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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pr 04. 2017

봄이 오면 하동 녹차밭으로 떠난다.

드론으로 바라본 하동의 녹차밭

아마추어 카메라 꾼에게도 겨울은 유난히 길다. 색채가 없는 자연을 모니터에 옮기는 일은 신나지 않는다. 그래서 유난히 봄을 기다린다. 긴 겨울 동안 프로야구 선수들처럼 체력훈련을 하기도 한다. 나는 새롭게 날으는 카메라를 스토브리그에서 영입했다. 카메라 성능이 그나마 쓸만하다는 드론, DJI 팬텀 4 프로이다. 색채가 없는 풍경이지만 열심히 드론을 조련했다. 다가오는 색채의 향연이 내 모니터 속에 들어오는 것을 꿈꾸며....


아쉽게도 봄은 두 가지로 다가온다. 회색이 녹색으로 변하는 자연의 경이와 함께 그 모든 색채를 가리는 뿌연 미세먼지로 온다. 파란 하늘과 파릇한 들판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번 하동 여행도 그랬다.


팬텀4 프로가 찍은 녹차밭의 부감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이삼일은 더 기다려야 만개한 벚꽃을,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하동에는 섬진강을 따라 만개한 벚꽃만큼 나의 마음을 끄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쌍계사로 가는 길은 지리산의 험준한 자락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화개천을 따라 양 옆으로 벚꽃나무가 자라고 있고, 길을 따라 산비탈에 커다란 지내등딱지로 만든 계단같은 수많은 녹차밭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야생의 차나무들이다. 


화개천 변의 계단식 녹차밭


차나무 밭 사이로 군데군데 분위기 있는 다원이 있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차향기는 예술인들을 이 지리산 자락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차밭을 끼고 예술가들의 공방이 자리 잡고 있고, 차문화센터에서는 하동의 야생차에 대한 역사를 둘러볼 수도 있다. 여유가 된다면 다원을 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묶는 것도 좋다. 가라앉은 밤공기와 함께 차 향기가 문틈 사이로 스며든다. 


화개천을 따라 있는 녹차밭


산비탈에 위치한 야생 차나무들은 매끈하지 않다. 드문드문 바위를 타고 돌아 기이한 형상을 만든다. 옆에서 볼 땐 잘 몰랐지만, 하늘에서 본 녹차밭은 한 땀의 땅도 이용하고자 하는 농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추운 겨울은 찻잎을 갈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계절의 하동은 푸른색과 붉은색이 함께 상존한다. 


남해에는 계단식 논이 남아 있다면 이곳 하동에는 산의 등고선을 따라 지네 등딱지처럼 늘어선 차나무들이 있다. 그곳에는 유구한 차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차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차 향기 속에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아름다운 매암다원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에는 지금쯤이면 벚꽃들이 만개했을 것이다. 그에 맞춰 화개장터에서는 영남과 호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면 나는 다시 하동을 찾는다. 녹차향 그윽한 다원에 앉아 벗과 차 한잔을 두고 찰나처럼 지나가는 봄을 붙잡는다. 


봄이 더 익기 전에 하동의 녹차밭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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