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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26. 2021

다운 천사 꿈별이를 만나다

[다운 천사 꿈별 맞이] 종합병원 유도 분만 출산 후기


십이지장 기형아와 양수 과다증을 가진 고위험군 임신부


꿈별이는 위에서 소장으로 연결되는 십이지장이 막혀 있는 기형을 가지고 있었다. 태아는 엄마 배 속에서 양수를 삼키고 소변도 봐야 하는데 꿈별이는 십이지장 폐쇄 때문에 양수를 삼켜서 소화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내 몸은 계속 양수를 만들어냈다. 의사는 내 배가 쌍둥이를 임신한 것만큼 크다고 말했다. 진단명은 '양수 과다증'이었다. 첫째 고래를 임신했을 때는 임신부 필라테스도 하고 산전 요가도 하고 매일 산책도 하고 운동을 많이 했는데 둘째인 꿈별이 임신 기간 동안에는 유산 위험 때문에 누워만 지냈기에 근육에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양수가 점점 늘어만 가니 숨쉬기도 힘들고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가 저렸다.


양수 검사를 하고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고 양수 과다증까지 알게 되자 고위험군 임신부로 분류되어 2주에 한 번씩 종합병원에 검진을 가야 했다. 그때마다 의사는 너무 힘들지 않냐고 바늘로 양수를 빼내는 양수 감압술을 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이미 양수 검사로 배에 굵은 바늘을 꽂은 전력이 있고, 그때 배가 딱딱하게 뭉치는 게 아프고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버텨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담당의는 사실 양수 감압술로 양수를 빼내어도 1~2주 안에 다시 양수 과다가 될 거라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좀 편히 지낼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양막에 바늘을 꽂는 시술이기 때문에 적게나마 양막 파열이나 파수의 위험이 있기에 의사도 더 권하지는 않았다. 산모가 힘들까 봐 방법을 알려주는 거라고, 사실 아이는 양수가 많으면 넓어서 편하다고도 말했다. 안 그래도 합병증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인데 최대한 배 속에 오래 있다가 나오는 게 아이 건강에 좋다고도 설명했다.


꿈별이는 염색체 이상과 십이지장 기형, 심장 구멍 등의 합병증을 가지고도 37주까지 잘 버텨 주었다. 37주 6일은 정기 검진이 예약되어 있는 날이었다. 의사는 그전 진료 때 거의 38주가 되어 출산을 해도 되는 시기가 되었으니 다음 검진 때는 양수 감압술을 받으라고 했다. 아이 몸무게도 많이 늘었고 주수도 제법 찼기에 나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감압술을 받으면 바로 출산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해서 검진일 전에 미리 출산 가방을 싸고 신생아 용품을 정리했다. 소창 기저귀를 새로 주문해서 삶고 옷장 구석에서 고래가 입었던 아기 옷을 꺼내 세탁했다. 청소도 싹 하고 친구들에게 유축기나 좌욕기 등 출산 용품도 물려받았다. 검진일 전날은 멀리 친구네 집에 가서 오랜만에 육아 동지들 얼굴도 보고 안 쓰는 젖병소독기를 받아 왔다. 혹시 바로 출산을 하게 될까 봐 첫째를 맡기기 위해 친정 엄마께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양수 감압술을 받을 생각에 긴장을 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고래를 재우고 마저 짐을 정리하는데 밤 10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지금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한자리가 났으니 내일 아침에 와서 양수 감압술을 받고 바로 유도 분만을 하는 게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꿈별이는 태어나자마자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출생 시 NICU에 자리가 없으면 타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심장에도 이상이 있기 때문에 만약 빨리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든 검사 이력이 있고 이미 신생아과, 유전학과, 그리고 십이지장 수술을 맡을 소아외과와 협진이 잡혀 있는 병원에서 유도 분만을 하는 게 아이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담당 간호사가 설명했다. 담당 의사가 NICU에 자리가 생기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고, 수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내일 아침 출산 가방을 챙겨서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다.


양수 감압술을 받고 바로 출산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유도 분만은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했다. 아이에게 최선이라는 말에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전화를 끊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남편은 이민이 좌절되고 임신 후기에 매일같이 싸우는 사이 예정보다 빨리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 상태였다. 회사에 휴가를 냈다. 다시 출산 가방을 점검하고 가족들이 다 잠든 밤, 혼자 거실에 남아 유도 분만 관련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자연 진통이 파도처럼 왔다 가는 것과 달리 유도 분만의 촉진제 진통은 파도 없이 진통이 계속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출산은 물 건너간 지 오래지만 <히프노버딩> 책도 다시 들춰보며 호흡법을 연습했다. 고래 때처럼 자연스럽게, 아이와 힘을 맞춰서 진통을 하고 의료 개입을 최소화한 출산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유도 분만을 하게 된 게 조금은 슬펐다. 중요한 건 꿈별이를 건강히 만나는 거라고,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고 나에게 몇 번이고 말해줬다. 잘 할 수 있어, 내일 만나자, 꿈별아. 태담을 하고 잠을 청했다.



양수 감압술과 유도 분만


아침에 고래에게 오늘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으라고 설명을 해주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래 때는 진통하며 아파하는 나를 보고 그가 더 속상해하며 울었는데, 진통하면서 병원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잡고 조금만 힘내라고 안심시켜 줬는데, 지금은 만삭의 아내가 긴장해서 가쁜 숨을 내쉬어도 그는 괜찮냐는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중요한 날이고, 긴장되는 날인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게 서글펐다. 대신 소식을 들은 육아 동지들은 잘 하고 오라고, 어제 보길 잘 했다고, 힘내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어서 휴대전화가 연신 울렸다.


산부인과 분만실로 가자 굴욕 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래를 자연출산으로 맞이했기에 경산모였지만 관장과 제모는 처음이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깨끗한 산모 전용 화장실에서 관장을 하는데 밖에서 큰소리가 났다. 담당 의사였다. 지금쯤 모든 준비가 끝나서 양수 감압술을 시작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산모가 화장실에 있냐고 분만실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미안해서 얼른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분만 대기실 침대에 눕자 장비들이 들어왔다. 의료진이 십수 명 나를 둘러쌌다. 양수 감압술은 배에 바늘을 꽂아 양수를 빼내는 시술인데 태아가 움직이면 위험할 수 있고 감염 위험도 있기에 담당의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진 듯했다. 그런 모습은 몇 달 동안 진료받으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나는 더 긴장이 됐다. 그는 양수 1.5리터를 빼고 나서 유도 분만을 시작하겠다고 설명했다. 양수 검사 때처럼 굵은 바늘이 내 배를 찔렀다. 한겨울에 배를 내놓고 분만 대기실에서 시술을 받으려니 너무 춥고 떨렸다. 주사기로 양수를 빼내고 다 차면 또 주사기를 바꿔서 빼냈다. 양수 검사는 잠깐만 참으면 됐는데 양수 감압술은 양수 빼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더 아프고 힘들었다. 섬세한 작업이고 오염이 되면 안 되기에 의사는 계속 다른 의료진에게 언성을 높였다. 아무도 누워서 배에 바늘을 꽂고 있는 내 마음을 살피지 않았다. 종합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들은 다 이런 경험을 하는 걸까, 출산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1리터를 다 빼지 못했는데 꿈별이가 자꾸만 바늘 쪽으로 움직여서 양수 감압술을 더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그래도 조금은 뺐으니 이제 촉진제를 맞고 유도 분만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양수가 너무 많으면 자궁 수축이 어렵기 때문에 유도 분만 전에 양수를 빼야 했다고, 촉진제를 맞고 진행이 너무 더디면 양수를 좀 더 빼겠다고 했다. 무통 주사를 놓아 주겠다고 해서 그냥 해보겠다고 말했다.


고래를 낳을 때 초산이었지만 진행이 빨라서 이슬 본 지 5시간 만에, 진진통 3시간 만에, 병원 도착 40분 만에 아이를 만났다. 병원 도착해서 내진을 하자마자 10cm가 다 열렸다고 힘을 주라고 해서 세 번 힘주고 고래가 뿅 나왔었다. 둘째를 낳을 때는 가정 출산으로, 힘주지 말고 호흡만으로 낳아야지,라고 오래전부터 다짐했었다. 자연출산을 못 하게 되었지만 유도 분만이더라도 하는 데까지 내 뜻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통주사는 안 맞겠다고, 촉진제를 맞고 나서 너무 힘들면 그때 맞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무통 마취를 못할 수도 있지만, 산모 뜻이 정 그렇다면 알겠다고, 의사는 내 의견을 존중해 줬다.


촉진제를 맞고 두 시간쯤은 진통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한테 가서 밥 먹고 오라고 말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다만 분만 대기실이 너무 추웠다. 가족 분만실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경산모고 진행이 빠를 수도 있는데 굳이 비싼 가족 분만실을 쓸 거냐고 간호사가 여러 번 되물었다. 고래 때 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진통을 견뎠고, 자연출산 병원도 매우 편안했기에 종합병원 분만 대기실이 나에게는 너무 불편했다. 커튼 밖으로 사람들이 계속 오가고 말소리가 들려서 정신이 분산되었으며 수시로 내진을 하는 바람에 아프고 괴롭고 추웠다. 가족 분만실이 비면 옮겨달라고 약한 진통을 넘기면서 말했다. 점심때쯤에는 진통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지만 태동 검사기 달고 꼼짝없이 누워있는 것과 배고픈 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다행히 촉진제로 수축 유도가 잘 되어서 세 시간 후부터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고래 때는 집에서 잠옷 입고 진통하다가 병원 가서 그대로 낳았기 때문에 밑이 뚫린 산모복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남편한테 춥다고 담요 좀 덮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너무 아프니 허리 좀 만져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해달라는 대로 다 해 주며 곁을 지켰다. 꿈별이의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 이후 싸우지 않으면서 가장 오래 붙어 있는 시간이었다. 진통을 하는 와중에도 그게 기뻤다. 원수라도 된 듯 싸웠지만 어쨌든 꿈별이를 낳을 때 내 옆에, 우리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진진통이 시작되어서 전날 밤 읽은 자연출산 책의 호흡법을 떠올리며 무지개를 상상하면서 호흡을 했다. 꽃이 피는 모습이나 리본이 풀리는 장면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무지개가 더 수월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순서대로 떠올리면서 호흡을 하는 방법인데 자꾸만 노랑에서 멈췄다. 진통 중인 나를 노란빛이 온통 감쌌다. 고래 낳을 때 바닷속 진짜 고래를 상상하며 진통했던 기억이 떠올라 바다를 그려봤다. 짙은 인디고 바닷속으로 노란 별이 떨어져내리는 이미지가 찾아왔다. 노란 별은 붉은빛으로 감싸져 있었다. 별은 더 깊은 바다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별을 따라서 호흡을 하니 꿈별이가 쑥쑥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진진통에 힘들어질 때쯤 가족 분만실이 비어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창으로 햇살이 잘 들어오는 병실이었다. 분만 대기실보다 좋은 침대에 누웠다.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가족 분만실의 시설을 누릴 틈도 없이 촉진제 진통이 극심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자연 진통보다 힘들다고 한 거였구나! 서른 배쯤 더 아팠다. 고래를 낳을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절로 으르렁대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연 진통은 1분 아프면 2분쯤 쉴 수 있었는데 촉진제 진통은 정말 30초도 쉴 틈이 없이 진통이 몰아쳤다. 무통은 안 맞겠다고 했지만 진통제는 좀 놔달라고 애원했다. 진통제 주사를 엉덩이에 맞았는데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내 상태를 보러 오는 간호사들마다 왜 무통을 맞지 않았냐고 걱정을 했다. 끙끙 앓으면서도 '그래도 무통 주사 맞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대답할 기운은 없었다.



꿈별이를 만나다


가족 분만실로 옮긴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이제 꿈별이가 나올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종합병원 분만은 처음이라 몰랐는데 갑자기 침대가 트랜스포머처럼 변했다. 다리를 올리고 출산 자세를 취했다. 경산모지만 이런 자세도 처음이었다. 양수 감압술을 목표치만큼 못해서인지 양수가 많이 흘렀다. 출산 준비를 하던 간호사들은 "교수님 고글 쓰고 들어오시라고 해!"라고 말했다. 아픈 와중에도 양수가 콸콸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진행이 빨라서 의료진들이 매우 다급하게 움직였다. 꿈별이는 바로 NICU로 옮겨져야 하기에 옆에 인큐베이터도 와 있었다. 담당 의사는 정말 고글을 쓰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좋은 침대의 양옆에 있는 봉을 잡고 힘을 주면서 꿈별이와 호흡을 맞췄다. 자연 진통이 아니라서 태아와 호흡하면서 출산할 수 없을 거라고 지레 아쉬워했는데 촉진제 진통이어도 가능했다. 꿈별이는 내 호흡에 맞춰, 내가 힘주는 타이밍에 맞춰 열심히 밑으로 내려왔다. 나랑 꿈별이가 동시에 영차영차 애를 쓰는 게 느껴졌다. 나는 꿈별이를 만나기 위해, 꿈별이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 느낌이 가슴 벅찼다.


과다였던 양수와 함께 꿈별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담당 의사는 고글을 쓰고 아이를 무사히 받아 주었다. 아이를 닦이고 처치를 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꿈별이 쪽을 보며 "꿈별아 잘했어. 엄마 여기 있어. 꿈별아. 꿈별아." 계속 불렀다. 고래는 평화롭게 만나서인지 울지 않고 내 품에 바로 안겨서 가만히 세상을 느꼈는데 나오자마자 낯선 손들에 의해 닦이는 꿈별이는 앙앙 울었다. 사람들에 가려서 꿈별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우는 목소리가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꿈별아, 꿈별아. 잘 왔어.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후처치를 받으면서 나는 계속 말했다. 태담으로 듣던 엄마 목소리에 꿈별이가 조금이라도 진정하길 바랐다.


NICU로 옮기기 전 속싸개로 싼 꿈별이를 간호사가 잠깐 가슴팍에 안겨 주셨다. 지난 진료 때 태어난 아이를 잠깐 안아볼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안 된다고 해서 많이 울었는데, 그날 분만실에 와준 간호사는 융통성이 있는 분이었다. 의료기기에 가득 연결되기 전 잠시나마 꿈별이를 안아보고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가슴에 안긴 꿈별이가 너무 예뻐서 나는 혹시 0.03%의 기적이 일어난 건 아닐까 희망을 품기도 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라면서, 이렇게 예쁘다고? 양수 검사가 잘못된 거 아니야? 간호사는 문 앞에 서있던 남편에게 NICU에 가기 전 모습을 얼른 사진 찍어 두라고 일러주기도 하셨다. 사진까지 찍고 꿈별이는 NICU로 가서 수술 전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고래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 아빠와 맨살로 캥거루 케어를 하고 초유를 빨아먹었는데 꿈별이는 엄마 젖은커녕 손길을 음미할 새도 없이 주삿바늘과 호흡기와 온갖 의료기기에 둘러싸였다.


후처치가 다 끝나고 담당 의사가 후련한 얼굴로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고래를 낳을 때 날 안고 지탱해 주며 같이 호흡했던 남편은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꿈별이 사진을 찍고 수술 동의서 등 필요한 수속을 하고 의료진들이 다 나간 후에야 침대 옆으로 왔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고생했어"라고 한 마디 했다. 그걸로 족했다. 그대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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