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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6. 2020

다운증후군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3

[민들레] 부모일기



지겨운 병원 나들이

 둘째가 태어난 후, 최근 두 달은 병원 진료와 검사로 달력이 빼곡했다. 아이는 출생 다음 날 막혀 있던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외과 수술을 받은 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회복하며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퇴원할 때 심장에 구멍이 있고 청력이 떨어지며 잠복고환에 음낭수종이 있다고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하러 오라고 했는데 그때가 왔다. 소아외과, 임상유전과, 신생아과, 소아심장과, 이비인후과, 소아비뇨의학과, 재활의학과 검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 와중에 첫째에게 감기까지 옮아 집 근처 소아과도 지겹게 다녔다. 신생아 시절 인큐베이터에서 한쪽으로만 누워 있어 머리가 비대칭인 사두증이 될 우려 때문에 수기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도 다녔다.

 
첫째는 다섯 살이 되도록 해열제 한번 먹은 적이 없다. 올해 기침약을 처방받아 먹은 것이 생애 처음일 정도로 아픈 곳 없이 건강히 컸다. 첫째를 키우면서 육아 동지들과 서로의 아이를 걱정해주던 병명은 기껏해야 감기, 장염, 수족구, 다래끼 같은 것들이었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 때문에 여러 합병증을 동반한다고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읽었지만 이렇게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두 달 간의 병원 러시는 재활의학과 물리치료 대기 순서를 기다리며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힘들게 병원을 다닌 결과가 좋으면 위안이 되련마는 슬프게도 걱정스런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환이 계속 내려오지 않으면 생후 6개월째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돌까지 심장의 구멍이 줄어들지 않으면 심장수술도 해야 한다. 1년 만에 전신마취 개복 수술을 세 번이나 해야 하다니,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일이 왜 이 작은 아이에게 찾아오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아픈 아이들을 마주치는 것 또한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유모차를 타기엔 몸이 너무 크고, 똑바로 앉을 수 없어 일반 휠체어를 타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뒤로 젖혀지는 맞춤형 휠체어에 앉아 진료를 기다렸다.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데 아직 걷지 못해 재활치료를 받으며 우는 아이들을 만났다. 몸은 다 커서 십대쯤으로 보이지만 발음은 어눌한 아이들이 익숙한 듯 마주치는 모든 의료진,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광경도 보았다. 건강한 첫째를 키울 때는 보지 못했던, 볼 생각조차 안 했던 현실이다. 내 아이보다 중증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며 위안 받을 때마다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져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자고 매일같이 마음을 다잡았다. 검사 결과가 좋아서 기뻐하고 나빠서 실망하는 게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자고 되뇌었다.

 
아픈 아이들 옆에는 때로는 아빠, 때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슬프거나 지쳐 보이기도 했고 고통스럽고 근심 어린 얼굴도 만났다. 반면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도 있었다. 반갑고 기쁜 표정도 보았다. 아직 병원이 낯설고 힘든 초보 장애아 엄마인 나에게는 베테랑 장애아 엄마들의 밝은 표정이 더 생경해 보였다.

 

천천히 크는 아이

 첫째를 함께 키운 육아 동지들 중 유독 올해 둘째를 맞이하는 친구들이 많다. 둘째 육아도 함께하게 되어 반가운 한편, 내 아이만 장애아면 마음 편히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지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둘째보다 두 달 늦게 태어난 친구의 둘째를 얼마 전 처음 만났다. 나란히 눕혔더니 다운증후군의 특징이 더 확연히 드러났다. 생후 70여 일밖에 안 된 친구의 아이는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버둥버둥 발차기를 하며 다리를 위쪽으로 들어올렸다. 재활의학과 부모교육 때 배운 발달에 좋은 동작 예시를 그 아이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몸을 틀어 모로 눕더니 손을 뻗어 내 아이의 손을 잡았다. 배가 고프면 손가락을 입에 넣어 쪽쪽 빨았다. 옆에 누운 친구가 반응이 없자 금세 안아달라고 보채기도 했다.

 
내 아이는 팔다리를 힘없이 대大자로 벌린 채 누워서 고개만 간신히 친구 쪽으로 돌렸다. 뒤집기는커녕 4개월이 넘도록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는 손을 빨고 싶지만 입으로 가까이 가져갈 방법을 몰라 팔을 쭉 뻗은 채 하염없이 주먹을 바라보며 입만 다셨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울지도 않는다. 순해서 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극에 둔감하다는 뜻이다.

 
친구의 아이를 안았더니 목을 빳빳이 가누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을 보였다. 처음 보는 어른인 나와도 눈을 맞추며 방긋 웃어주었다. 몸은 단단해 보이고 팔다리 움직임이 당찼다. 두 달 늦게 태어났지만 목도 먼저 가눴듯 먼저 뒤집겠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고 나서 며칠 후 뒤집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한 첫아이를 키울 때는 엄마와 눈을 맞추는 게, 목을 가누는 게, 손을 빠는 게, 웃는 게, 혹은 제 마음에 안 든다고 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아기의 모든 행동이 다 뇌 발달, 신체 발달과 관계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와 닿지 않았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0.5배속으로 자란다고들 이야기한다. 친구를 만난 뒤 자극이 됐는지, 재활의학과에서 배워온 유도 동작을 해줘서인지 마침내 140일이 지나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다. 비장애인인 친구보다 정확히 두 배 더 느렸지만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크는 게 대견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몸의 중심근육 힘이 약하다고 한다. 내 아이는 게다가 개복수술을 했기 때문에 복근이 더 약하다. 재활의학과나 다운복지관에서는 ‘조기개입’을 통해 발달을 촉진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양손을 모아주고 양다리를 묶거나 고개와 다리를 윗몸 일으키기 자세로 모아주는 등 몸통 중심근육의 힘을 기르는 동작을 자주 해주라고 충고한다. 다운증후군 아이 부모들은 주 몇 회씩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거나 집에서도 근력 강화 동작을 연습시킨다. 장애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면서도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급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조기 개입이 썩 내키지 않았다. ‘때가 되면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너무 늦어져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공존해서 갈피를 못 잡기도 했지만, 다리를 묶어주지는 않고 손발을 잡고 놀아주다가 가끔 뒤집기 유도를 하는 정도로 적당히만 개입했다.

 
막상 한 살짜리 동갑내기 친구와 적나라하게 비교를 하고 나자 절망스럽기보다는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를 만난 지 몇 주 후 둘째는 그때의 친구처럼 양손을 모으고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더니 옆으로 누웠다. 그 다음 날은 힘차게 몸을 젖혀 뒤집었고 며칠 뒤엔 뒤집은 상태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장애가 없고 운동신경이 좋은 아기들이 한 번에 해내는 동작들을 내 아이는 아주 조금씩 차례차례 밟아갔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둘째는 결국 뒤집기와 엎드려 고개 들어올리기를 해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니 앞으로 발달상의 아주 작은 성취도 더 크게 기뻐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첫째보다 더 빨리 큰다 싶다는데 난 조금 더 천천히 아이가 크는 걸 보겠구나, 하는 여유도 생겼다.

 
아이가 140일이 넘어 드디어 뒤집었다고 여기저기 자랑을 하자 육아 동지들 중 몇몇이 축하한다며 “우리 애는 더 늦게 뒤집었다”고 알려주었다. 150일이 넘어서 뒤집었다는 아이, 앉기를 먼저 하고 7개월이 되어서야 뒤집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비장애인 아기들 중에도 발달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그러고 보니 첫째는 말이 빨랐지만 몸 쓰는 게 어색해서 네 살이 되도록 제대로 뛰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둘째가 장애가 있어 모든 게 다 느릴 것이라는 편견에 아이를 가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운증후군이 있어도 비장애 아이보다 더 빨리 뒤집고 목을 가눌 수도 있다. 느리고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대로 건강히 크면 그만이다.

 
둘째의 뒤집기 성취에 기뻐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내 아이는 앞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두 돌이 지나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가기 전에는 말도 할 것이고 배변 훈련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증장애를 가진 어떤 아이는 영영 걷지 못하고 평생 누워서 기저귀를 해야 한다. 엄마 말고 다른 이들과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아이들도 있다. 나는 아이가 단지 느리기만 한 것에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증장애인을 마주칠 때마다 저 불행이 내게, 내 아이에게 찾아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가슴 쓸어내리고 싶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가 동정이나 안도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솟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답을 찾았다. 장애아동 부모들의 사연을 엮은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중 뇌성마비가 심해 의료진이 다 포기했지만 놀라운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마티스의 이야기였다. “마티스는 이 세상에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온 거란다. 그 목적은 너무 중요해서, 굳이 걷거나 말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된대.”

 
아이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듯이 정상발달을 다 이루지 않더라도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다. 느린 아이의 작은 성취에 감사하되 이루지 못하는 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은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응원해주는 것뿐이다.

 

거르거나 고치거나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원인 세계 첫 규명.”
얼마 전 지인이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국내 연구진이 다운증후군에서 지적장애를 일으키는 요인 유전자와 그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에는 산전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판별 정확도를 높이는 표준물질이 개발됐다는 기사가 포털 메인에 올랐다. 두 기사를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상이 보는 다운증후군은 치료제를 개발해서 고쳐야 할 대상이거나 출생 전에 미리 걸러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사 링크를 보내온 지인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뭐라 답해야 할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몇 주 전 전국에 하나뿐인 다운복지관에 둘째를 데리고 상담을 다녀왔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생애 전반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다운증후군이라고 해서 모두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능이 비교적 떨어지긴 하지만 학습도, 일상생활도 가능해서 지적장애 등급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도 지적능력과 발달이 천차만별인데 요인 유전자 하나의 기전을 밝혔다고 해서 지적장애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지적장애는 치료해야 하는 질병일까.

 
2019년생 다운증후군 아이를 둔 엄마들과의 단체 채팅방에는 “양수 검사 안 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경험담이 수시로 올라온다. 산전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었는데 갑작스레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주변의 질문이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고 토로한다. 나는 양수 검사로 아이 상태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출산을 했다. 둘째의 검사 때문에 병원을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알고 낳으셨어요?”라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이어지는 “대단하시네요”라는 의료진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마주하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게 지난 4월이다. 2019년생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낙태는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몰라서 장애아를 낳았냐’고 묻곤 한다. 기형아 검사 정확도가 높아져도 기술에 100퍼센트는 없기 때문에 장애아는 계속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장애아 출생률을 0퍼센트로 만드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의문이 든다. 장애는 후천적으로도 생길 수 있는데, 장애인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나 역시 문득 ‘아이가 비장애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아이가 성에 차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런 바람을 갖는 것은 남편이 첫째와 둘째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물고 빨고 예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첫째 때와 달리 내가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부탁을 할 때만 둘째를 안아준다. 하루 종일 둘째 얼굴 한 번 들여다보지 않는 날도 많다. 그러나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아이는 내게 지금 있는 그대로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매일 기쁨을 준다. 어른이 문제고 사회가 문제이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 죄가 없다. 바뀌어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이다.

 

자기 속도대로 크는 아이

 고백하건대 첫아이를 키우며 나는 육아가 지겨웠다. 무척 공들여서 키웠지만 두 돌이 지나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둘까지는 낳아서 키우겠지만 더 이상의 육아는 싫다고, 둘째가 조금만 크면 내 일을 다시 갖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남들은 아이가 크는 시간이 아깝다는데, 나는 부디 빨리 커서 내 품을 떠나기만 바랐다.

 
육아가 지겹다고 너무 떠들고 다녀서일까, 느린 속도로 자라는 둘째가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육아가 이렇게 기쁨이 가득한 일이라고, 이토록 행복한 일이라고 일깨워주려고 온 아이인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병원을 많이 오가야 하고, 위험한 수술을 견뎌야 하고,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겠지만, 아이와 나는 그 특별한 경험 속에서 많이 웃고 많이 울며 더 깊은 인생을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밝은 얼굴을 한 선배 장애아 엄마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아이와 함께 웃으며 그 길을 가볼 작정이다.


민들레 2019년 7~8월호 124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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