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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스프리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뉴질랜드 농업 현장을 다녀와서...

by 에코타운

1980년 초부터 뉴질랜드는 고물가, 실업, 재정적자, 국제수지 악화 등으로 인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립니다. 1984년 총선과 외환위기를 계기로, 뉴질랜드는 보호무역과 국유기업 중심의 체제에서 시장 친화적 자유화 정책으로 급선회합니다. 별다른 수가 없었겠죠.


뉴질랜드는 당시나 지금이나 농림업이 산업의 중심입니다. 1980년 당시까지 농가 소득의 30~35%는 정부 보조금이 차지했습니다. 이 구조도 전면적인 개혁이 불가피했죠. 전환은 극단적이었습니다.


1984~1985년부터 대부분의 농업보조금을 전면 철폐, 가격지지 폐지, 투입재(비료 등) 보조 중단, 수출보조 철폐 등 급진적 시장화가 단행됐습니다. 우리나라 IMF때처럼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고, 많은 농가가 폐농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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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보호가 사라지자 개별 농가로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됐고, 집단적 대응이 절실했습니다. 우유, 육류, 양모 협동조합은 규모 확대와 재편이 이루어졌고, 과일과 와인도 생산자 연합, 통합 마케팅 조직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자조금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탱자!


제스프리는 1990년대 핵심 생산자 단체, 연구기관, 유통조직이 연합하여 설립된 생산자 조직화의 산물입니다. 농가들(조직들)끼리 수출 경쟁을 하면 수출 시장에서 적절한 가격을 유지할 수 없으니 생산자 단체에게 단일 수출 창구로 일원화할 수 있도록 법에 못을 박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걸 싱글 데스크(Single Desk)라고 부릅니다.


모든 조직이 싱글 데스크 전략이 잘 통했던 건 아니고, 성과를 내지 못한 조직은 다른 수출마케팅 조직이 생겨나 경쟁체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스프리만 여전히 싱글 데스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부에서는 다른 단체에서 자신들도 수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다수 키위 농가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눈부신 성과를 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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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프리는 농가들의 단체이고, 제스프리와 국립연구소(BSI)가 연합해서 품종을 개발하는 키위육종센터(KBC)를 설립했고, 제스프리 인터내셔널 유한회사(Zespri International Ltd.)가 수출을 전담합니다. 회사 경영은 독립적으로 행해집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제스프리를 협동조합형 주식회사라고 부르는데, 주식회사이기는 한데 협동조합처럼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농가들이 회사의 주인인 협동조합이지만, 의결권은 생산하는 키위 박스 수와 연계된 보유 주식수입니다. 그리고 이 주식은 생산을 하지 않으면 배당도 없고, 결국 의결권도 사라집니다.


뉴질랜드의 키위 농가 수는 2,804개, 재배면적은 14,512ha입니다. 농가당 평균 2~4명의 상시 고용을 하고, 수만 명의 계절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규모 있는 가족농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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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프리를 많이 따라 하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스프리 같은 모델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참고는 할 수 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1) 농가들은 결국 뭉쳐서 마케팅 볼륨을 키워야 하고, (2) 수출을 하려면 품목별로 단일 창구를 해야 하고, 그리고 (3) 팩하우스 중심의 기술전달 및 품질관리 체계의 확립 정도일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잘 들어주는 리더십이 중요하겠죠.


우리나라에서 이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 품목은 더러 있습니다. 배, 딸기 등은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고, 쌀과 다른 품목도 참고는 할 수 있겠죠. 정부가 지원할 여력이 있을 때 천천히 해나가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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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에서는 관심을 가진 건 무엇이 제스프리를 다르게 만들었나였습니다. 사실 회사구조를 알려고 굳이 먼 곳까지 갈 이유는 없고요. 방문단과 맥주를 한잔 하는 자리에 제스프리 이사회의 부회장이 참여했습니다. 3조 원 매출기업의 부회장, 그냥 친근한 농민 어르신이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죠. 비결이 뭐냐고? 결국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하네요. 제스프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가 그대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더 놀랐던 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회장은 40대라고 하네요. 다음에는 그분 농장에 계절노동자로 한번 가고 싶어 졌습니다.


번외이지만, 뉴질랜드의 키위 나무를 보니 수종을 바꿀 때 원 대목은 그대로 두고 접을 붙여서 바꾸는데, 밑동을 보니 구력을 짐작케 합니다. 사과도 이렇게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못 봤는데,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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