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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04. 2021

공포의 양수검사. 배에 바늘을 찌르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정밀 초음파 검사 후 2~3일 뒤에 대학병원 외래 진료가 잡혔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가져온 의뢰서와 자료를 등록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외래 진료실 앞에는 수십 명의 산모들이 대기 중이었다. 작은 산부인과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실감이 들었다. 다들 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종합병원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다니는 걸까. 이 많은 임신부들이 전부 몸에, 태아에게 문제가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걸까. 다들 나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눈앞에 앉아있는 동지들을 보며 한편으론 안심했고, 한편으론 슬퍼졌다.



대학병원 산부인과는 초음파 검사실이 진료실과 독립된 공간에 여러 칸이 있는데 초음파를 보기 위해 한 시간 이상 대기, 또 의사 진료를 보기 위해 그만큼을 대기해야 했다. 기나긴 기다림에 지칠 때쯤 내 이름이 불렸고 침대에 누워 웃옷을 들어 올려 배를 드러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초음파 담당 의사가 손소독을 하며 검사실로 들어왔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성분이었는데 정밀 초음파를 하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문제가 아주 많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한숨이었다. 그의 한숨을 들으며 내 배는 점점 딱딱하게 뭉쳤다. 급기야는 잠깐 기다리라더니 담당 교수님을 모셔왔다. 의사가 내 정밀 초음파를 확인하러 진료실을 뜨는 바람에 복도에 대기 중이던 임신부들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내 탓은 아니지만 미안했다.



두 의사는 내 배에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대어보며 대화를 했다. 한국말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조사밖에 없었다. 어디가 어때야 하는데 어떠하다, 정도의 느낌은 전해졌다. 남편은 잔뜩 굳은 얼굴로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10월 말~11월 초였는데 차가운 젤을 바른 채 오랜 시간 배를 내놓고 있으려니 추워졌다. 아까부터 배가 딱딱하게 뭉쳐서 이제 묵직하게 아프기까지 한데, 언제쯤 꿈별이 상태에 대한 대화가 끝나는 걸까 조바심이 났다. 담당 교수는 한숨 쉬던 초음파 담당 의사가 이야기하는 몇 군데를 확인하더니 어디 어디의 어느 어느 사진을 찍으라는 말을 하고 먼저 검사실을 떠났다. 전문 의학용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어디 어디에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정밀 초음파가 끝났다. 배에 문질러진 젤을 닦아내고 천천히 옷을 갖춰 입고 대기실로 나갔다. 남편은 말없이 내 손을 꼭 잡고 옆에 앉아있었다. 한참을 더 기다려서 드디어 외래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검사실에서 먼저 봤네요"라며 인사를 했지만 얼굴 표정은 밝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 들었듯이 우리가 내린 결론도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십이지장이 막혀있어서 아이가 양수를 전혀 삼키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양수 양이 많이 늘어나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코 뼈도 낮아 보이고 심장과 뇌와 신장에도 이상 소견이 보이지만 확실하진 않다고, 제일 시급하고 큰 문제는 십이지장 폐쇄라고 했다.



"원하시면 양수검사를 해볼 수 있습니다. 기형아 검사가 여러 가지 있지만 다운증후군을 확진 판정할 수 있는 검사는 양수검사뿐입니다."



이미 16주에 기형아 검사에서 고위험군이 나왔을 때 양수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터라 23주 차가 넘은 지금 양수검사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의사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 후에 의사는 무겁게 입을 뗐다.



"다운증후군 확진이 된다고 해도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신 중지를 원하면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꿈별이를 임신했을 때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나기 이전이었기에 임신 중절은 불법이었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들었던 말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없지만 대학병원까지 와서 긴 시간 다시 검사를 받고 들은 이야기의 무게감은 달랐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가 덧붙였다.



"양수검사를 해서 확진 판정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아이 출생 후에 필요한 조치를 준비할 겁니다. 우리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하면 소아외과, 신생아과, 유전의학과 등 필요한 과와 협진을 해서 태어나자마자 십이지장 수술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할 겁니다. 앞으로의 검사는 그 준비를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고개를 들어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아이를 살릴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이 아이는 기형아이니 다른 병원을 가서 죽이던지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배 속에 있을 때 해줄 건 없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바로 받을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다는 의미였다. '기형아라니! 태어나자마자 십이지장 수술을 해야 한다니!'라는 좌절이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을 수 있다니! 바로 필요한 처치를 받을 수 있다니! 살 수 있다니!'라는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교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이미 유산 위험을 겪었기에 양수검사는 내키지 않았다. 확진 판정을 받지 않고 낳아도 되냐고 묻는 내 말을 남편이 가로막았다. 그는 잠깐 밖에서 의논을 해보고 양수검사 여부를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의사는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30분 안에 결정하면 오늘 검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남편은 정밀 초음파를 본 이후로 며칠째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황이었다. 피검사 결과 고위험군이었을 때는 검사를 받지 않겠다는 내 말에 덤덤하게 동의를 해준 남편이었기에, 그리고 나는 잠이 쏟아지는 임신부였기에 그때까지는 그가 그렇게 위태로운 상태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서 남편은 울면서 말했다. 양수검사를 해달라고,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계속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예정일까지 네 달을 보낼 수는 없다고, 그는 애원했다.



경막 외 마취인 무통 주사가 싫어서 자연출산으로 첫째를 맞이한 내가, 두 달 동안 꿈별이가 잘못될까 봐 침대와 한 몸이 되었던 내가, 배에 굵은 바늘을 꽂아 양수를 빼내는, 양막 파열의 위험이 있는 검사를 선뜻 하겠다고 나설 리가 없었기에,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그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부탁했다. 제발 양수검사를 해달라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부탁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편은 고맙다며, 진료실에 양수검사 진행 의사를 알리고 수납을 하는 등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녔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굵기의 바늘이 팽팽한 나의 둥근 배를 찔렀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면서 꿈별이가 없는 쪽으로 조심스레 주삿바늘을 찔러 양수를 뽑아냈다. 나는 제발 움직이지 말라고, 제발 아무 일 없이 엄마 배에 잘 붙어 있으라고 꿈별이에게 속삭였다.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내 배는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뭉쳤다. 보통 주삿바늘은 따끔한데 굵은 주삿바늘을 배 깊숙이 넣는 양수검사는 뜨끔을 넘어 뻐근했다. 누런 양수가 주사기 몸통에 모였다. 드디어 바늘을 빼며 의사는 수고했다고,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서 한 시간 동안 그대로 누워있다가 이상이 없으면 퇴원하라고 말했다. 의료진과 검사 기기가 다 나가고 회복실에 남편과 둘이 남겨졌다. 남편은 미안하고 고맙다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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