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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21. 2016

우체국 택배와 삶의 속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택배 아저씨, 토요일엔 쉴 수 없을까?

우체국에서 토요일 택배 배송을 다시 한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 택배가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해서 신선하게 받아들였는데, 그새 무슨 일들이 많았나 보다.


우리나라 택배비는 무척 싸다. 인터넷 쇼핑몰에선 2천5백 원을 내면 되고, 가정에서는 4-5천 원 정도를 부담하면 된다. 그러면 다음날이면 집으로 배송되거나 원하는 곳에 보내진다. 이건 무척 편리한 시스템이다. 때로는 토요일 배송이 되기도 하고, 밤 10시가 되어서 배송이 되기도 한다. 고맙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택배 하시는 분들 참 힘들겠다.


이런 이해가 있었기에 토요일 택배를 하지 않는다는 우체국의 선언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불과 1년 만에 뒤집혀 가고 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첫째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우정사업본부의 수익성이 나빠진 것이 토요일 택배 재개의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노조의 반박이 따른다. 그러니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뭐라 하긴 어렵다.
둘째는 고객들의 원성이다. 토요일 배송이 중지되면서 불편을 겪는 많은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토요일 배송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농산물과 신선식품의 경우 판매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토요일 전에 배송이 되어야만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건순 선생은 페북에서 "선진국이 되려면 다른 건 차지하고 제발 국민들이 불편한 것들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일갈한다. 예전 영국에서 살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영국에서 감기는 기다리다 낫는다.


영국, 대단한 나라이자 아름다운 나라이다. 외국인들에게까지 NHS에서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나라이다.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도 5시면 퇴근한다. 9시에 출근해서 10:30분이면 티타임을 30분 갖고, 3시면 다시 티타임을 갖는다. 마돈나가 런던에 집수리를 하다가 영국 노동자를 보고 꼭지가 돌았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영국의 노동자들은 악명이 높다.


집 앞에서 도로를 일부 파헤쳤는데 작은 공사에 비해 너무 요란한 안전시설이 낯설었고, 그 작은 공사를 위해 몇 달 간 도로를 파헤쳐 놓고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 영국인들이 존경스러웠다.


영국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이 농담하길 좋아한다. 영국은 병원을 예약하고 기다리다 병이 다 낫는다고. 영국에 살아 본 사람들은 아무리 심한 감기도 기다리면 낫는다는 걸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처방도 별로 없다. 만병통치약, 파라세타몰. 물론 응급실은 잘되어 있으니 급한 경우에도 방법은 다 있다. 애들 둘을 키웠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느린 삶의 속도에 중독되다.


사실 영국은 모든 게 느렸고 비샀다. 전화를 신청해도 일주일이 걸렸고, BBC TV 시청료는 수십만 원을 넘어갔다. 모든 게 느렸고, 불편했고 불합리해 보였다. 그런데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런 삶의 속도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


인터넷은 느렸지만 우편시스템은 여전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있었지만 오프라인으로도 여전히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도립 도서관에 갔을 때 인터넷으로만 회원 등록을 할 수 있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다. 모든 방송에는 영어 자막이 나왔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뉴스도 자막이 제공되었다. 스포츠 중계도 물론이다. 자막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나의 영어 공부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심지어는 외화를 그대로 방송할 때 조차도 영어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IT 강국에서 그 정도 선택할 수 있게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연 우리에게 IT란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


영국에서 택배를 하나 시키면 1만 원은 가볍게 넘어가는 배송비를 내야만 한다. 물론 빨리 받아 보려면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불과 몇천 원의 택배비를 내면 이틀 후에 도착하는 택배에 익숙한 사람에게 영국은 덜 떨어진 나라처럼 보였다.


행복은 속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모든 게 빛의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편하고 익숙했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그립지도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시민들, 책을 읽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살아봤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에 택배가 한동안 오지 않았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할 때는 토요일에 배송이 되지 않도록 주초에 붙였다. 일상생활에서 조금도 불편한 게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될 뿐. 나의 작은 주의로 여러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쁜 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게 1년 만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빠른 속도에 중독된 사람들은 불편함을 참지 않는다. 행복이 그 불편함 속에,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알게 될까?


(2015년 9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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