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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21. 2016

한 마을이 사라져 간다는 것의 의미

보현산댐 수몰지구

보현산과 노귀재로 둘러 쌓인 산골 마을이 사라졌다. 


경상북도 영천시의 자천을 지나 노귀재로 가다 보면 험준한 산들 사이 '35번 국도'가 이어진다. 그 굽이진 길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군데군데 터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 집들이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한 두 집 외따로 떨어져 있기도 했다. 산과 계곡 사이의 좁은 땅 배미에 기다랗게 마을을 이루고 살던 이곳에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상송초등학교, 한 때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다닌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나면서 상송 분교로 바뀌었고, 끝내는 이곳을 다녀갔던 수많은 아이들의 기억과 함께 사라졌다. 


2010년 7월에 착공되었던 보현산 다목적댐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아치형 다목적댐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4대 강 사업의 바람이 불던 그때 수자원 확보를 위해 몇 개의 자연부락이 사라졌고, 그 마을이 자리 잡았던 계곡은 물속에 잠겼다. 그 대가로 2,200만 톤의 저수용량을 갖는 '아치형' 콘크리트 댐이 새로 생겼다.


2016년 3월의 상송마을

보현산 댐


3,300억 원을 넘게 들여 완공한 댐은 2014년 5월부터 담수를 시작했다. 2016년 3월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조그마한 저수지만도 못한 물만 품고 있었다. 한 때 물에 잠겼을지도 모르는 그 마을들이 있던 장소는 그냥 그렇게 다시 드러나 있었다. 예전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주말마다 오가던 그 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비포장 길이었던 곳, 다시 포장이 되었던 길, 그리고 물속에 가라앉은 길이다.


2016년 3월의 상송마을



2012년에 수몰되기 전에 찍은 상송마을 수몰지구의 도로


그 길을 다니면서 "우와! 이곳은 정말 절경이네"라며 눈을 크게 뜨고 보았던 구비길 자리에는 250m의 콘크리트 둑이 세워졌다. 그 자리에 있던 평상같이 거대한 조약돌 바위도 콘크리트 더미에 함께 묻혔다. 한 마을 사람들이 족히 화전놀이를 할만한 크기의 평상 바위에는 '아치형' 콘크리트가 얹혔다.


청송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저 길옆에 마을이, 집들이 있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지독한 가뭄때문인지, 침수구역 대부분이 물 위에 드러났다. 버스들이 다녔던 신작로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시 드러났다. 그때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시절 자신들의 집이 있었던 위치를 기억하고 있을까? 사라져 버린 마을 자리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댐이 생기면서 마을은 산 중턱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계곡 근처 길 주변으로 길게 자리 잡았던 마을은 산 중턱을 따라 새롭게 조성된 도로 옆으로 옮겨졌다. 새 마을에는 현대식 주택들이 새로이 조성되었다. 산뜻한 새집들이 예전에 보았던 슬레이트 지붕의 촌집들을 대신했다. 지붕을 칠한 페인트 아직 산뜻함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도회지로 떠난 듯 마을은 크지 않다.



2012년 여름의 상송마을


아직 댐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2년에 찍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물에 잠기기 전의 모습이다. 길을 따라 일부 집들이 아직 남아 있고, 전봇대도 그대로고 길은 여전히 차들이 다니고 있다. 이 오래된 풍경은 이 길을 다녔던 사람들의 추억 속에나 남아 있다가, 가끔 세기의 가뭄이라도 오면 예전의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길만 드러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있었던 집 한 채, 간판 하나를 다시 떠 올릴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2012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삼오식당


계곡에서 잡아온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끌이던 '삼오식당' 주인은 폐업을 알리는 플래카드에 "오랫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이 길을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나는 이 지역에 내려본 적도 삼오식당에서 추어탕 한 그릇 한 적 없다. 이 집 주인장과 만난 적은 더더욱 없다. 그렇더라도 이 집을 부숴야 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내가 살던 대부분의 동네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은 깎여나가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동네도 부서져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아무런 소식도 없다. 


아마도 그들도 나처럼 가끔 살던 곳에 들러 예전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상송을 지나면서 사라져 버린 마을과 사라져 버린 내 청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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