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은 왜 어려울까?
모두들 미래는 융복합이 주도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4차 산업혁명’ 정체는 융·복합"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농업계 언어로 표현하면 "이종간 접합에 의한 잡종강세!"쯤 되겠다.
가장 흔한 게 선진국과 개도국 간 협력일 게다. 남과 북의 협력도 이 범주로 볼 수도 있고. 이게 양쪽에서 개별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경제성을 가지게 만든다. 선진국 입장에서는 낡은 기술이지만 개도국은 첨단산업이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맞는다.
그렇지만 이게 개별 산업분야로 내려오면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나 직접 해보면 더 어렵다.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혁명이라 부를만하다.
왜 그럴까?
공무원-공기관-이젠 민간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게 있다. 일련의 과정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롭게 깨닫는 것도 있다. 농업분야에 ICT를 접목하려다 보니 ICT 분야의 사람들, 특히 평가위원들을 많이 만난다. 그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첫째는 생각보다는 더 타산업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것도 사실 모른다. 전문가이니 농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 동네 언어로 "벼가 나무에 달리는 줄 안다"라는 표현을 쓴다. 대부분 농촌이 어떤지 TV 정도로만 봤을 테니 이해는 간다. "6시 내 고향"의 농촌은 그냥 예능에 더 가깝지 않을까.
둘째는 자기 산업의 기준으로 다른 산업을 보게 된다.
ICT 분야에서는 그저 그런 기술일 수 있지만, 농업분야에서 그 기술을 적용하는 건 매우 첨단이라는 걸 수긍하지 못한다. ICT 분야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도 농업분야에서는 정말 다른 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기술보다는 그 기술의 난이도보다는, 그 기술을 적용할 융복합 영역을 찾고 또 농업계 사람들과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데 그부분을 간과다.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럼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직접 해보시면 어떨지요? 그렇게 쉬워 보이면." 개별 기술이 아니라 융복합 영역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셋째는 경쟁력의 원천을 자기 분야의 기술로 국한한다.
ICT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술이지만, 그걸 농업분야에서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쓰게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개별 기술의 난이도가 낮아도 그걸 농업분야에서 제대로 적용하는 건 엄청난 하이테크이다. 그렇지만 ICT 분야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축산분야에서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팜 시스템을 만드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많이들 한다. 그런데 아~주, 아~주 잘 안된다. 왜 그럴까?
ICT 기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축산분야에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가 시스템에 접목되면서 시너지(synerge)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장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접근한 ICT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농업인들은 쓸 수가 없다. 들어가는 비용과 복잡성에 비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넷째는 답을 보고 시험을 치면서 문제가 쉽다고 착각한다.
설명을 할 때 농업과 ICT를 함께 설명한다. 개별로 놓고 보면 둘 다 어려울 게 없다. 그러니 농업분야로 보면 그건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럼 그렇다고 답한다. 전문가들이라면 한 3-4년 현장에서 부딪히고 고민하면 다 알 수 있다. 이미 현장에 있는 분들은 매시간 깨닫고 있는 문제이다.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CT 기술을 접목한다. 그런데 그 ICT 기술을 바라보면 또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다. 사실 그래야 한다. 우리가 첨단 ICT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그러니 SI 사업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이젠 이렇게 묻는다.
"다른 사람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지 않나요?"
답을 보면서 시험이 쉽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이쯤 되면 일이 꼬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실 두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붙으면 우리와 같은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그럼 왜 지금까지 안된 걸까? 그건 여러 이유가 있을 게다. 그 이유가 진입 장벽인데, 개별 기술을 진입 장벽으로 오인한다.
융복합 영역은 다르게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ICT 전문가, 기술자 말고 통찰력 있는 전문가가 축산농장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면서 문제를 정의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설계할 수 있다면 아마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접근 방법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통하는 접근방법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전문가를 외딴 시골의 축사에 3년 동안 보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까? 구글 정도의 임금을 주면 가능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거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저 그런 수많은 ICT 융복합만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느끼겠지만 좀 다른 관점을 가져줬으면 해서이다.
어떤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려면 수많은 사람들, 축적된 사회적 자산이 투입되어야만 가능하다. 실제 현장에서 해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뼈저리게 느낀다. 정부의 수많은 지원사업에 지원하고, 또 여러 심사위원들 앞에서 수많은 PT를 한다. 그럴 때마다 위의 문제를 맞닥뜨린다. 발표를 마치고 매번 느끼는 아쉬움은 우리가 뭘 잘 못 설명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기술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예컨대 농부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버섯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떠올리는 게 기술 감수성이다. 지금 기업과 사회는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른다. 반대로 대학의 전문가들은 문제 풀 능력은 있으나 뭐가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모른다. 기술 감수성을 높여 이 둘을 만나게 하는 게 도전적ㆍ혁신적 수요를 만드는 길이다(1).”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보(서울대 교수)는 기술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두 분야가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단지 하나의 관문을 넘은 것에 불과하다. 기술감수성이 주변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그건 의미있는 실패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설명을 위해 정말 여러 방법을 써봤다. 그런데 매번 결론은 같았다. 20분 만에 농업과 ICT를 동시에 제대로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다른 융복합 분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융복합 분야를 보실 때는 개별 기술의 관점보다는 융복합 영역에서 새롭게 생기는 기술의 효과와 경쟁력에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기술 감수성을 가지고 살펴주길 바란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융복합이 가능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관점과 인식이 4차산업 혁명이 가능케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1) 文 감동시킨 남자가 본 日보복 "韓 더 오르기전 누르겠단 것" 중앙일보(2019.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