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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l 16. 2017

약초밭에서 만난 정밀농업

봉화약초시험장에서 농업ICT를 만나다.

연구 현장을 떠난 지가 꽤~되어서 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그래서 가끔 연구 현장을 방문하면 현장 연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친다. 말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그 일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하늘에서 본 봉화약초시험장


이번 주 토요일(2017.7.15.), 대학 동기가 근무하고 있는 봉화약초시험장을 방문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서영진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박사는 이곳 봉화에서 벌써 6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나와 전화 통화할 때면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살다가 힘들면 여기 내려와 좀 쉬다 가라. 약초 넣은 백숙 한 그릇 같이 먹자.  사는 게 별거 있나?"


사실 사는 게 별거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절친이 근무하는 그곳을 한 번도 방문하지는 못했다. 그냥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너, 거기 계속 있으면 산신령 된다. 빨리 사람 사는 곳으로 나와야지! 우옛든 네가 근무하는 동안 한 번은 갈게."


작물생육 모니터링을 위한 CCTV와 태양복사 측정장치. 4개의 파장을 측정할 수 있게 구성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갔다. 나는 그가 그곳에 지나 온 세월이 여섯해나 되었단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봉화로 떠난다는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사는 게 별거 없어도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토양학 전공자가 약초시험장에?


서영진 박사는 토양학을 전공했다. 그가 경북도원을 떠나 봉화에 왔을 때는 아마도 약초시험장을 확장 이전하던 시기였다. 예전 신문기사를 살펴보면서 그가 이곳 시험장을 처음 조성할 때부터 이곳에 발령 받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꽤나 고생을 했겠다 싶었다.


봉화약초시험장은 2009년 12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조성지 지정고시에 따라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봉화군 봉성면 외삼리로 청사를 이전 신축하게 되었는데, 2012년도 5월에 착공하여 총사업비 109억 6천3백만 원(국비 32억 1천3백, 도비 77억 5천)으로 이날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경북매일. 2013.5.22.).


나는 사실 친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가 새로운 기관을 이전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도,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막연히 토양학 전공자가 약초를 한다!! 음~ 여러 가지 약초에 대한 재배시험을 열심히 하겠거니 생각했다. 친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걸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텐시오미터, 토성에 상관없이 수분장력을 측정하여 관수시기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나는 가끔 강의를 할 때마다 정밀농업과 스마트농업, 요즈음은 만능열쇠로 통한다는 농업의 4차 산업혁명까지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지, 누가 그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사기꾼이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서박사는 이미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토양학자의 정밀농업

우리는 봉화역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소고기 버섯 국밥을 한 그릇씩 해장으로 먹었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맛있는 소고기 국밥을 먹은 적이 있었던가. 그 국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꺼이 중앙선을 탈 것 같았다. 봉화, 은근히 매력 있는 고장이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서박사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5만 평의 약초 농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기왕 여기에 왔으니 내가 하고 있는 것 한번 둘러보고 가라." 나는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험재배지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지 어떤 신기한 약초를 볼 수 있을지, 그게 궁금했다.


AWS와 증발량 측정장치. 모두 모바일 전송장치에 연결되어 있다.


농장에서는 이런저런 관수장비를 볼 수 있었다. 바닥에는 부직포를 깔아 잡초 발생을 막았고, 작업을 위한 이동을 편하게 했다. 그때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다. 그의 설명이 시작되자 농장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서박사는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정밀농업을 그의 약초 농장에 적용했다. 약초의 기능성을 설명하겠지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 넘었다.


서박사는 텐시오미터(tensiometer)와 관수시스템을 개조해서 작물의 수분 요구도에 맞추어 자동으로 관수가 되도록 했다. 아날로그 텐시오미터에 자력 스위치를 붙였고, 이를 관수 제어장치에 연결했다. 관수는 일정 시간 펌프로 작동하고 토양 평형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작동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 농장에는 CCTV를 설치해서 작물생육 상황을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장치는 모바일 송신기에 연결하여 사무실에서 농장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온도, 습도, 토양온도 및 수분량, 광량, 증발산량 등을 실시간으로 관측한다.


NDVI 측정장치, 역시 부품을 이용해서 장치를 제작했다.


이뿐만 아니다. 태양광센서, 680와 760nm의 작물 반사광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사용하여 약초의 정규식생지수(NDVI) 역시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가장 기본적인 기상정보도 AWS를 이용하여 측정하는 것은 물론 증발량도 정밀하게 측정한다. 이장비는 정밀도가 높아서 증발량뿐만 아니라 미세한 응축량도 측정할 수 있다. 작물이 증산을 하기도 하지만, 공기 중 수분함량이 높으면 응축도 된다. 그럼 증발산은 불가능해진다. 그의 장비는 응축되는 양을 측정할 수 있게 정밀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이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서박사는 약초의 생육을 토양학자의 관점에서 재해석 했다.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대개는 양분을 잘 흡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동물 같이 식물도 잘 먹지 못하면 제대로 자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식물은 증발산이라는 작용을 통해 토양의 수분을 잎을 통해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물과 함께 토양 속 양분도 식물 잎으로 같이 전달된다. 그러니 동물의 호흡과 같이 증발산은 작물 생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다.


식물의 증발산은 기상과 토양수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기 중 수분이 너무 높으면 증발산이 어렵고, 토양 수분이 부족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작물 생육이 잘되려면 첫째는 이 증발산 작용이 잘 일어나는 조건이어야 하고, 둘째는 뿌리가 주변 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


관수장치. 수동으로 조작하는 장치이다.


증발산은 기상, 토양수분, 토양온도, 작물의 생육상황을 측정하여 예측할 수 있는 데 이를 통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증발산과 양분흡수를 최적화할 경우 일반 농가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3~5배 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한 해 농사로 최대 5년 치 수확량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서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지만, 수량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관수장치. 텐시오미터와 연결하여 토양수분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관수한다.


세상과 부조화하게 엉뚱한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


주변 약초농가들도 작물 재배과정 중에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된다. 당연히 서박사가 그 해결책을 찾아준다. 약초재배농가의 김과장, 그는 만능해결사(?)로 통한다. 그간 해결되지 않던 많은 문제들을 토양학자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실 많은 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작물 생육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살펴봄으로써 해결 가능하다. 나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그의 설명에 절로 수긍되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약초의 연작장해에 대한 연구였다. 약초는 한번 재배하고 나면 몇 해를 걸러야 한다. 그런데 연작장해의 원인을 잘 몰랐다. 양분, 미생물, 병원균, 화학물질 축적 등 여러 가지가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가설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 냈다. 약초를 재배하면 땅속 미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한다. 그렇지만 약초가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균류는 감소한다. 이로 인해 뿌리의 양분흡수가 저해되는 데 한여름 토양 온도가 올라가면 양분흡수가 더 나빠져 작물이 타격을 입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예전에 인상깊게 봤던 세미나가 떠올랐다.


Hyphae. Credit: TheAlphaWolf Wikimedia (CC BY-SA 3.0) (1)


20008년 경 영국 랭카스터 대학교의 한 컨퍼런스에서 미생물 고속도로(microbial highway)라는 주제를 연구한 학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미생물 세계에서 곰팡이 류의 균이 세균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세균도 고속도로가 없으면 멀리 이동하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는 데, 토양 곰팡이가 땅속에서 그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가설이었다.


아마도 약초가 자라면서 토양의 미생물 생태가 변화되고 이로 인해  약초의 양분흡수에 영향을 주는 미생물의 생태가 달라졌을 것이란 설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내부 메커니즘은 아마도 이것보다는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 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었다. 배양 균류의 처리를 통해 연작장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중 이었다.


지황. 6월 1일에 내린 우박 때문에 비닐이 모두 뚫렸다.


이외에도 우박과 서리가 내리는 조건에 대한 연구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기상 조건의 측정을 통해서 최소한 수시간 전에는 서리와 우박을 예측할 수 있는 단계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다음에는 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볼 생각이다.


이 모든 일들을 서박사 혼자서 가능하진 않았다. 그를 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만났다. 한 가지 공통점은 그 사람들 모두 자신의 이익보다는 새롭고 흥미로운 가능성을 찾기를 더 즐겨한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한 때는 그랬던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엔 그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곳의 우박피해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만 봐서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약초밭 비닐에 엄지손가락 만한 구멍이 뚫을 정도로 우박은 큰 피해를 남겼다. 차량 본닛에 주름이 질 정도였다고 하니, 작물이야 더 말할 필요가 뭐 있을까. 그런 피해를 입고도 이렇게 작물을 잘 키워낸 게 참 대견해 보였다.


이런 전문가가 주변에 있다면, 나도 봉화에서 약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농사 잘 지으면 수입이 내 월급보다 더 나을 것도 같았다.  봉화의 맑은 자연은 덤일 것이다.


<인용문헌>

1. Soil Fungi Serve as Bacterial Highways and Dating Services. Jennifer Frazer. Scientific America(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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