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Apr 09. 2021

다운증후군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염색체 검사 결과


아이를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두고 퇴원을 해서 눈물 바람을 하는 것도 잠시, 할 일이 많았다. 며칠 동안 엄마랑 떨어져 있던 고래를 안아주고, 동생이 누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미리 사둔 자전거를 꺼내 줬다. 동생의 탄생 때문에 충격받을 첫째를 위해, 동생이 가져오는 거라고 이야기를 꾸며서 선물을 주는 엄마들이 주변에 많았다. 둘째 임신 전까지만 해도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막달이 되자 실없는 유행이라도 따르고 싶었다. 아이를 낳으러 입원한 사이 첫째를 봐준 엄마께 인큐베이터에 있는 꿈별이 사진을 보여드리며 같이 울었다. 퇴원 전에 미리 산후도우미 업체에 전화를 해서 출산 소식을 알렸기에 퇴원 다음날 담당 산후 관리사님이 오셨다. 친정엄마는 관리사께 인수인계를 해주고 집으로 가셨다.


꿈별이의 장애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해야 해서 NICU에 있다고, 병원 면회를 다녀야 하니 첫째 등·하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채식을 하니 고기 빼고 미역국을 끓여주십사 부탁드렸다. '이모님'은 아이 두고 퇴원하기 마음 아팠겠다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무 걱정 말고 푹 쉬고 옷 단단히 입고 면회 다녀오라고 하시더니 인터넷 검색을 한 뒤 채식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어 주셨다. 숫기 없는 첫째도 첫날부터 '이모할머니'를 잘 따랐다. 한시름 놓였다.


이제 출산은 클리어했으니, 모유를 유축할 차례였다. 미리 친구에게 유축기를 물려받아서 병원에서부터 세 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처음 며칠은 잘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 맞춰 자극을 줘야 했다. 아이와 같이 있었다면 주야장천 젖을 물리면 되지만 유축을 하려면 알람도 맞춰야 하고 유축기 깔때기와 젖병도 씻어야 하고 모유 저장팩에 옮겨 담고 기록도 하고 냉동도 해야 돼서 일이 많았다. 갓 출산한 몸으로 밤잠을 자지 않고 세 시간마다 유축하는 게 매우 고되었다. 플라스틱 깔때기에 쓸려서 유두가 찢어지고 피가 났다. 그래서 손으로 짜기도 했다. 고위험군 임신부로 내내 누워만 지내서 체력이 약해진 상태였기에 빈 플라스틱 젖병만 들어도 손목이 아팠지만 한 텀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유축을 했다. 다행히 젖양이 꾸준히 늘었다. 노란 초유를 조금씩 저장팩에 옮겨 담아 냉동하면서 꿈별이에게 어서 가져다주고 싶어 애가 닳았다.


한겨울이었다. 집에서야 난방을 따뜻하게 하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이불 속에 있으면 되지만 면회를 가려면 찬바람을 쐴 수밖에 없었다. 운전할 몸 상태가 아니라서 콜택시를 불렀다. 집 바로 앞까지 와 주면 좋았겠지만 기사님이 초행길에 단지 지리를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아서 아파트 입구까지 나가서 택시를 탔다. 롱패딩에 부츠까지 꽁꽁 싸맸지만 그래도 추웠다. 면회시간에 병원에 도착하면 NICU 앞에 양육자들이 초조한 얼굴로 줄을 서 있었다. 차례로 신발을 갈아 신고 손 소독을 하고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 위생 모자를 쓰고 NICU 안으로 들어갔다. 면회 시간은 30분이었다. 일분일초가 아깝기에 종종걸음으로 자기 아기를 찾아 흩어졌다.


꿈별이는 수술 후에도 한동안 먹지를 못했다. 거의 대부분 약에 취해 자는 모습만 보다가 돌아와야 했다. 얼굴에 테이프로 고정된 노리개젖꼭지를 하염없이 빠는 꿈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졌다. 젖도 핑 돌았다. NICU 간호사들은 친절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아이들도 있고 매우 주의를 요하는 상태의 아기들도 있어서 신경이 곤두설 법도 한데 다들 친절히 보호자들 사이를 돌며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엄마 품이 아닌 딱딱한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게 안쓰러웠는데 삐삐 소리가 나는 의료 기기와 각종 호스에 연결되어 있을지언정 아이를 지켜보는 눈과 돌보는 손은 사람의 것이었다. 의료진도 직업인이라지만 NICU에 아이를 맡긴 보호자 입장에서는 어떤 감사의 말로도 부족할 만큼 고마웠다.


나는 면회 시간 30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NICU의 면회는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으로 총 두 번이 허락되었지만 저녁 면회 시간은 산후 도우미가 퇴근하실 시간이라 첫째를 돌봐야 했으므로 점심 면회 시간에만 꿈별이를 찾아갔다. 하루 중 겨우 30분 엄마 목소리를 듣는 꿈별이가 안쓰러워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아니다. 엄마를 모를까 봐 내가 무서워서 계속 말을 걸었다. 엄마가 여기 있다고, 잊지 말고 얼른 회복해서 엄마랑 집에 가자고 말했다.


어느 날은 목에 삽입돼 있던 호스가 빠졌고, 어느 날은 배의 수술 자국이 아물어 드디어 속싸개에 싸여 있기도 했다. 간호사는 어제는 무슨 검사를 했는데 상태가 어땠고, 오늘은 무슨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다시 해야 한다는 둥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렇게 작은 아기가 엑스레이니 CT니 청력검사니, 그렇게 많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안쓰러웠다. 또 어느 날은 눈에 고글 모양의 가리개가 놓인 채 광선 치료를 받고 있기도 했다. 황달이 왔다고 했다. 첫째 고래도 조리원에 있을 때 잠깐 황달 수치가 높아졌던 적이 있어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란 걸 알지만, 꿈별이는 아직 잘 먹을 수가 없어서 더 안타까웠다.


십이지장 수술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꿈별이는 거의 매일 엑스레이를 찍었다. 마침내 소장, 대장까지 가스가 내려가는 걸 확인한 뒤 물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분유를 물에 희석해서 먹여본다고 했다. 냉동 모유를 빨리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피검사 결과 무슨 수치가 좋아져야 모유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누린 것들을 꿈별이는 무엇 하나 거저 누릴 수가 없었다. 희석하지 않은 분유를 잘 소화하고 피검사 결과가 좋아진 후에야 모유를 가져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보냉 백에 아이스팩을 넣고 냉동 모유가 들어 있는 저장팩에 병원에서 준 바코드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를 다 써서 몇 번이나 더 받아올 만큼 열심히 유축을 했다.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랑 같이 있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니 허전했다. 첫째의 마음을 살펴야 하니 대놓고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남편과는 감정적 교류가 전혀 없었다. 꿈별이 몸 상태도 걱정되고 염색체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불안했다. 양수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피를 뽑아서 염색체 검사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야 진짜 확진 판정이 나온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 양육은 어떻게 하는지, 합병증 예후는 어떤지도 수시로 검색해 보았다. 면회를 다니면서 들은 정보로는, 꿈별이는 소화기가 약하게 태어났고, 심장에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서 몸무게가 좀 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청력에 이상이 있어서 정밀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고, 잠복고환과 음낭수종이 있으며, 신장에도 음영이 보인다고 했다. 아이가 이제 막 태어났는데 기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유축을 하면서 좋아하던 미드 <프렌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홀로 유축을 하는 게 외롭고 서글퍼서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싶지 않았다. 20년 전 좋아하던 시트콤을 보면서 편히 웃었다. 새로운 드라마를 보며 궁금해하고 마음 졸일 여유가 없었기에, 이미 다 아는 내용의, 심지어 대사까지 외우는, 보고 또 봐도 웃긴 <프렌즈>가 유축 메이트로 딱이었다. 그렇게라도 웃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꿈별이는 몇십 ml씩 모유나 분유를 먹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퇴원을 준비하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다가 갑자기 어떤 수치가 안 좋아져서 미뤄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꿈별이 몸에 붙어있던 의료기기가 점점 줄었다. 마침내 심박수 측정 줄만 남았을 때는 간호사가 아이를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품에 안겨주었다. 젖병으로 수유를 해봐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다섯 살 고래에 비하면 새털처럼 가벼운 꿈별이를 안고 너무 좋아서 마스크를 쓴 것도 잊고 볼을 비볐다. 산후조리할 시기의 산모가 수유 쿠션도 없이 간이 의자에 앉아서 젖병으로 아이 수유를 하는 건 꽤 몸이 아픈 일이었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유일하게 꿈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만하고 가라는 간호사에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계속 유축한 모유를 먹였다. 꿈별이는 아직 호흡이 익숙하지 않아서 먹을 때는 숨을 잘 못 쉬었다. 먹이다가 심박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리면 얼른 멈추고 안아서 트림시키며 숨을 잘 쉬는지 지켜봐야 했다. 숨을 잘 못 쉬어서 입술이 파래지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행복하면서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드디어 퇴원 날짜가 정해졌다. 먹을 때를 제외하곤 호흡이 제법 안정되었고 다른 검사 결과도 좋아져서 퇴원을 해도 된다고 주치의가 말했다. 다만 퇴원 전에 신생아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신생아는 몸이 너무 작기 때문에 심폐소생술과 기도가 막혔을 때 대처 방법인 하임리히법이 일반적인 어린이 응급처치와 달랐다. 신생아 크기의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특별한 인형으로 훈련을 받았다. 땀이 날 때까지 흉부 압박을 하고 숨이 찰 때까지 인공호흡을 연습했다. 응급 시에는 당황해서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몸에 익혀야 한다고 교육 담당자는 여러 차례 반복 훈련을 시켰다. 응급 시에 엄마의 발 빠른 조치로 목숨을 구한 아이들 사례도 여럿 들었다.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 집에 와서 유인물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지나다닐 때마다 다시 읽으며 숙지했다.


의뢰해 놓았던 염색체 검사 결과가 퇴원 전에 나왔다. 모두가 기적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운증후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여러 번 확인을 했고, 양수 검사로 판정도 받았고, 여러 검사 결과가 다운증후군의 합병증과 정확히 일치했지만, 그래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빼도 박도할 수 없는 염색체 결과가 나온 날, 다시 한번 크게 울었다. 검사 결과지에는 21번 자리에 세 개의 염색체가 확실히 보였다. 사진을 직접 봐야 비로소 받아들이다니, 꿈별이에게 미안했다. 마침내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는 게 기정사실이 되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꿈별이는 여전히 예쁜 내 새끼이고, 한 시라도 빨리 같이 집에 가고 싶은 내 아가였다.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전 09화 꿈별이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