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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06. 2020

다운증후군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5

[민들레] 부모일기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둘째는 이제 9개월에 접어들었다. 2백 일을 넘기고 되집기(뒤집었다 다시 바로 눕기)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데굴데굴 구르는 건 2~3일에 한번 할까 말까다. 배밀이도 아직이다. 전보다는 목을 더 잘 가누고 소리가 나면 고개를 돌려 옆을 보기도 하지만 백일 앞둔 장애 없는 아기보다도 힘이 없다. 미음은 50밀리 넘게 꿀떡꿀떡 잘 삼키지만 밥알이 조금이라도 있는 죽은 토악질을 해서 중기 이유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자지 않을 때에는 하루 종일 옹알이를 한다. 까르르 소리 내어 더 많이 웃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 지르며 우는 일도 잦아졌다. 몸 상태가 괜찮은지 검사할 때가 되어 한동안 또 종합병원 외래 진료를 다녔다.

 
비뇨기과에 갔더니 미하강 고환이 조금 내려왔지만 제 위치는 아니어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심장수술 가능성이 있으니 고환 수술은 심장검사 후에 시기를 정하자고 했다. 사시와 안구진탕 때문에 찾은 안과에서는 다행히 원시가 심하지 않아 안경은 쓰지 않아도 되지만 사시수술을 해야 한다고, 지금 해도 두돌 전에 재수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다음 달에 예정돼 있는 심장초음파 결과마저 좋지 않으면 둘째는 두 돌이 되기 전 다섯 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하게 된다.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이젠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땅이 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떨어지고 떨어져도 또 떨어질 곳이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아이는 내 품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고 잘 자는데 왜 이렇게 문제가 많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지’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종교가 없는데도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보다 더 큰 슬픔은 물리치료가 시작된 후 찾아왔다. 둘째의 근력이 다운증후군 아이들 중에서도 많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고 했다. “제가 본 아이들 중 근력이 제일 약해요”라고 말한 치료사도 있다. 아이를 가만히 눕혀놓으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움직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장애를 가진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의연했는데, 발달이 늦은 것은 모두 내 탓인 것 같았다.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밀려들었다.

 

육아관을 뒤흔든 충격


다운증후군이 있지만 갓 태어난 아기에게 필요한 보살핌은 여느 아기와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그래서 장애가 없는 첫째를 키웠듯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책장에 빼곡한 육아서들을 다시 들춰보며 반복되는 하루의 리듬이 아이에게 스며들기를 바랐고, 주변 환경은 자극이 심하지 않게, 단순하고 고요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되도록 전등불을 켜지 않았지만 피치 못할 때를 대비해 전등갓에 한지나 천을 덧대어 불빛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커튼 색도 따스한 계열로 바꿨다. 아이 옷도, 아이를 재우는 요 패드와 감싸는 이불도 전부 순면 소재로 준비했다. 첫째를 키울 때와 다른 점은 소리 나며 움직이는 전동 모빌을 보는 시간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를 챙기는 동안 둘째를 눕혀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민’이라고 붙은 장난감, 육아용품들이 많다. 나 또한 첫째를 낳고 국민아기체육관, 국민문짝, 국민모빌, 국민바운서 등 인기 있는 육아용품을 여기저기서 물려받았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가 빙글빙글 돌고 색깔이 화려한 무언가를 보고 만지는 게 영 께름칙했다. 아이가 하나였기에 잠깐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곤 거의 안고 있었다. 장난감을 쓸 필요성을 못 느껴서 국민 육아용품들을 주변에 나눠주었다.

 
첫째가 9개월 즈음,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자연물을 접하게 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난감이나 미디어를 차단하는 교육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에 맞춰 첫째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놀잇감은 손뜨개나 바느질로 직접 만들어주었다. 동요 파일을 틀어주는 대신 안고 노래를 불러주었고, 마트나 키즈카페 대신 공원으로, 산으로 갔다. 아이를 재우면 육아서를 찾아 읽고 다른 엄마들과 토론을 하기도 하고 육아 강연도 찾아 들었다. 열심히 했고, 내 육아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둘째도 같은 방식으로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돌볼 때는 정성스런 손길로 편안하고 차분하게 대하지만 아이가 혼자 잘 놀 때는 구태여 자극을 주거나 놀이를 이끌지 않았다. 옆에서 미리 자극을 주기보다 아이 속도대로 발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싶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한다, 움직여줘야 한다, 소리를 많이 들려주고 시각 자극도 많이 줘야 한다고 선배 엄마들이 조언했지만 흘려들었다. 첫째를 키울 때도 주변에서 좋다는 육아용품, 나들이 장소 등을 추천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아이를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영유아검진과 재활의학과에서 아이 근력이 약하다고 했을 때도 치료가 너무 늦었을까 걱정했을 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내 육아방식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8개월을 키웠는데 물리치료사가 아이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집에서 아이를 혼자 누워서 놀게 하나요? 그러면 절대로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마땅히 해야 하는 동작들을 둘째가 얼마나 못하는지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수천 수만 번 뒤집고 또 뒤집어야 근육이 발달하고 힘이 생깁니다. 그래야 배밀이를 할 수 있고 길 수 있어요. 그래야 또 근력이 생겨서 앉을 수 있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잡으려고 움직여야 신체가 단련돼서 설 수 있어요. 다운증후군 아기들은 호기심도 떨어지고 근력도 약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엄마가 아이 몸을 움직여 그 횟수를 채워줘야 다음 발달로 넘어갈 수가 있어요.”

 
커다란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아이가 순해서 잘 잔다고 밤중수유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가 혼자 잘 논다고 방치를 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보통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보면 만지고 싶어 하고 입으로 탐색하기 위해 빨곤 한다. 기저귀를 갈기 힘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엄마가 진이 빠지기 일쑤다. 그렇게 수천 수만 번을 움직이며 근육을 키워서 하나씩 발달 단계를 성취해나간다. 내 아이는 순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수없이 움직여서 발달해나갈 힘이 없는,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나는 첫째 때의 육아관에 매몰되어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후회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상적인 육아상을 정해두고 아이의 특성과 상관없이 거기에 맞추려고만 애썼다. 엄마로서 최악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 육아관을 바꿔야 할 정도로 둘째가 ‘다른 존재’라는 것도 절망스러웠다. 장애가 곧 비정상이 아니라는 뜻에서 ‘정상인-장애인’이라고 말하는 대신 ‘비장애인-장애인’이라고 지칭했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같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통합교육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도 되기 전의 아기를 키우는 방식조차 달라야 한다면 같은 존재가 아닌 건 아닐까, 그야말로 ‘비정상’인 거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발달이 느린 것보다, 수술을 몇 번이고 해야 하는 것보다, 첫째를 키운 방식으로 둘째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겐 더 절망스럽고 아팠다.

 
부랴부랴 중고로 국민아기체육관을 사왔다. 아나바다 장터에서 현란한 원색의 촉감 인형도 사왔다. 운동시키는 데 좋다는 짐볼도 주문했다. 수유 후 트림을 시키면 내려놓자마자 바로 장난감이나 소리 나는 치발기를 손에 쥐어주었다. 쉬고 싶은 듯 움직이기 싫다고 짜증내는 아이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억지로 데굴데굴 굴렸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는 치료사의 말에 이유식을 먹이는 방향도 수시로 바꿔서 다른 방향을 보게 유도했다. 몸집은 커지는데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안느라 손목 통증이 심했지만 아이를 운동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숟가락 들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다. 그러나 매주 물리치료실을 갈 때마다 숙제검사 맡는 기분이라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치료사는 아이 움직임이 나아지고 있다고, 계속 운동시켜주라고 독려했다.

 
조금 컸다고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한 둘째는 억지로 운동을 시킬 때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거부했다. 재활의학과 의사나 물리치료사는 확신이 있겠지만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아이가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동작을 억지로 시키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에게 맞는 돌봄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꾸역꾸역 시키면서도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그러다 발도르프 특수교육에 관한 책을 발견해 읽게 되었다. 대안교육에서는 특수교육을 어떻게 다르게 하는지 궁금했다.

 

돌고 돌아 다시, 사랑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위로를 받았다. “불완전하게 발달한 어린이를 교육하려는 사람은 그 이전에, 너무나 당연히, 건강한 어린이를 위한 교육 실천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반드시 습득해야만” 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를 키울 때 쌓은 육아 지식과 기술이 더 이상 쓸모없을까봐 슬펐는데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위안이 됐다. 이어진 장에는 “사실 우리는 어린이의 영혼 생활이나 인간의 영혼 생활이 정상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권리가 전혀 없다”며 정상, 비정상에 대한 판단에서 벗어나 “사실을 순수하고 깨끗하게 관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쓰여 있었다. 여러 사례와 발도르프 교육학에서의 교수법이 적혀 있지만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다운증후군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들도 있었다. 다만 아이에게 교사의 생명력, 감정, 정신의 상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내 역할이 보였다.

 
당장 어려운 특수교육 지식을 다 습득하고 재활치료 방법을 배울 수는 없지만 내 상태를 바꾸는 건 가능하다. 교사의 상태가 중요하다고 책에 적혀 있을 정도인데, 매일 아이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과 생각, 상태는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끼칠까. 수없이 들었던 “아이 교육은 부모가 바로 서면 자연스레 된다”는 말이 장애아를 키울 때도 당연히 해당되는 거였다. 엄마가 활력이 넘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올바른 생각을 가진 채 아이를 대하고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게 곧 교육이라고, ‘특수교육’에 관한 책이 당연한 진리를 알려주었다.

 
책의 마무리에는 “진정한 사랑으로 어린이를 대하면, 진정한 사랑보다는 기술적인 요령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멈춘다면, 즉시 교육의 효능성이 나타납니다. 특수아동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돌고 돌아서 답은 다시 사랑이었다. 어떤 육아관으로 아이를 키우는지도, 아이에게 맞는 치료를 적기에 제공하는 것도, 쉬지 않고 자극을 주며 운동을 시키는 것도, 무엇 하나 사랑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 내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이상, 자책할 필요도, 힘에 부치게 애쓸 필요도 없었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이번 시련은 내 편협한 시각을 다시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볼에 뽀뽀 세례를 하는 것도, 무릎에 앉힌 채 첫째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전부 자극을 주는 행동이다. 자극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장난감으로 한정한 게 문제였다. 부랴부랴 사놓은 원색 장난감이 옆에 있어도 아이는 무채색 바지를 입은 내 다리를 만지는 걸 더 좋아한다. 불빛과 소리가 나는 아기체육관이 있지만 우리 집 고양이가 야옹, 하고 지나갈 때 눈이 더 커지고 만지고 싶어 몸을 들썩인다. 누나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힘이 없어 상체를 다 펴지도 못하면서도 박수를 치며 까르르 웃는다. 엄마와 누나의 노랫소리, 고양이의 살랑대는 꼬리, 쿵쿵대는 누나의 발소리, 누나가 흔드는 풍선 등 그 모든 게 자극이다. 싫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뒤집을 것이 아니라 아이가 호기심을 보일 때 손을 뻗어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발을 차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잡아주고, 노래를 들으며 웃을 때 둥가둥가 균형 잡는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운동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자연스레 아이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 사랑이 깃들게 하는 것, 아이를 만지는 손길에 사랑을 담을 것.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었다.

 
둘째를 만난 뒤 나는 세상에 떠도는 말들, 이미 알고 있던 문장들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깨닫는 경험을 계속하고 있다. 머리로 알고 있던 지식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행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온몸으로 앎이 받아들여졌을 때 진짜 의미를 깨우치게 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다”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겠다” “육아방식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처럼 두 번 설명이 필요 없는 쉽고 당연한 말을 재차 하게 된다. 그림을 그릴 때 같은 색을 자꾸 덧칠하면 색이 짙어지듯이, 앎이 그렇게 덧칠하듯 깊어진다는 걸 배우고 있다. 둘째는 내 앎과 삶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민들레 2019년 11~12월호 126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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