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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r 06. 2017

늙은 사과나무

노인의 마지막 벗이 되었다.


부잣집은 과수원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주변의 사과나무는 모두 컸었다. 품종도 오히려 더 다양했다. 홍옥, 국광, 부사, 인도, 골든 딜리셔스 등..., 쌔그라운 홍옥이 가장 많았고, 크고 과육이 단단한 인도와 껍질이 두꺼워 추운 겨울날 먹기 좋은 국광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과수원을 가진 집은 모두 부잣집이었다.

어느 순간 주변에서 과수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도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 사과나무는 나이가 들었고, 아버지도 연세가 들어 더 이상 농사일을 하기엔 버거워졌다. 어느 날 그 사과나무는 베어졌다. 주변 과수원의 사과나무도 베어졌다. 새로운 품종이 도입되었고, 또 새로운 재배방법이 도입되었다.


나와 함께 해왔던 사과나무는 나이가 들었고 세월의 상처만큼 뒤틀렸고, 소비자의 기호가 바뀌고 생산성이 떨어지자 빠르게 사라졌다. 그게 일상처럼 느껴졌고, 그게 발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그 나이 든 사과나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얀 사과꽃이 필 때면 오래된 과수원은 양탄자로 변한다.



늙은 사과나무를 위해 준비된 자리는 없다.


익숙하던 나무가 보였다. 차창 밖으로 늙은 사과나무가 보였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늙은 사과나무가 보였다.  급히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세월의 풍상을 그대로 받아낸 듯한 늙은 사과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버지가 한 말씀하셨다.

"아마도 주인은 늙은 노인일 게다. 새로 나무를 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이전의 사과나무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다."


목소리에선 여운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 얼굴을 바라봤다. 사과나무처럼 세월의 풍상이 얼굴의 주름으로 야윈 몸으로 남은 게 보였다. 아버지는 그 사과나무를 베어낼 때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갈고 가꾸던 논을 포기하셨을 때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늙은 사과나무는 노인과 함께 늙어 간다.


30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늙은 사과나무. 사과나무도 나이가 들면 과일이 잘고 맛도 떨어진다. 그러니 사과나무가 지천인 청송에서도 이렇게 오래된 사과나무를 마주치는 게 흔치는 않다.


하얀 사과꽃이 필 때면 오래된 과수원은 양탄자처럼 변한다. 과수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이 촘촘하다. 요즘은 농작업 하기 편하게 나무는 작게 골은 넓히고 가지는 열 방향으로 잡는 이태리식 사과 재배방법이 널리 사용된다. 그래서  꽃이 핀 과수원은 양탄자가 아니라 커튼처럼 보인다.


이 오래된 사과나무가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과수원 주인이 새로이 나무를 심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게다. 별로 수익이 날 것 같지 않은 과수원이지만 그래도 정성 들여 관리한 태가 역력하다.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사과나무가 노인의 마지막 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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