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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Jul 29. 2021

동물복지와 식물공장, 그리고 선입견!


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전쟁 중에 축적된 기술이 민수용으로 전환되면서 서구사회는 자연에 대한 우위를 확신하며 악셀러레이터만 장착한 자동차처럼 내달렸다.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했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땅 속에서는 광물자원이 무분별하게 채굴되었고, 바다와 밀림에서는 자연이 축적한 생물자원을 남획했다. 전쟁 중에 성장한 중화학공업은 전쟁 후에는 트랙터, 화학비료, 그리고  DDT를 무한정 생산했다.


지금까지는 일부 박테리아에서만 일어나던 질소고정 반응을 거대한 화학플랜트로 구현해내면서 지금은 전 세계 에너지의 1% 이상이 질소비료 제조에 사용한다. 그리고 작물을 괴롭히던 악당들도 유기인계 농약이 등장하면서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트랙터가 보급되면서 농장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질소와 DDT는 농업생산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전후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탄생시킨 배경 중 하나였다.

세계 인구 트렌드(*출처 : OpenLearn)


농업분야에서도 이 시기 다양한 시도가 행해진다.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기간 동안 새싹채소 재배에 컨베이어 벨트를 접목한 시도가 행해졌고, 빌딩 속에서 인공광을 활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실험도 실시되었다. 인류는 완벽하게 자연을 재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이런 믿음은 1962년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 이 출간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식물공장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정도로 기억된다. 유럽의 한물간 흐름을 1970년대부터 일본이 이어받아 식물공장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과학계에서는 어쩌면 식물공장이 농업과학의 종착역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 불을 달성하면서 공업입국의 궤도에 올라타던 시절이었다. 자연 상태의 것은 불안하고 불결한 것이고, 모든 자연은 통제되는 게 선진으로 가는 길이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동남아 시골처럼 닭은 동네를 뛰어다니고, 마을마다 좀 있는 집은 돼지 한두 마리는 겨우 키우던 시절에 아파트 같은 케이지에서 달걀을 하루에 한 개씩 생산하는 축산시스템을 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식물이라고 그렇게 안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물공장이라는 용어는 그런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무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환경은 작은 축사나 온실 안의 세계에 불과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서 예외는 없었다. DDT는 생태계를 교란하면서 칼을 인간에게 겨누었고, 자연계에 과다하게 유입된 질소는 하천과 바다를 과잉 영양상태로 만들어 질식시켰다. "갈택이어"의 고사처럼 산에 불을 질러 사냥을 하고 연못에 물을 퍼내 고기를 잡으면서 더 이상 잡을 짐승도 물고기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기후변화, 즉 기후위기의 초래이다.


이런 흐름에 대한 반작용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의 문제제기 이후 환경운동은 1970년 미국에서 EPA를 출범시키는 성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환경청이 출범했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UN 기후변화 협약이 출범했다.


농업분야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친환경농업이 농업연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부터 생산 중심에서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고려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한발 더 앞서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환경농업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던 시기였던 1994년, 영국에서는 동물복지 인증제가 처음으로 출범했다. 그 당시 처음 이 용어를 들었을 때, "얘들 뭐지" 이런 느낌이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컬트 집단처럼 느껴졌다. 2012년부터 독일에서는 케이지 사육방식의 양계를 금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에서 케이지 사육이 금지된 것은 아니고 그 댤걀이 독일에서 판매가 금지된 것도 아니지만.


식물공장이라는 용어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농업 전반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통제가 인류문명의 발전과 동일시되던 시기에  등장했고, 농업이라는 전통산업이 도시의 공장과 같이 변해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느끼던 시절에 농업을 팬시 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용어였다. 자연생태계, 그리고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던 시절에 통용되던 단어였다.


트랙터를 이용해 모를 내기 전 비료를 뿌리고 있는 농부


요즘은 단연 스마트팜이 식물공장의 자리를 대신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마트팜이라는 용어로부터 정명(正名)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스마트팜은 어찌 보면 오랜 시간 지속되어  농업계  인식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식물공장처럼 공업은 미래이고 농업은 과거라는 인식의 산물. 스마트팜은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자들에게 복음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그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낼지 많이 궁금하지 않다.


우리부터 용어를 좀 바르게 사용하면 어떨까. 자연생태계의 파수꾼이자 인류문명의 기록보관소인 농업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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