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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6. 2020

다운증후군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4  

[민들레] 부모일기


짧았던, 평화로운 일상

둘째의 옹알이에 잠에서 깨어 바로 수유를 한다. 아침 식사와 어린이집에 보낼 첫째 도시락을 준비한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여유롭게 집안일을 하며 둘째를 돌본다. 최근의 일상이다.

 
둘째는 무럭무럭 커서 어느새 생후 6개월이 넘었다. 이유식을 기대 이상으로 잘 먹고 목청 높여 옹알이도 우렁차게 잘한다. 되집기(뒤집었다가 다시 똑바로 눕기)는 아직이지만, 뒤집고 고개 들기는 이제 능숙하다. 강원도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도 처음 가보고 여름을 맞아 바다에 발도 담가보았다. 물리치료 대기 중이라는 걸 제외하면 장애아 엄마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평범하게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지냈다.

 
다운증후군 아가들이 대부분 순하다더니 백일이 지나자 알아서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밤 9시쯤 수유를 하고 재우면 새벽 5~6시쯤 일어나 젖을 찾았다. 예민한 첫째를 키우면서는 몇 년 동안 길게 자본 적이 없는데 둘째 낳고 불과 네 달 만에 내리 7~8시간을 자니 살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백일의 기적’을 맛봤다. 다만 이유식을 시작하고 젖을 너무 적게 먹어서 가슴에 유선염이 생겼다.

 
모유수유 전문가를 찾아가니 완모 아기가 이 시기에 통잠을 자는 일은 잘 없다며 아이가 많이 순하냐고 물었다. 수유 전문가는 “계속 모유수유를 할 생각이라면 아이가 밤에 자고 있어도 시간 맞춰 먹여야 한다”며 아이를 데려가 체중을 쟀다. 한 달 동안 100그램밖에 늘지 않았다. 뒤집기 시작하며 움직임은 많아졌는데 밤에 젖을 먹지 않아 먹는 양이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매일 아이를 안고 수유를 하면서도 몸무게가 정체된 걸 몰랐다니 내가 한심스러웠다. 애가 순해서 쉴 수 있다고 좋아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있었다.

 
때마침 첫 번째 영유아검진 시기라고 우편물이 와서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이것저것 진찰을 해보던 의사는 다른 다운증후군 아기들에 비해 근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재활의학과에 가서 치료를 시작하길 권했다.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수술을 받은 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이미 물리치료를 처방받았지만 대기가 길어 언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재활의학과를 찾았다. 여러 동작을 시켜보고 아이 움직임을 관찰하던 전문의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몸의 중심근육과 다리 근육의 힘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물리치료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보통 다운증후군 아기들은 생후 6개월 이후부터 물리치료를 시작한다. 대기가 길지 않으면 3~4개월에 치료를 시작하는 아기들도 많다. 물리치료는 이미 예상한 수순이다. 그러나 같은 월령대의 평균보다 늦은 데다 약한 아이들 중에서도 더 느리고 더 약하다고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먼저 다운증후군 아기를 키운 선배 엄마들에게 6개월에 목을 가누는 아이도 있다고 들었을 때 ‘설마 내 아이가 그 정도로 느릴까’ 하고 흘려들었다. 둘째는 7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 목을 잘 가누지 못한다. 병원에 가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에 취해서 아이의 발달을 제대로 돕지 못한 건 아닐까 자책했다.

 
이런 나인데도,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것을 밝히고 『민들레』에 육아 일기를 쓰다 보니 ‘훌륭하다’는 반응을 종종 접한다. 상대는 좋은 의도로 하는 칭찬이지만 들을 때마다 난감하다. 얼마나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얼마나 방황하는지를 솔직히 밝히려고 애쓰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훌륭하다’일 때 벽에 갇힌 느낌이다. 난 훌륭한 엄마가 아니다. 훌륭한 사람도 아니다. 엄마 노릇도 그저 간신히 하고 있다. 친구의 말을 빌자면 ‘겨우 인간’인 셈이다. 사람답기조차 힘든데 훌륭함은 가당치도 않다. 칭찬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고 싶고 보통 엄마이고 싶은 나에게 어서 전형적인 ‘훌륭한 장애아 엄마’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훌륭한 장애아 엄마’라는 허상

 둘째의 상태를 알고 자료들을 찾아보던 중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 은혜를 키우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장차현실 작가의 책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와 『또리네 집』을 읽게 됐다. 나보다 먼저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세상과 부딪친 선배 엄마의 이야기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출산 다음 날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던 장 작가는 “불행은 뻥튀기 되어 엄청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며 그 속에 행복이 있었다고 말한다.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장애아를 키우는 이야기인데도 슬프고 어둡기는커녕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장면이 많다. 딸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난 장애인이라 못하지~” 한다는 장면에서는 고정관념을 깨는 쾌감마저 준다. 하루아침에 덜컥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 삶에 웃음도 있다는 걸 장 작가의 작품을 보며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작가와 이제는 캐리커처 작가가 된 딸 은혜 씨의 강연이 열려서 둘째를 안고 찾아갔다. 발달장애인의 삶과 예술에 대해 ‘가치를 바꾸는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이었다. 모녀 작가를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청중 중 한 명이 “어떻게 장애아를 이렇게 잘 키웠냐”며 “훌륭한 엄마라서 그런가 보다”고 작가의 말에 끼어들었다. 장 작가는 “그게 아니라는 게 오늘의 주제”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 작가는 딸의 어린 시절부터 언어치료, 물리치료, 감각통합치료 등 다양한 특수교육을 시키고, 대안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게 하는 등 교육에 무척 공을 들였다고 한다. 장애아를 위한 대안대학교까지 졸업했으나 성인이 된 은혜 씨를 반기는 일터는 없었다. 학창 시절 대중교통으로 등하교를 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시선강박이 생겼던 은혜 씨는 세상과 단절된 채 방에 들어앉아 뜨개질만 하기 시작했다. 그간 애써왔던 교육이 무색하게 퇴행이 왔다. 틱장애와 조현병이 생겼다.

 
딸을 방에서 나오게 하려고 장 작가는 본인이 운영하던 화실의 청소를 맡겼다. 그곳에서 은혜 씨는 청소 대신 수강생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은혜 씨는 2천 점이 넘는 인물화를 그린 캐리커쳐 작가로 우뚝 섰다. 장 작가는 “오랜 시간 아이를 비장애인처럼 살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늦게나마 ‘남들처럼 살기 위함’이 아닌 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도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강연이 끝난 후 책에 사인을 받으며 은혜 씨가 다닌 대안학교에 대해 질문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안학교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떤 교육을 시키는지가 아니었다고, 뒤늦게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강연을 듣고도 나는 초반에 끼어 든 청중처럼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장 작가는 다시 한 번 “학교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걸 후회한다”며 “정말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지 그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길고 학령기는 짧아요. 지금은 학교 교육이 전부일 것 같지만 그 이후가 훨씬 길고 중요해요. ‘이 아이와 함께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봐요.” 6개월짜리 다운증후군 아기를 안은 내 등을 쓸어주며 장 작가가 건넨 말이다.

 
그제야 어느 학교에 보내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막연하게 던진 내 질문이 시기상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아이의 교육을 걱정하면서, 정작 느리게 크는 둘째를 맞이한 우리 가족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 작가의 책 『또리네 집』에는 대안학교에서 모녀가 겪은 상처가 짤막하게 등장한다. 통합교육에 동의했다가도 어려운 일이 생기자 ‘역차별’과 ‘합리’를 내세워 장애 학생을 배제하는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 뜻이 맞는 학부모들과 회의를 거듭했다는 내용, 그리고 끝내 떠밀리듯 학교를 그만둔 내용이 나온다. 몇 장의 만화로 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학교가 아니라 삶이라고 ‘선배 장애인 엄마’는 ‘초보 장애인 엄마’에게 조언했다.

 
타인의 잣대에 불편해 하면서도 나 역시 장 작가를 ‘훌륭한 장애인 엄마’의 표본으로 삼고 따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이가 다닌 학교를 궁금해 하고, 어디로 갈지, 어느 곳을 피할지 계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팁을 주는 대신 그는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장 작가는 스스로를 훌륭한 엄마가 아니라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나에게 ‘훌륭한 엄마이자 인생 선배’가 되었다  .



있는 그대로 보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은혜 씨의 틱장애와 조현병이 기적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장 작가는 “이것이 사람을 살리고 가치를 바꾸는 예술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2천여 점의 인물화는 은혜 작가가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셀러로 참가해 그린 캐리커쳐 작품들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장애인으로서 은혜 씨를 바라보는 시선과 캐리커쳐 작가로서 은혜 씨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 치유의 비밀이 있었다. 2천여 명의 모델들이 작가로서의 은혜 씨를 바라보는 존중의 시선이 그를 낫게 했다.

 
은혜 작가는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작품 활동을 소개했다. 간간히 청중을 웃기기도 했으며 강연이 끝날 때는 노래도 한 곡 멋지게 불렀다. 시종일관 당당하고 적극적이었다. 틱장애가 있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술가로서, 사회인으로서 당찬 모습을 보며 내 아이도 저렇게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장 작가는 양평에서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를 조직하여 부모운동을 하는 동시에 예술협동조합 ‘틈’을 만들어 은혜 작가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이 조합에서는 각자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예술 활동이 맞을지 찾고 즐기도록 돕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소근육 발달이 잘 되지 않아 연필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 이야기였다. 연필이나 일반 붓으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그를 지켜보던 장 작가는 큰 붓과 큰 종이를 주고 대근육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었다. 팔 전체를 써서 대근육으로 그린 그림은 힘이 있고 시원시원했다. 편견을 버리고 아이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봐주면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면 아이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시선이 변화의 실마리였다.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건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다. 엄마라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바라봐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모두가 그렇게 바라본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될 것이 분명하다. 처음으로 다운증후군 아기 엄마가 되어 좋은 점을 깨달았다. 둘째에게 비장애인처럼 되기를 강요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태도는 첫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내 기대를 강요하지 않기란 비장애인의 부모에게도 아주 힘든 일이다. 편견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둘째뿐 아니라 장애가 없는 첫째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둘째 덕에 그 이치를 조금 더 일찍 깨우친 것 같다.

 
둘째를 다시 보았다. 부족했던 수유량을 늘리기 위해 밤 수유를 다시 시작했다. 쌀미음은 잘 먹지만 애호박이 들어가자 뱉어내는 양이 늘었다. 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낮잠이 줄어들고 있고 잠투정도 생겼으며 유모차에서는 잘 잠들지 못한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인상 쓰고 소리를 지르며 거부하기도 한다.

 
물렁물렁한 뱃살이 마냥 부드럽다. 목은 아직도 힘없이 꺾이지만 손은 야무지게 쪽쪽 빤다. 누워서 버둥거리다 손으로 발을 잡는다. 누워서 발을 잡는 동작은 배와 다리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얼마 전 검진 때 또래들은 가능하지만 둘째는 못한다고 답했던 바로 그 항목인데 며칠 사이에 할 수 있게 됐다. 더디지만 분명 나아가고 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다시 본 둘째는 남보다 느릴지언정 매일매일 크고 있다.

 
눈을 맞추자 둘째가 웃는다. 울다가도 나를 보면 금세 웃는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쭈쭈를 찾다가도 잠시 눈을 올려 나와 눈 맞추는 걸 잊지 않는다. 둘째는 그렇게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훌륭한 엄마가 아닌,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모순투성이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웃어준다. 내가 이제야 시작하려는 ‘존중의 응시’를 갓난쟁이 둘째는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 아이와 나의 시선이 마주칠 때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민들레 2019년 9~10월호 125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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