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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pr 05. 2017

청춘이 맺어지는 찻집

하동의 아름다운 정원, 매암다원

경남 하동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도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하동에는 그것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동군 악양면, 파출소 맞은편 매암다원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는 비밀의 다원


물론 이곳을 제가 알아서 방문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곳에 사는 지인과 함께라서 가능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19번도로 벚꽃길에서 평사리를 끼고 드라마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 방향으로 접어듭니다. 평사리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악양면 정서리가 나옵니다. 여느 시골 면소재지처럼 이곳도 길은 좁고 한적합니다. 농협주유소 왼편에 매암다원을 알려주는 작은 간판이 있을 뿐이죠. 초행길이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차나무, 매화나무, 그리고 아담한 다원과 정원이 반겨준다.


주유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다원으로 접어들면 일제시대의 건물이 먼저 손님을 맞이 합니다. 다원 주인장의 설명으로는 90년이 더 된 건물로 지리산 임업관리소 소장의 관사로 사용되었다네요. 이 건물을 보니 제 어린 시절 기억이 자연스레 소환됩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제 고향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매암다원은 1926년 일본 규슈대학에서 지리산 산림을 조성하기 위한 수목원에서 출발했습니다. 2만여 평의 대지위에 40여 년 동안 유기농 방식으로 차나무를 가꾸어 왔다고 합니다. 주인장은 다원에 차 박물관을 세우고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매암다원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합니다. 아직 모르신다고요? 그럼 반드시 들러야 할 곳입니다. 한적한 시골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야생의 지리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녹차를 좋아한다면 말이죠. 날씨가 받쳐준다면 기가 막힌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매암다원의 정원은 과하지 않습니다. 작고 아담하고 적절한 수준의 조경만 딱 맞게 했습니다. 과하지 않고 뻔하지 않은 뭔가를 기대한다면 이곳일지 모릅니다. 얼마나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느냐가 좋은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너무 과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곳 주인장은 절제의 미덕을 아는 듯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아이들의 의자가 다원에 소품으로 소환되었다. 누구의 의자였을까?



지리산이 만든 명품 야생차


녹차 하면 단연 보성이 유명합니다. 보성의 녹차밭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성지라고 불립니다. 안갯속에 잠긴 녹차밭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듭니다. 작가가 아니라도 작품이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죠.


제가 녹차에 대한 조예는 없습니다. 하동 사람들은 하동은 야생차, 보성은 재배차라고 말합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제가 알지는 못합니다. 마케팅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하동의 녹차밭은 좀 더 야생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산 중턱에 바위를 둘러싸고 아무렇게 자란 녹차나무를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하동은 지리산 자락에 있어 일교차가 큽니다. 이런 자연조건은 필연적으로 식물의 조직을 치밀하게 하고 맛을 좀 더 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차의 맛과 향이 뛰어날 수 있는 자연조건입니다. 섬진강과 지리산의 영향으로 적당히 내리는 비와 좋은 토양, 남쪽의 따뜻한 기후는 차 생산을 위한 최적지라고 불릴만합니다.


아름다원 다원 너머로 산자락에 걸린 마을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하동 녹차의 역사는 신라 흥덕왕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시절에 대렴공이라는 분이 중국에서 차씨를 들여와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석문마을에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지역으로  한국기록원에 등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동은 녹차의 역사만큼이나 녹차와 관련된 문화와 사업체들이 번성했습니다. 녹차밭을 배경으로 하는 다원들도 여럿 생겨났습니다. 녹차밭을 끼고 펜션들도 즐비합니다.


매암다원에는 차 박물관도 있습니다.  한국의 차문화와 차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녹차에 대한 이해도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죠.


하동의 야생차나무가 인공조형물과 조화를 이룬다.



차 한 잔에서 우러나는 삶의 여유


신기하게도 제가 갔을 때는 주인장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알아서 물을 끓이고 차를 타 마십니다. 입구 쪽에는 수금 상자가 있어서 손님들이 알아서 계산하고 나갑니다. 1인당 2천 원. 이렇게 해서 다원이 유지가 될까, 괜한 오지랖도 자연스레 생겨나는 걸 어쩌지 못했습니다.


차 테이블마다 다기와 다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지인은 능숙하게 물을 끓이고 찻물을 내립니다. 차의 색깔은 약간 노르스름한 색을 띱니다. 여러 곳에서 차 맛을 봤지만 이 집 차가 제 입맛엔 잘 맞았습니다. 차를 타주는 분의 영향도 컸겠지만, 발효되어서 그런지 부드러운 향과 맛이 아주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제가 차 맛을 잘 모르지만 좋은 사람과 좋은 풍경과 함께라면 차 맛도 좋다는 걸 느끼긴 했습니다. 갑자기 내린 비도 차 맛에 영향을 끼쳤겠죠.  


매암다원에서는 우리 고유의 수제 덖음 방식으로 차를 만든다고 합니다. 사실 전 이 방식이 어떤 방식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딱 들어봐도 고생스러울 것 같은 느낌은 듭니다. 매암다원 홈페이지에 나온 방식은 이렇습니다.

고르기를 마친 찻잎은 참나무 장작불에 달군 백동 솥에서 덖음 하여 멍석 위에서 일일이 유념한다. 여기서 '유념'은 일일이 찻잎을 손으로 비비는 과정을 이른다.  이렇게 비벼진 찻잎은 전통 온돌 황토방에서 건조한다. 이 과정을 마친 찻잎은 가양 처리를 한다. 가양 처리는 백탄 숯불에 달군 솥에서 찻잎에 남은 마지막 수분을 날려 보내는 과정이다. 이런 복잡한 공정을 얼마나 정승스럽게 하느냐가 차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인자로 작용한다.





청춘이 맺어지는 다원


에코맘 오천호 대표는 이 찻집을 시골처녀 총각들을 이어주는 마법의 성으로 묘사합니다. 그 역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창업을 했죠. 지리산과 섬진강, 80만 평의 넓은 평사리에서 나는 농산물로 아기들의 이유식을 만듭니다. 그래서 전국으로 배달하죠. 에코맘에도 젊은 청춘들이 많은데, 매암다원을 거쳐 여러 쌍이 결혼을 했다죠.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모두 매암다원 때문이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원이 있는 곳을 그냥 시골이라 할 수는 없겠죠. 도시 처자들이 이곳 하동에 정착하는 두려움도 차 향기 속에 묻혀버렸는지도 모르죠. 아마도 도시에는 없는 또다른 뭔가가 하동에는 있는 것이겠죠. "지리산 행복학교"처럼 말입니다.


다음에 꼭 그 이유를 물어볼 예정입니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찻 잎을 띄운 술잔을 기울이며, 차 향기 속에 밤을 지새우며 말입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멀리 두면 켭켭이 쌓인 지리산이 마음을 잡는다.



매암다원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계속 지켜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지금까지도 숱한 개발의 유혹을 견뎌 왔으니 말이죠. 그런데 동네 주변에 확장되고 있는 도로를 보니 이곳의 풍경도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여느 곳처럼 이곳도 개발의 물결을 그리 오래 비켜나 있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여유가 있어서 이곳에 가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면 삶의 여유가 생깁니다. 여유마저도 가만히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찾아야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차 향기 속에서 시간이 멈췄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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