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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19. 2021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이유

[다운 천사 꿈별 맞이]



꿈별이의 장애를 배 속에 있을 때 알았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엄마들 중에도 만약 미리 알았다면 자신은 다른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들의 지지 없이, 모두가 낳지 말라고 말하는 장애아를 꿋꿋이 낳겠다고 버티던 임신 후기의 나는 스스로 돌이켜 보아도 강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이미 이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임신 초기에 피고임이 있었고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몇 번이나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할 만큼 꿈별이는 자리를 잡는 데 오래 걸렸다. 그건 첫째 고래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고임이 사라지지 않아서 퇴사를 하고 절대 안정을 취했다. 고래 때는 입덧이 지나갈 무렵 피고임도 사라지고 안정기에 접어들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활동적으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 임당 검사를 두 차례 받긴 했지만 모든 검사에서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예정일보다 3일이 지난 아침 진진통 세 시간 만에, 병원 도착 40분 만에 3.8kg의 건강한 고래를 자연출산으로 만났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꿈별이 임신 초기에도 심장 소리를 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고임이 있고, 입덧이 심했지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고래처럼 건강히 만날 거라고 믿었다.



몇 번 허탕을 친 후 꿈별이의 심장 소리를 듣던 날, 나는 이미 이 아이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남편이 지은 태명도 마음에 쏙 들었다. 꿈별이라는 태명 때문인지 임신 기간 동안 습식 수채화를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 안에 노란빛이 반짝이는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다.



두 번째라고 마음을 너무 놓아서일까, 안정을 충분히 취하지 않아서일까, 하혈을 하고 유산 위험으로 꼬박 두 달을 누워만 지냈다. 하혈 후에 꿈별이를 잃게 될까 봐 눈물로 지새울 때 꿈별이는 태동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울지 마."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퇴원 후 집에서 누워만 지낼 때 고래가 어린이집을 가고 남편이 도서관에 간 사이 나는 유튜브 영상이나 TV 다시보기를 봤다. 꿈별이는 힙합을 좋아했다. <쇼미더머니>를 볼 때면 둠칫둠칫 발차기를 했다. 록 음악도 좋아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이라도 받은 듯 격하게 움직였다. 누나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엄마 배를 만지면 꼭 발차기로 화답해 주었다.



꿈별이와 나는 한 몸이었고 우린 이미 교감하고 있었다. 배 속에서 아이를 품었다가 만나는 게 어떠한 경험인지 이미 해봤기에 둘째맘인 나는 주저 없이 배에 손을 대고 태담을 했다. 고래 임신 때 그랬듯이 우리집 고양이들도 배 속 꿈별이와 교감했다. 고양이들은 꼭 배 위에 올라와서 그릉그릉 골골송을 불렀다. 그러면 꿈별이도 기분 좋은 듯 부드럽게 태동을 했다.



마침내 일상생활을 해도 되겠다는 기쁜 소식을 듣던 날, 꿈별이는 초음파 화면에 성별을 확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초음파 검사하기가 힘들 만큼, 피가 흐르고 양수가 새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는 내 배 속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편안하게 지냈다. 나와 꿈별이는 이미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양수 검사 결과를 알기 전까지 사랑하는 내 아기였는데 다음 날 갑자기 그 사랑이 식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나를 지킬 것이다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누구도 아이를 낳으라고, 낳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다. '가임기 지도'처럼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나, 임신 중절을 처벌하는 법이나, 장애아를 낳지 말라는 강요가 결국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국가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아이를 낳고, 또 필요 없다고 하면 아이를 지워야 하는 도구,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정상' 태아만 낳아 제공하는 도구로 보는 것이다.



남편과 다른 가족들이 내 임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게 경악스러웠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아니고 타인인데 내 몸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려고 하다니, 존엄성이 침해 당하는 느낌이었다. 임신을 겪고 있는 게 나고, 출산도 임신 중지도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내 마음이 감당해야 하는 일인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에 대해 너무 쉽게 입을 떼는 게 화가 났다.



아이는 가족이 같이 키우니까 함께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해외 발령으로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나는 혹독한 몸살에 걸렸을 때도, 한파에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도, 취객이 새벽에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도, 알레르기 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 아이가 밤새 피가 나도록 긁어댈 때도, 세 달 동안 다래끼를 달고 살다 결국 수술할 때도 혼자 고래를 돌봤다. 물론 도움을 청하면 부모님들이 와주시기도 했지만 같이 살지 않는 이상, 남편까지 집에 없는 상황에서 육아는 100% 내 몫이었다. 출산만큼이나 철저하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일이었다. 가족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울 수 있지만, 내가 잘못되면 아이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걸 매 순간 느끼는 게 바로 독박 육아다. 그 무게를 어깨에 지고 아이를 안고 달래며 밤을 지새우는 게 독박 육아 시절 내 일상이었다. 가족이니까 임신, 출산에 대해, 육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면, 그건 월권이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로 했다. 나 대신 아이와 양수를 배에 품고 다닐 게 아닌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나 대신 피 쏟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꿈별이를 지킬 사람이 나뿐이었던 것처럼 날 지킬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가족의 강요에 못 이겨 아이를 포기하면 난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 마음을, 내 영혼을 지켜줄 사람도 나뿐이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내 몸과 마음에 대한 결정권을 남에게 줘 버리고, 이미 사랑하고 교감하던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 힘들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고래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겠다



난 첫째인 고래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미칠 것 같지만 그만큼 사랑한다. 알고 보니 고래가 난치병을 품고 있었다면? 갑자기 내일 고래에게 사고가 생겨 영구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면? 내 사랑이 변할까? 건강한 비장애인이었던 내 아이가 아프게 된다고, 장애를 갖게 된다고 내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음 그대로 꿈별이에게도 해주기로 했을 뿐이다. 장애를 이유로 꿈별이를 포기하면, 언젠가 고래가 커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장애인이 되면 엄마는 나를 버릴 거야?"라고 물어올 것 같았다. 난 그렇지 않다고,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언제나 너를 사랑할 거라고 고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꿈별이가 내가 기대하던 건강한 비장애인 태아가 아니더라도 계속 사랑하기로 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걸 알고 꿈별이를 낳아서 키우면 고래에게 그 말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너희들이 어떤 모습이어도, 엄마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거야. 언제나 사랑할 거야." 그 말을 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꿈별이를 낳아서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꿈별이를 낳기로 했다.







제 글은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고, 키울 수 있는 상황이었던 저에게만 해당되는 글입니다. 저와 다른 선택을 하신 분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렸든, 그것은 최선의 결정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사회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세상이라면 제가 이렇게까지 고민했을까요? 가족들이 그렇게 반대했을까요? 장애아를 키우지는 못하겠다고 결정을 내렸을까요? 우리가 할 일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질병을 가진 사람도, 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불평등한 세상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 자신을 책망하거나 타인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 고통의 고백이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이길 바랍니다. 그 목표를 품고 부족한 글이지만 써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제 글로 인해 상처받는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3월 21일은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입니다. 영국에서는 다운증후군 당사자들이 "우리를 걸러내지 말라!(Don't Screen Us Out!)"며 기형아 검사 결과를 이유로 임신 중지를 허용하는 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일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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