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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21. 2016

새똥 전쟁, 자원전쟁의 시초

구아노 (Guano), 새똥으로 만든 비료

구아노(Guano), 조류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유기물이다. 한 때 잉카의 보물이었고 페루와 칠레 경제의 근간이었다. 석유가 중동 전쟁의 원인이듯이 구아노는 남아메리카 자원전쟁의 시초였다. 구아노로 인해 만들어진 페루와 칠레의 짧은 호황은 1908년 독일에서 하버-보쉬 법(Haber-Bosch process)이 개발되어 "공기 빵"이라 불린 질소비료가 산업적으로 생산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렇게 구아노는 잊혀졌다. 


요즈음 들어 천연비료인 구아노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높아져가는 화학비료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기농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천연비료의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구아노가 새롭게 황금시대를 맞이 할 수 있을까. 

 


구아노의 비료적 특징


구아노에는 질소 이외에도 인산 성분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류의 구아노는 질소 11~16%, 인산 8~12%, 칼리 2~3%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박쥐와 물범류의 구아노도 있는데 비료로서의 가치는 박쥐 구아노가 가장 우수하다. 또, 다른 동물의 똥과 비교해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외에도 구아노에는 유용한 곰팡이 균과 세균들이 다량 분포하고 있는데, 이 균들이 식물의 병원균을 억제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어 유기농업하는 농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1884년 구아노 비료 광고

  


구아노의 원료


조류의 구아노는 바다새 종류인 가마우지류, 사다새류, 개니트류가 많이 번식하는 페루의 바흐 칼리포르니아, 아프리카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박쥐 똥 역시 구아노로 사용되는 데, 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이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밖에도 물범류의 구아노가 페루 북서쪽에 있는 로보스 제도(諸島)의 로보스 데티에라 섬과 로보스데아프에라 섬 등에 거대하게 축적되어 있다.


페루의 구아노는 수만 년 동안 바다새의 배설물들이 쌓여서 수백 미터의 거대한 퇴적 더미를 이루고 있어서 별다른 가공 없이 채취해서 바로 비료로 사용하면 된다. 남아메리카 연안에서 유럽으로 옮겨진 구아노는 유럽에서 1차 녹색혁명을 이끌었다. 질소비료의 공급으로 농업생산성이 늘어나면서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860년대 페루 남서쪽 해안 진차(Chincha) 섬의 구아노 채취 현장

  

구아노 채취는 자연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도 준다. 바다새의 구아노를 채취하면서 바다로 유입되는 양분이 감소된다. 이는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을 감소를 가져오고, 또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물고기의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에는 인근에 사는 가난한 어부들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굴에서 박쥐 똥을 채취하면 또 다른 영향이 생긴다. 박쥐들이 변화된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먹이를 먹지 않거나 새끼들을 떨어뜨리는 듯 이상 행동을 하는 게 관찰되었다. 이로 인해 구아노를 채취한 동굴에서 박쥐의 개체수가 감소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외에도 박쥐 똥을 먹이로 하는 동굴 생태계도 영향을 받는다. 


페루에서 구아노를 채취하는 노동자, 사진출처 : totallycoolpix.com

  


구아노의 저주


수만 년의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낸 보물 구아노는 석유나 황금같이 인간의 탐욕과 맞닿으면서 비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페루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진차(Chincha) 군도는 무인도로 펠리컨 등 바다새들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었다. 바다새들이 만들어 놓은 구아노가 수백 미터의 높이로 쌓여 있는 자원의 보고였다. 처음 남아메리카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구아노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급격한 인구증가가 뒤따랐다. 이는 필연적으로 식량 생산 증대가 필요했고, 잉카인들이 사용하던 구아노에 주목했다. 1840년대부터 수많은 증기선들이 페루의 구아노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유럽의 금융자본들이 페루에 투자했고, 페루는 구아노로 인한 경제 호황을 마음껏 누렸다.


1879년 남아메리카의 지도(좌), 오늘날 지도(우). 칠레와 볼리비아는 1866년 국경분쟁을 해결하지만 페루와 칠레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구아노로 인한 호황은 영원할 것 같았다. 자본이 풍족해진 페루는 구아노(새똥)를 담보로 서방의 자금을 빌려 대규모 설탕 플랜테이션에 투자를 했다. 페루의 국가 채무는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잉 생산된 설탕으로 인해 설탕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페루는 국가 부도의 위기에 직면한다. 요즈음에도 흔히 보는 서구 자본의 경제 지배 스토리이다. 페루는 결국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구아노 산업을 국유화한다. 그러나 이때 이미 유럽 농업은 페루의 구아노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서 구아노를 대체할 수도 없었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도 없었다. 유럽의 식량안보는 이미 구아노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유럽의 제국들은 페루와 국경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진차군도에서 새로운 구아노 자원을 찾게 된다.  스페인은 주도한 진차섬 전쟁(Chincha Islands War, 1864-1866)이 발발하고(1), 이어서 초석전쟁이라 불리는 태평양전쟁(War of the Pacific, 1879~1883) 발발한다. 서구는 칠레를 지원하여 페루와 볼리비아에 맞서게 했다. 영국은 칠레에 해군을 지원했고 프랑스는 칠레에 육군을 지원했다. 구아노로 인해 발발한 이 전쟁은 후에 새똥 전쟁으로 불리게 된다. 


이 새똥 전쟁으로 페루는 폐허가되고 볼리비아는 바다로 나가는 통로를 모두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한다(1). 유럽 및 미국 연합국이 일으킨 최초의 국제 자원 전쟁의 결과였다. 스페인 사람들의 황금에 대한 탐욕으로 무너져 내렸던 페루와 칠레는 다시금 새똥으로 망가졌다. 후에 새똥은 석유로 바뀌었고 무대는 중동으로 옮겨 갔다.


제국주의 용병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칠레는 갑자기 부유해졌지만 페루와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갔다. 유럽 자본의 도움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칠레는 5년 후에는 서방에 진 빚으로 경제는 파탄 나고, 1888년 구아노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개입으로 내전이 일어나고 칠레의 민족주의 정권은 몰락한다.  구아노는 다시금 미국과 영국의 자본의 손에 놓이게 된다. 새똥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태평양전쟁의 결말이다.  


* 표제부의 사진은 "The Guano and Peruvian Booby Birds"로  wikimedia에서 가져왔으며, 특별한 설명이 없는 사진은 구글의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왔습니다.



(1) Spanish–South American War로 불린다.

(2) “칠레 대통령님! 우리의 바다를 돌려주세요!” 이 기념일의 이름은 ‘바다의 날’. 해마다 3월23일이 되면, 내륙국인 볼리비아 전역에서 바다를 그리는 사람들의 행진을 볼 수 있다. - 시사IN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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