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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May 29. 2016

기술진보의 역설

코모너의 가설

1970년대 초는 환경 문제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이다. 세계의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에서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보고서를 처음 출간한 것도 이때이다. 이 시기는 기술 문명의 진보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때였고,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로마클럽의 보고서는 인구증가, 자연자원의 고갈, 환경오염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처음 제기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환경오염의 원인에 대해 두 가지의 견해가 대립하고 있었다한쪽에서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가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첫 번째 주장의 핵심은 인구가 증가하면 그만큼 더 많은 식량과 정주 공간이 필요해지고, 따라서 폐기물도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두 번째 주장은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팽창하면 자연에서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더 많은 폐기물과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주장이다.

인구 증가와 자원 제약, 둘 중 어느 것이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쟁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 물론 요즈음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논의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코모너 교수가 출판한 책의 표지

이때 미국 환경생태학자인 코모너(Barry Commoner, 1971)는 생산기술의 변화를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구사회의 문화적 기반이 되는 유목주의적 자연개발 방식은 자연을 무한한 자유재로 여겼는 데, 이런 사고가 현대 들어 발전된 과학기술과 결합하면서 자연 낭비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개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코머너의 주장을 과학자들은 "코모너의 가설" 또는 "기술개발의 역설(the Paradox of technological progress)"이러고 부른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주장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사피엔스>에서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삶의 질이 더 떨어졌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예를 들면 비누 가루를 대체한 합성세제, 천연섬유를 대체한 합성섬유, 철과 목재를 대체한 알루미늄 및 플라스틱 등 새로 만들어지는 제품은 더 많은 자원을 소모했고, 환경에도 더 많은 부하를 끼쳤다. 


농업에서는 생산량 증가와 해충 및 잡초방제를 위해 사용한 비료와 농약으로 인해 생산량은 더 늘었지만 수질오염과 생물종의 멸종 등 생태계에 더 많은 해를 입혔다. 새롭게 개발된 기술은 모두 다 화석연료에 더 크게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측면에서 생산량은 늘었지만 삶의 질까지 나아졌다고 하긴 어려웠다. 이외에도 새롭게 개발된 기술은 국가 간 자원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분산전원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태양광 발전


현대적 기술 문명에 의해 새롭게 도입된 기술들이 환경 충격이 적은 것에서 충격이 큰 것으로 변해 오는 과정에서 지구환경 문제가 잉태되고 심화되었다는 코머너의 주장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자원고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 가설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 


태양광과 전기자동차 등 환경 친화적인 기술들이 새롭게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대 기술문명이 생태계의 다양성을 향상하는 방향으로는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자원의 고갈과 또 다른 환경파괴를 여전히 수반한다. 우리 앞마당에 있는 오염은 신흥공업국으로 이전되었을 뿐 여전히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고 있다.


코모너의 역설은 문제를 과학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태동하는데  기여했다. 유목주의 문화에 뿌리를 둔 파괴적인 자연 이용 방식보다는 농경사회가 추구하는 생태적인 순환 방식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는 환경주의자들에게 코모너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코모너의 이런 철학은 최근 들어 전하진 의원을 중심으로 태양광과 분산전원,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기술문명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라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도 한몫하고 있다. 기술로 생겨난 문제는 기술로 풀 수 있을까. 기술이 다시 인류의 생활양식과 의식을 바꿀 수 있을까. 코모너의 가설은 기술만능주의에 관한 경고이다. 


참고 및 인용 : 정회성, 전환기의 환경과 문명 (도서출판 지모, 2009) P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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