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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pr 01. 2021

꿈별이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십이지장 폐쇄 수술


생후 이튿날 십이지장 수술



십이지장이 선천적으로 기형이라 폐쇄 상태로 태어난 꿈별이는 엄마 품에서 쉬지도 못하고 초유도 한 방울 먹어보지 못하고 바로 신생아집중치료실(NICU)로 가서 수술을 위한 검사를 받았다. 아이가 무사히 숨을 쉬고 NICU로 옮겨지는 것을 확인한 후 두 시간 정도 달게 잠을 잤다. 출산 후 내 상태가 괜찮아서 두 시간 후에 입원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는 침대를 밀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정말 고생하셨어요. 무통도 안 맞고 유도 분만을... 정말 수고하셨어요. 아이 걱정은 말고 이제는 푹 쉬세요"라고 말했다. 양수 감압술을 받고 유도 분만을 했기에 분만실에 있던 의료진들은 나와 꿈별이의 상태에 대해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유독 마음을 써주시는 것 같았다. 첫째 고래를 자연출산으로 만났을 때와 너무 달랐기에 삭막한 대학병원의 시스템 속에서 진통하는 게 많이 긴장되고 불안했는데 날 대하는 의료진도 고위험군 임신부, 기형아 출산이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출산 후 아이도 나도 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뒤부터는 의료진들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출산을 할 때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자궁수축을 촉진할 뿐 아니라 쾌락과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고래를 의료 개입 없이 자연출산으로 만났을 때 옥시토신 샤워를 제대로 해서 잠을 몇 시간 안 잤는데 피곤하지도 않고 방금 아이를 낳았는데 힘들기는커녕 신나고 쌩쌩해서 내 손으로 여기저기 출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옥시토신 때문인지 꿈별이가 수술 전 검사를 위해 NICU에 떨어져 있는데도 그다지 슬프거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임신 12주에 침대 패드와 매트리스 커버까지 전부 버릴 정도로 하혈을 하고 양수가 샜는데 모든 고비를 다 넘기고 37주 6일까지 엄마 배에 꼭 붙어 무럭무럭 커준 꿈별이가 대견했다. 양수 과다증으로 앉아만 있어도 신물이 올라와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숨이 차서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서있어도 다리가 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힘들게 임신 후기를 보낸 고위험군 임신부였던 내가 갑작스러운 유도 분만을 잘 치른 게 자랑스러웠다. 임신 후기에 철분 부족으로 수혈 위험까지 갔는데 열심히 철분제 챙겨 먹고, 무쇠솥에 밥 지어 먹어서 출산 후에 철분제 링거만 맞아도 될 정도로 수치가 좋아진 것도 다행스러웠다. 모든 게 감사했다.



아이가 여러 장기 기형과 염색체 이상을 갖고 있고 유산 위험도 있었으니 살 아이가 아닌 모양이라고, 보내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난 이 아이가 꼭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었다. 꿈별이를 출산하면서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 모든 위험과 고비를 다 넘기고, 막힌 십이지장과 구멍 난 심장, 하나 더 있는 염색체, 그 외에도 여러 합병증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kg이 넘게 몸집을 키워 기어이 세상 빛을 본 꿈별이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임신 중에도 태동으로 교감을 나눴지만, 진통과 출산을 함께 하면서 꿈별이와 나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태아와 호흡이 맞는 느낌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표현할 말이 부족하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친구들과 영차영차 줄다리기 호흡을 맞춰서 이겼을 때 환희와 뿌듯함의 만 배쯤 될 것 같다. 꿈별이의 탄생이라는 목표를 향해 수많은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아 나와 꿈별이가 2인 3각으로 발을 맞춘 거랄까. 유치한 비유밖에 못하는 내 언어의 빈곤이 답답하다. 어쨌든 꿈별이는 엄마인 나와 내내 소통하고 교감했다. 탄생은 꿈별이와 내가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룬 첫 경험이었다. 출발이 좋았다. 우린 좋은 관계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NICU와 입원실에 서로 떨어져 있지만 외롭지 않았다.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찼다. 앞으로 우리 앞날에 장애물이 많겠지만 출산 때처럼 꿈별이와 내가 호흡을 잘 맞추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크고 복잡한 수술도 꿈별이가 잘 버텨줄 거라고 믿었다.



의사를 만나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듣는 건 전부 남편이 알아서 했다. 옥시토신 샤워가 끝나고 훗배앓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진통제를 찾으며 괴로워하는 사이, 꿈별이는 수술대에 올랐다. 십이지장 폐쇄 상태로 태어난 꿈별이는 십이지장이 막힌 부분을 잘라내고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꿈별이를 낳기 전까지는 십이지장이 그렇게 중요한 기관인 줄 몰랐다. 십이지장에서 많은 소화 효소가 나오는데 신생아의 십이지장은 너무 작아서 잘래낸 조직 어딘가에 소화 효소 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십이지장이 잘 연결된다고 해도 살면서 효소 분비에 지장이 나타나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담당 의사는 설명했다. 갓 태어난 꿈별이의 배에 가로로 길게 칼자국이 생겼다.




꿈별이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



꿈별이가 수술을 마치고 NICU로 돌아와 상태를 살피는 사이 나는 퇴원할 날이 되었다. 수술 다음 날 병원 복도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서 NICU로 면회를 갔는데 약에 취해 자는 얼굴만 볼 수 있었다. 인큐베이터 속의 꿈별이는 온갖 의료기기와 호스와 주사 줄에 연결된 채 배를 다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인큐베이터 위 모니터의 심장 박동 그래프로 아이가 잘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신생아는 엄마 배 속에서 나와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속싸개로 꽁꽁 싸매서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둘째 엄마가 싸개를 다 풀어헤친 채 딱딱한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의료기기에 연결되어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보는 건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이었다. 누가 땅 밑에서 내 심장을 밑으로 세게 잡아 당기는 것 같았다.



산부인과 퇴원 수속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기 전 다시 꿈별이 얼굴을 보려고 NICU 면회 시간을 기다렸다. 손 소독을 하고 일회용 가운을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썼다. 꿈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십이지장 수술이 잘 되었는지 확인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기에 링거로 영양 공급을 해주고 있다고 NICU 간호사가 설명해 주었다. 아이 입에 노리개젖꼭지가 물려져 있고 그 위로 볼까지 가로질러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젖을 빠는 행동을 하는데 아직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노리개젖꼭지를 물려 놓았다고 했다. 스스로 젖꼭지를 잡을 수도 없고, 보호자가 옆에 붙어 빠질 때마다 젖꼭지를 입에 넣어줄 수도 없기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거겠지만 신생아 얼굴에 테이프라니, 마음이 아팠다. 본능은 참 신기하다. 링거 줄에서 영양 공급을 받고 있는데도 꿈별이는 배가 고픈지 연신 젖꼭지를 쪽쪽 빨아댔다. 고래를 완전 모유 수유로 키운 나는 입을 쪽쪽 빠는 꿈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 감염 위험 때문에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었다. 목구멍이 뜨거웠지만 짧은 면회 시간 안에 전할 이야기가 있었기에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꿈별아, 엄마 왔어. 수술하느라 힘들었지? 배고프지? 꿈별이 다 나으면 엄마 쭈쭈 먹을 수 있어. 얼른 나아서 엄마랑 집에 가자. 오늘 엄마는 먼저 집에 갈 거야. 그런데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오고, 매일매일 꿈별이 보러 올 거야."



인큐베이터 상자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꿈별이 눈이 움찔움찔 움직였다. 꿈별이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마침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수술 후 검사에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꿈별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엄마를 보려고 힘껏 눈을 뜬 것 같았다. 꿈별이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묵직한 감동이 몰려왔다. 생사를 건 수술을 치르고 본능대로 먹을 수도 없이 몸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꿈별이는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이런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온 힘을 다해 살려고 애를 쓰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와 서로 눈을 맞추는 것. 살아 있는 너와 내가 마주 보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세상에 있을까.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이 아이와 함께 살아내겠다는 크나큰 용기를 얻었다. 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너랑 살고 싶어졌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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