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벼, 수십억 명에게 밥을 준 과학자
중국의 육종학자 위안 룽핑의 여정
한 달 전쯤 세종대 진중현 교수가 한 과학자의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링크했을 때는 그냥 벼를 육종 하는 과학자인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브리드 품종(잡종벼)의 벼를 육종 해서 조금 유명한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Nature의 기사를 링크해서 그 내용을 읽어 봤습니다. 한 과학자, 그것도 중국의 변방, 그것도 서구와는 동떨어진 쌀이라는 작물, 전혀 익숙지 않은 잡종벼,….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도 없는데 말이죠.
한 사람의 인생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구글에서 다시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많은 기사가 뜨더군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최소한 농업계에는 소개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제가 한번 소개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전지식: 잡종벼(하이브리드 벼)에 대한
먼저 이야길 시작하기 전에 잡종벼, 하이브리드 벼란 뭘까 좀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죠. 벼는 자가수분 작물입니다. 그런데 식물에는 잡종강세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한 1대 잡종(F1 hybrid)의 강한 생육 특성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전문용어입니다. 서구의 종자회사들이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옥수수와 밀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품종입니다. 수량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쌀은 자가수분 특성 때문에 이게 불가능하다 생각했습니다.
저도 최근까지 잡종벼가 재배된다는 사실 조차 몰랐습니다. 있어도 변방의 일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위안 룽핑(1)위안 룽핑과 함께한 잡종벼의 역사
위안 룽핑((Yuan Longping, 袁隆平; 1930. 9. 7. – 2021. 5.22.), 네이처의 기사는 쌀에 대한 중국인의 시각부터 소개합니다.
중국 어린이들은 농부의 땀과 수고가 들어간 쌀을 찬양하는 당나라 시를 낭송합니다. 그때 수 십억을 먹여 살리는 하이브리드 쌀의 아버지 위안 룽핑을 알게 됩니다. 위안(Yuan)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후난성 창사에 있는 국가 하이브리드 벼 연구개발센터를 이끌었습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 때는 성화를 봉송하기도 했습니다.
위안 룽핑은 1930년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승리하기 전날 쓰촨 성 외곽에 있는 대학(후에 남서부대학)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농업과 작물유전학을 공부합니다. 1950년대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대부분 전수받습니다. 중국의 생물학자들은 소련의 농업경제학자 리센코(Trofim Lysenko)의 잘못된 이론을 채택합니다.
트로핌 드노소비치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 1898-1976)는 농업경제학자이자 생물학자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멘델의 유전학을 거부한 사이비 과학자(후세의 평가)였습니다. 1940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내 유전학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으며 자신의 반대파를 힘으로 억압하고 반멘델주의를 국가가 승인하게 합니다. 멘델주의 유전학을 포기하지 않는 과학자를 해고하고 수백 명을 투옥시켰으며, 니콜라이 파블로프(Nikolai Vavilov)를 포함한 여러 명의 과학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사형을 선고받게 했습니다. 리센코의 이러한 견해는 수백만 명의 소련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기근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됩니다. (별도 인용)
이 리센코의 이론을 중국 과학계는 채택합니다. 위안의 스승 중 한 명이었던 Guan Xianghuan은 멘델과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토마스 모간(Thomas Hunt Morgan)의 유전학 이론을 따랐습니다. 이 때문에 Guan은 1957년 공산당의 적으로 규정되었고, 1960년 문화혁명 초기에 자살했습니다. 위안의 후기 멘토 중 한 명인 유전학자 바오 웬구이(Bao Wenkui)는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1953년 대학을 졸업할 때 위안은 후난성 안장농업학교에서 농학을 가르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아주 시골이어서 지도에서 찾기도 어려웠다고. 중국의 대약진(1958-60) 운동 기간 동안 위안은 후난성 시골에 살았는데 그 시기 전국적으로 수 천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껍질과 풀로 겨우 연명을 할 때였습니다. 길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의 기억은 그를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1960년부터 위안은 학교 주변의 들에서 일하면서 주식인 쌀에 집중했습니다. 그 당시 밀과 옥수수는 잡종 품종을 개발하면서 녹색혁명을 시작했습니다. 자가수분 작물인 쌀을 잡종 품종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은 황당한 도전과제였습니다.
1961년 여름 위안은 야생에서 잡종벼 한 종을 발견합니다. 1964년에는 학생 한 명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웅성불임(수꽃의 기능을 못하는) 식물을 찾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논을 돌아다니며 여름을 보냅니다. 1966년 4월에 중국과학회보에 웅성불임 벼를 보고합니다. 결국 이게 그의 목숨을 구합니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됩니다. 위안을 반혁명가라고 비난하는 포스터가 캠퍼스 주변에 게시되었고 지식인용 감옥에 그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때 그의 연구보고서를 본 지방 및 국가지도자들이 그의 연구를 지지하기 위해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이 겁을 먹으면서 다른 교사를 반혁명분자로 지명합니다. 위안은 위기를 넘기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위안은 남부 하이난 섬에서 잡종벼의 개발에 필요한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야생 품종을 찾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택동 시절 과학적 이념은 팀워크와 농민 학습을 강조할 때였습니다. 이 시기 위안은 현장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학생들에게 지도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계속 농업과학계에 남았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 위안은 학계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현장에만 머물렀다는 뜻이겠죠.
위안 룽핑에 의한 또는 감독하에 이루어진 중국의 잡종벼 연구 역사(2)위안이 만든 잡종벼의 성공은 인도, 베트남, 필리핀에서 잡종벼 생산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유전학자 이케하시 히로시가 잡종의 번식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확인했을 때 이미 위안은 다양한 계통의 품종을 교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잡종 옥수수와 밀의 수확량은 정체하였지만 쌀의 수확량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1999년에는 매년 1억 명의 중국인을 먹인 쌀이 잡종벼의 생산량 증가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위안 룽핑은 2006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국제회원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과학원 회원으로 3번 지명되었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위안은 정기적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표명해왔습니다. 그는 또한 저명한 사람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습니다.
위안은 사망할 때까지 하이난 연구소를 계속 방문했고, 그의 일생 동안 들판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보냈습니다. 나이 들어 바뀐 유일한 습관은 그 들판을 운전을 해서 다녔다는 것뿐이었다고.
그 외 몇 개의 기사를 더 살펴봤는데, 그는 잡종벼 이외에도 많은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개발한 염해에 강한 쌀 품종은 신장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벼 재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불모지였던 중국 북서부의 황무지를 푸른 들판으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나 할까요.
기타사항들
상당 부분 의역을 했습니다. 자세한 기사는 Nature의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그리고 이 기사에 관심을 가졌던 건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지도. 한 명의 과학자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보내는 걸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글 검색에서 캡쳐한 화면, 수많은 뉴스가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위안 룽핑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든 주모향렬, 2021. 5.23.(1)(1) 사진은 위키피디아(Yuan Longping)에서 가져왔습니다.
(2) Hybrid rice breeding research and development supervised by Longping Yuan in China (by Xiaoling Yu), Yuan Longping: hybrid rice is on the way to fulfilling its potential
(3) 하이브리드 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Breeding program management을 참고하세요.
* 이 글은 네이처의 기사 "Yuan Longping (1930–2021)"을 참조하여 번역한 것을 중심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표제부 사진은 제가 찍은 우리나라 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