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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21. 2016

추억,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태양

왜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리 흐를까?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기세가 무섭다. 가장의 권위란 채널권이란 신념으로 리모컨을 사수하고 있는 겁을 상실한 남편이지만 이 기세를 막을 순 없다. 마누라의 기에 눌려 속절없이 생명과도 같은 리모컨을 포기한다. 이건 일시 후퇴이다.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다. 적의 기세가 강할 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OST

토요일 저녁마다 우리 집은 순식간에 1988년으로 돌아간다. 그 시절 추억들이 소환된다. “맞아! 저땐 저랬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누라는 이 시간만큼은 꿈 많은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돌아간 듯하다. 나와 살면서 보지 못한 행복이 얼굴에 피어난다. 나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하루 종일 김필의 <청춘>과 박봄의 <혜화동>을 무한 반복으로 듣는다.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로부터 같은 노래만 듣는다고 핀잔을 듣는 것은 부작용이다. 가장의 권위는 손에서 떠나버린 리모컨과 애들의 안타까운 시선 앞에 허물어진다.


아침 등굣길 감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걸어갈 때 가로등에 달린 JBL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들국화의 <행진>을 들으며, 콧날을 시큼하게 하던 매케한 최루가스 맡으며, 소방호스로 흰 가루를 씻어 내던 수위 아저씨들 바라보던 불만 많던 청년은 벌써 쉰을 바라보고 있다. 응팔의 그 시절이 바로 어제처럼 느껴진다. 신년회 때 마신 술이 깨지도 않았는데 벌써 망년회다. 어려서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지금은 너무 빨리 지나가 당황스럽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이건 논쟁도 필요 없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왜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리 흐를까?”는 아주 오래된 의문이었다. 그랬던 만큼 빨라지는 시간은 여러 학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심리학자인 윌리암 제임스는 1890년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에서 나이가 들수록 더 적은 수의 이벤트를 기억하므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은 처음 일어난 일 - 첫사랑, 처음 학교 간 날, 첫 미팅 등 - 은 잘 기억하는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억할 만한 새로운 일이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그러니 기억 속에는 더 적은 수의 이벤트만 기록된다. 젊은 시절의 기억이 초당 100 프레임 영화라면 나이가 들면 50 프레임, 20 프레임으로 떨어지다 나중에는 타임랩스처럼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벤트는 단순하게 압축되어 기억된다. 긴 시간이 한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877년 자넷(Janet)은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살아온 시간과 비례한다는 것이. 다섯 살에게 1년은 인생의 20% 이지만, 50대에게 1년은 단지 2%에 불과하다. 우리는 살아온 시간과 지나간 시간을 비교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지난 1년이 점점 더 짧게 느껴진다.


인정하긴 싫지만 노화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생체시계가 느려지면서 외부의 이벤트를 따라가지 못해 마치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외에도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무뎌지기 때문이라거나, 처리할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시간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스트레스 가설도 있다.


<청춘>의 가사처럼 푸른 이 청춘은 언젠가는 떠나간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의 경험이 짧은 시간 속에 축약되면서 지혜라는 게 생겨난다.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젊어서 혈기 왕성할 때는 가지지 못하던 것들이다. 그리고 또 응팔을 보면서 행복해할 수 있는 특권도 생겨난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미래보단 과거를 회상하길 좋아한다. 쇼펜하우어는 “추억이란 프리즘으로 보는 태양”과 같다고 했다. 가슴 저민 기억도 무지갯빛으로 보인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응팔은 우리의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응팔이 끝나면 다시 리모컨이 내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권위까지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떠나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이 들어 깨달은 지혜라고나 할까. 리모컨이나마 지킬 수 있는걸 감사할 줄 아는 너그러움도 세월과 함께 다가왔다.


*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같이 실렸으며, Why Does Time Fly as We Get Older?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2013. 12. 18)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작성 : 2015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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