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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Feb 09. 2017

답이 없는 질문을 찾는 다는건...

지능과 지성, 그 차이에 대해


지능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해 재빨리 정확한 답을 내어 놓는 능력”을 가리킨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력이 높아도 뭔가 저렴해 보이는, 지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왜 일까? 다사카 히로시는 <슈퍼제너럴리스트>에서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히로시 교수는 지성을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에 대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어나가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197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리야 프리고진은 ‘시간은 왜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일평생 동안 쫓았다. 그리고 프리고진 교수는 '산일구조론(Dissipative Structure Theorem)'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 이론을 잘 알진 못해도 프리고진의 화두는 인류가 가진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은 분명하다.


훌륭한 지성이 되기 위해 이렇듯 철학적인 질문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에도 답이 없는 물음은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답이 있는 질문만 던질 것을 강요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능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에만 집착하는 듯 하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추구해온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은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을 빨리 제시하는 것이었다. 지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행정가들은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는 데도 왜 노벨상이 나오지 않냐고 불만이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 예산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오래전부터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한 교수들도 학창 시절 외국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답은 빨리 풀었지만 답이 없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특히 논문을 써야 했을 때는 경쟁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들은 어떻게 했던가.


학생들에게 답이 없는 문제를 탐구하게 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자신의 문제였던, 아니면 사회적인 시스템의 한계였던 그들이 하는 한탄 속에는 그들이 하지 못한, 진짜로 했어야 했던 바람이 녹아 있다.


그럼 우리 농업은 어떨까?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을 했을까. 아니면 무협지 속 강호인들처럼 비급을 찾아 헤메였을까. 일본, 네덜란드, 스위스 등 수많은  나라를 '선진국 연수"라는 명목으로 찾아다니며 정해진 답을 구하진 않았을까.


우리는 실패했다. 


농업을 살리지도 못했고, 농촌을 구하지도 못했고, 농가들을 행복하게도 못했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지도 못했고, 세계와 경쟁할 농산업체를 키워내지도 못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단 말인가?


다사카 히로시 교수의 주장처럼 우리는 지능만 추구한 농업은 아니었을까. 강호인들처럼 여전히 무림 비급만 쫒는 이 세태가 잘못은 아닐까. 공허함 뒤에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이 없는 물음에 직면할 때 지능이 하는 일은 ‘결론짓기’이다. 신속히 결론을 짓는다. 여기에는 편해지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정신이 편해지는 쪽을 찾아 설익은 결론을 내어 버리면,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쳐 왔던가? UR부터 유기농, 기업농, GMO, 수출, 직불제 등 수많은 R&D와 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결론을 지어버렸던가. 우리는 그것을 결단력이고 리더십이라고 치장한 것은 아닐까.


다사카 히로시 교수는 “책에서 얻는 지식만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믿는 병”때문에 프로페셔널과 관련 책은 넘쳐나지만 프로페셔널로서 역량을 갖춘 인재는 드물다고 말한다. 우리가 짧은 시간 동안 벤치마킹하면서 겉핡기로 짧은 유학과 해외 농장을 둘러보면서 얻은 지식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않았을까. 어설픈 프로페셔널들이 전문가 흉내를 내면서 남발한 정책들 때문에 우리 농촌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아닐까.


지혜를 얻는 데는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 빼고는 왕도가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연애도 책으로, 드라마로 배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어설프게 배운 지식에 만족해하고 있는 듯 하다.


"지식이란 말로 드러나는 것이며 책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지혜란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며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다. 지성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


지식과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짜피 '알파고'의 시대가 오면 무의미해지는 것에 집착일 따름이다.  '4차 산업혁명'마저도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창의와 깊이를 논하긴 쑥스럽지만 길을 잊어버렸을 땐 멈추어서서 힘이라도 비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차라리 무의미해 보이는 그 본질 타령이나 제대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주변사람들과 토론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 우리의 업(業)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려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왔다. 나의 말은 모호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지시에 따르는 것은 익숙하고 편해하지만 생각을 공유하고 문제를 찾아가는 방식은 어색해 한다. 우리는 지식이 실력이라 믿는 시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 했다.
<슈퍼제너럴리스트 : 지성을 연마하다> 의 표지


인용 : <슈퍼제너럴리스트 : 지성을 연마하다> - 다사카 히로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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