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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6. 2020

다운증후군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2

[민들레] 부모일기

“아아악!”

사람의 소리가 맞을까, 귀를 의심할 정도의 비명에 이어 와장창 무언가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병원 복도에 있던 화분이 깨져 흙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덩치 큰 여성이 자신의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또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야성의 소리였다. 여태 들어본, 사람이 내는 소리 중 가장 큰 비명이었다. 지역 복지관에서 검진 차 병원을 방문한 장애인들 중 한 명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다운증후군인 성인이었다. 그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었다. 서둘러 진료비를 내고 처방전을 가방에 구겨 넣은 뒤, 인사도 잊은 채 병원 문을 나섰다. 차로 돌아와서 아이를 카시트에 눕히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저런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나도 평범한 엄마였다

 병원에 간 건 70여 일 된 둘째의 기침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감기 걸린 첫째가 동생 앞에서 기침을 해대더니 옮은 듯했다.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가 미열이 오르고 기침을 하자 덜컥 겁이 났다. 비 오는 날 아이를 담요에 싸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호흡기도 괜찮고 단순 감기 같으니 기침약을 며칠 먹이라는 처방을 받았다. 열이 더 오르거나 기침이 심해지면 아이를 진료했던 3차병원으로 가라는 주의도 들었다. 단순히 둘째의 컨디션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다운증후군이라서 면역력이 약하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 다운증후군 여성이 긴 대기 시간에 지쳐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솔해온 사회복지사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도와주러 온 간호사와 대기실에 있던 다른 환자와 보호자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익숙하다는 듯 괘념치 말라며 깨진 화분의 잔해를 치웠다. 그 와중에도 그는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도 공공장소에서 가만히 차례를 기다리는 것조차 어렵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은 작고 귀여운 아기이지만 몸집이 다 커서도 사회화가 되지 않고 아이처럼 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 피부에 와 닿았다.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아이가 평생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 슬프고 아팠다.

 
갓 태어났을 때는 양수에 불어서, 수술 후 인큐베이터 안에 있을 때는 각종 의료기기와 호스에 가려져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생후 3주 만에 퇴원해 곁에서 24시간 돌보게 되면서 비로소 다운증후군 아이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눈 밑에 사선으로 주름이 있고 눈꼬리가 올라가 있다. 눈을 치켜뜰 때 비장애인인 첫째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원숭이 같은 표정이 나오기도 한다.

 
두 달쯤 지나자 이맘때 첫째는 조금씩 목을 가누기 시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보통 아이들은 빠르면 두 달, 늦으면 네 달 안에 목을 가누지만 다운증후군 아이는 6개월쯤 걸리기도 한단다. 두 달이 훌쩍 넘도록 둘째는 목에 전혀 힘을 주지 않았다. 몸무게는 월령에 맞게 늘고 있지만 팔다리에도 영 힘이 없다. 근력이 떨어지는 게 다운증후군의 특징이라는 걸 글에서 읽어 알고 있었지만 축 처지는 아이 몸을 안으며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하는 건 절망적이었다. 속싸개를 풀어놓으니 제 딴에는 기지개를 편다고 팔을 머리 위로 쭉 뻗는데 많이 짧다. 아기라서 짧은 건지 다운증후군 아이라서 더 짧은 건지 분간이 안 되지만, 한 번 짧다고 인식하고 나자 그 생김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운증후군 아이들 중에는 태내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가 출생 후에 갑자기 장애가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경우 부모들은 충격에 빠져 갓난아이를 예뻐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는 양수검사로 아이의 상태를 일찍 알아서 그나마 받아들이기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아이가 예뻤고 큰 수술을 이겨낸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자신이 없다는 남편에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자고 강요하기도 했다. 장애를 알고도 낳아서 키우는 용감한 엄마이고 싶었다. 난 나를 과대평가했다. 나 역시 아이의 장애 앞에 무너지고 마는 평범한 엄마였다.

 

내 안의 편견을 만나다

 둘째를 낳기 전까지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첫아이 출산 후 로션조차 바르지 않은 지 5년째이고, 출산 전에도 늘 맨얼굴,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타인의 옷차림이나 외모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고 보니 장기 기형이나 발달 지연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외모였다. 아이 사진을 SNS에 올릴 때면 다운증후군의 특징이 가장 덜 드러난 사진을 고른다. 감추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비장애인 아기처럼 나온 사진이 제일 예뻐 보여서다. 얼마 전 지인의 아이가 태어났다. 비장애아인데다 생김도 예뻤다. 부러웠다. 아이의 외모를 부모의 자산처럼 생각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둘째를 보고 “머리 좋게 생겼다, 운동을 잘할 것 같다”고 하시는 아버지에게 다운증후군의 특징이 지능 저하와 발달 지연인데 어떻게 머리가 좋고 운동을 잘 하겠냐고 쏘아붙였다. 부모님이 손주에게 헛된 희망을 품는 게 속상했다. 알고 보니 소수지만 다운증후군 사람들도 대학에 진학하고 골프 선수가 되어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기도, 모델이 되어 런웨이에 서기도 한다. 뭘 모르는 건 나였다. 현실에 눈 감은 채 다운증후군인 내 아이는 공부도 운동도 못할 거라고 누구보다 먼저 내가 선을 그어버렸던 것이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어주어야 할 엄마가, 비장애인인 첫째아이에 대해서는 수만 가지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둘째에게는 무엇 하나 열어놓지 않았다.

 
아이뿐 아니라 내 스스로의 미래도 닫고 있었다. 아이의 장애를 알기 전까지는 둘째를 세 돌쯤 키우고 나면 공부를 다시 하고 일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배 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걸 안 뒤, 평생 일도 하지 않고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겠다고 각오했다. 임신 막달에 부부 상담에서 비장하게 각오를 이야기하자 상담사가 말했다. “아이의 장애와 엄마의 일이 무슨 상관이지요? 일하면서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제야 내 편협한 시각을 깨달았다. 다운증후군의 증상과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릴 때부터 기관을 다니고 또래와 어울릴 수도 있다. 성인이 된 후에 자립해서 혼자 살며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아이는 물론 내 앞날까지 걸어 잠그려고 했다.

 
3월 21일, 나는 처음으로 이 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이다. 21번 염색체가 3개인 특징 때문에 이 날짜로 정해졌다고 한다. 둘째 덕분에 아무 의미 없던 날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다운증후군 부모 모임(Wouldn’t Change A Thing)에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면서 내 안의 무수히 많은 편견을 마주했다. 매 장면마다 편견이 깨부숴졌다. 퀸의 노래 ‘Don’t Stop Me Now’에 맞춰 화장을 하고, 당구를 치고, 농구를 하고, 실내 암벽 등반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는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내가 해본 적 없거나 못하는 일들도 많았다. 사람마다 재능과 취향이 다르듯 다운증후군 아이들도 저마다 관심사에 따라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후렴구에서 그들은 “Don’t Stop Me Now!”라고 립싱크를 했다. 4분간의 영상은 ‘그들을 막을 수 없으며 막아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다운증후군 커플의 프러포즈 장면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의 미래 연애나 결혼에 대해 농담할 때, 내 둘째아이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을 무성화하는 게 나쁘다고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장애를 가진 내 아이의 앞날에는 연애와 결혼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내 안의 편견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고 비논리적이며 뒤죽박죽이었다.

 

내게 ‘진짜’를 묻는 존재

 지난호 민들레에 글(민들레 122호)이 실린 소식을 주위에 전하며 둘째의 상태를 알리는 이른바 ‘다밍아웃’을 했다. 동정을 받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내가 당당해야 아이도 당당히 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용기를 냈다.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자주 연락을 하지 않던 지인이 “사실은 내 가족 중에도 다운증후군이 있는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우리 가족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주변에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있는데 필요하면 소개해주겠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다. 따뜻한 관심이 고마웠다.

 
용기 있고 성숙한 결정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명을 낳고 키우는 건 중대한 일이지만 장애아를 낳아 키운다고 해서 더 훌륭해지는 건 아니다. 과한 칭찬이 조금은 씁쓸했다. 제일 고마웠던 건 아이의 상태와 관계없이 둘째 탄생 자체를 축하해주는 말들이었다. 첫째를 낳았을 때와 똑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다.

 
의외의 무반응도 마주했다. 종종 연락을 하던 사이인데도 둘째의 탄생과 아이 상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처음에는 불쾌했다. 그런데 만약 섣불리 동정을 표했다면 더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아마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묵묵부답인 듯하다. 조금 다른 존재가 그저 불편한 모양이다.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에 낯설고, 잘 모르니까 경계하게 되고, 다가서기 불편한 마음, 짐작이 가고 이해된다. 나 역시 그랬을 것 같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해 인간관계가 재편되고 있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들이 곁에 남을 터, 나쁘지 않은 변화다. 아이와 내가 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지지하고 응원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달려오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둘째는 나에게 “진짜?”라고 묻는 존재다. 난 장애아라도 낳아서 똑같이 사랑으로 키울 거야. 진짜? 난 세상의 편견에 맞설 수 있어. 진짜? 난 내 안의 편견을 없앨 거야. 진짜? 난 장애아를 씩씩하게 키울 수 있어. 진짜? 백일도 안 된 아기는 끊임없이 나의 진정성을 시험한다. ‘진짜 가족’이란,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나에게 ‘진짜 엄마’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 맑은 눈으로 묻는다.

 
아이 앞에서 나는 조금도 잘난 체를 할 수 없다. 발가벗겨진 기분이다. 한 치의 꾸밈도 거짓도 없이 진심으로 살라고, 목도 못 가누는 둘째가 엄마를 가르친다.

 

민들레 2019년 5~6월호 123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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