럼 이 도약은 극적인 변화이다(1).
양자역학에서도 점진주의는 부정된다. 원자에 에너지를 가한다고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점진적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증가할 때까지는 변화가 없다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계단을 뛰어 오르 듯 단위량의 정수배로 증가한다. 이런 양자화된 도약을 ‘퀀텀 점프’라고 한다. 퀀텀 점프가 일어나는 지점을 임계점(critical point), 이런 현상을 임계전이(critical transition)이라고 한다.
다른 자연과학 이론과 같이 이 퀀텀 점프도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데 종종 인용된다. 임계전이의 대표적인 예로 전염병 확산, 폭동, 눈사태, 동식물의 멸종, 사막화, 인기 연예인의 몰락 등이 있다. 이 현상들은 모두 파국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가 갑자기 모든 일이 일어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임계전이가 일어난 후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사하라 사막을 다시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러니 임계전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 예방이 최선이다(2). 그런데 이게 보이지 않으니 쉽지가 않다. 과학자의 비명 소리가 정치가에게는 한가한 놀이로 비치는 이유이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세상은 그리 점진적이지 않다. 우리나라가 성공 신화를 써가는 동안 노력한 만큼 보상 받았다. 그런데 이게 더 이상 여의치 않다. 학교, 회사, 정부에서 모두들 다 같이 노력하지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삶은 더 피폐해진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점진주의를 깊게 신봉하는 사회이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서구사회의 믿음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를 기대한다. 현실의 찌질함은 나의 나약함과 게으름의 결과일 뿐이다, 라는 개발시대의 믿음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아직도 미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 열심히 했으니 인정해달라"고 외친다. 질적인 도약(Quantum Leap)이 필요할 때 노력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애벌레가 나비가 될 때처럼 가끔 퀀텀점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원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실은 퀀턴 점프이다.
(1) 최근의 진화론 (신다윈주의, 현대종합이론, 단속평형설, 분자진화설, 형질발현 단계설 등)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5
(2) 메르스, 임계전이 그리고 계산역학, 조규환, 부산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