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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11. 2021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 지옥이 돼버린 임신 후기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양수검사를 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원래 몇 주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오지만 몇십만 원을 더 내면 며칠 안에 주요 유전자 몇 개에 대한 이상 여부만 빠르게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자본주의 사회다. 남편은 설명해 주는 간호사에게 추가 금액을 내겠다고 말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왔다. 남편은 하루 종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전화가 올까 기다렸지만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야 통화가 되었다. 결과는 기형아 피검사 결과에서 그랬듯이,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보였듯이,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99.7%라고 했다. 더 이상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확실한 결과가 나와 버렸다. 몇 주 뒤 정식 결과가 나왔을 때 외래 진료에서 의사에게 0.3%의 아닐 가능성도 있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러 검사가 다 같은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고, 다운증후군이 아닐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꿈별이는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피검사 때까지만 해도 양수검사를 하지 않겠다는, 아이를 낳겠다는 내 뜻을 지지해 주던 남편은 그때는 당연히 다운증후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라고, 아이를 보내주자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큰일이라도 난 듯이 우리 집으로 몰려왔는데 한결같이 울면서 들어왔다. 이미 아이가 죽기라도 한 듯, 당연하다는 듯 임신 중절을 말했다. 확진 판정은 나에게도 청천벽력이었고,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지만, 그 와중에도 꿈별이는 내 배 속에서 양수검사 결과를 듣기 전과 마찬가지로 발길질을 하며 뒹굴고 있었기에, 난 이 아이가 이미 죽었다는 듯이 말할 수는 없었다.



"벌써 23주야. 지금 태어나도 살 수도 있어. 게다가 임신 중절은 불법인데 나보고 범법자가 되라고? 불법 수술을 해주겠다는 의사한테 내 몸을 맡기라고?"



소리치는 나에게 가족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출산 경험이 없다면 그 말을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고래를 낳았고,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출산 경험담을 들어왔기에, 지인이 출산을 하다 과다 출혈로 중환자실에서 며칠간 사경을 헤매기도 했기에 임신, 출산이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과정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합법적인 진료를 받다가도 의료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환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불법 수술대에 오르라니, 날 아낀다는 가족이 하는 말이 맞나 귀를 의심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임신 중지를 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마음 편히 하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임신이 그러하듯 임신 중지도 여성의 몸에 큰 영향을 준다. 초기도 아니고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어 유산 위험까지 이겨냈는데 겨우 자리 잡은 아이를 억지로 몸에서 떼어내다니, 마음은 둘째치고 내 몸이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난 아이보다 내 몸이 먼저 걱정되었다. 아이를 보내주라는 말이 나에게 칼을 겨누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들렸다. 온 가족이 나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날 같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이를 죽이라고 할 거면 나가라고, 다시는 우리 집에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내가 지적장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설득하려 했다. 학창 시절에 지적장애를 가진 동급생을 1년 동안 챙긴 일화를 이야기하며, 그 친구의 엄마는 늘 지쳐 보였다고 말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그런 엄마가 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애원했다. 난 그의 손을 뿌리치며 혼자라도 낳겠으니, 계속 아이를 지우라고 할 거면 이혼하자고 말했다.



잠이 쏟아지던 임신부였는데 불안함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거동이 불편한 고위험군 임신부인 나를 완력으로 불법 수술을 해준다는 병원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들었다. 불안함에 잘 때 고래의 손을 꼭 잡고 잤다. 마치 고래가 나를 지켜줄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 네 살배기의 손에 의지했다. 가장 사랑하고 믿던 사람들이 나와 꿈별이를 위협했고,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불안에 떨었다. 난 대단한 엄마라서 꿈별이를 낳기로 한 게 아니다. 안정기에 접어든 내 몸에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내가 잘못될까 무서웠다. 어린 첫째의 온기에 의지해 불안함을 달랠 만큼 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어제까지 유산 위험을 이겨낸 장한 임신부였던 나는 가족의 행복을 깨뜨리는 악녀가 되었고, 어제까지 사랑스럽고 장한 둘째였던 꿈별이는 가족의 정상성을 위협하는 방해꾼이 되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둘째였는데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고 밝혀지는 순간 더 이상 필요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리다니, 그런 폭력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태어날 자격을 누가 감히 결정할 수 있을까. 여아라서 세상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무수히 많은 여성 태아를 살해했던 시대에서 우리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걸까. 배 속의 꿈별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저 꿈별이일뿐인데, 대체 기형아 검사가 뭐라고 아이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돌변하는 걸까 원망스러웠다.



꿈별이의 장애가 달갑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 가족은 호주 이민 준비 중이었는데, 남편의 경력이 모두 인정되어 영어 점수만 조금 더 올려서 지원을 하려는 상태였다. 문제는 영주권 신청 절차 중에 마지막 단계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신체검사라는 데 있었다. 찾아보니 질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 많았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을 해보아도 부모가 호주에서 살고 있더라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하물며 우린 아직 한국에 있는데 영주권이 나올 리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족의 새 출발마저 좌절되자 남편은 더 강하게 임신 중지를 요구했다. 나도 꿈에 그리던 호주를 못 가게 된다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로 태아를 희생시키면, 그곳에서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나와 남편은 매일 밤, 고래를 재운 뒤 서로의 바닥을 드러내며 물어뜯었다. 케케묵은 서운함까지 다 끌어올려 인신공격을 해댔다. 불과 한 달 전, 일주일 전까지 너무나 사랑하던 부부였는데, 지금은 서로가 끝판왕 악당이라도 된다는 듯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싸웠다. 아이를 낳으려는 게 내 욕심이라고, 내가 온 가족을 지옥 불구덩이로 끌고 가는 거라고 그가 말했다. 넌 나와 고래를 버려두고 일하러 갔잖아, 어차피 너 없이 고래를 키웠는데 둘이라고 못 키울 거 같냐고, 2년간의 해외 근무를 들먹이며 내가 쏘아붙였다. 남편은 더 이상 자신이 지은 꿈별이의 태명조차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애 때문에 가난하고 불행해질 거라고, 그때 가서 자기 탓하지 말라고 그가 소리쳤다. 당장 내일 고래한테 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기면 고래도 버릴 거냐고 내가 맞받아쳤다.



그렇게 24주를 지나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다. 우린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되었다. 고래 앞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할 뿐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내 손을 잡아끌고 불법 중절 수술을 하는 병원에 데려갈 만큼 나쁜 놈은 아니었다. 꿈별이는 내 배 속에 있기에, 내가 완강히 버티자 가족들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새끼 지킬 거라며, 떠날 테면 다 떠나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남편이 정말 나를, 우리를 떠날까 봐 매일 두려웠다. 그러면서 뼈아프게 깨달았다. 나에게는 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발 나와 아이들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반대로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전 05화 공포의 양수검사. 배에 바늘을 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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