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별이 어린이집 간 동안 뭐했어?”
날 도와주러 올라오신 엄마가 싱크대 가득한 설거지를 보고 말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긴 하지만 오전에는 재활 치료를 가기 때문에 편히 점심 먹고 숨 좀 돌리면 바로 하원 시간이다.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라 혼자 아이 둘을 돌보는 게 힘들어서 아직 15개월밖에 되지 않은,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둘째를 가정 어린이집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중 혼자 숨 돌릴 시간이 잠시도 없기에 몇 달을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전업엄마가 아이를 기관에 맡길 수 있는 최대치는 6시간이지만, 둘째 꿈별이는 발달장애를 가져서 지속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주 5일 모두 치료 시간을 피해 두세 시간 보내는 게 다이다. 나를 제일 걱정하고,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친정엄마지만, 엄마조차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온전히 휴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화가 났다.
아이가 둘이 된 이후로 늘 정신없이 바빴지만 하루 끝에 내가 달고 사는 말은 “오늘 한 것도 없는데”였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 그저 삼시 세끼 챙겨 먹이고 먹고, 모유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첫째의 요구에 응하고, 당장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집안일만 해도 하루가 다 갔다. 10분도 앉아서 쉴 틈이 없이 바쁘게 보냈어도 잘 시간이 되면 ‘오늘 뭐 했지? 한 게 없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하루 종일 바쁘게 무언가를 했는데 한 일이 없다고 느끼다니. 그럼 내내 내가 한 일은 무어란 말인가.
집안일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먹고 난 후에 설거지 등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삼시세끼를 차리고 치우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가지만, 밥 먹는 건 너무 기본적인 일이라 ‘일’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더러워진 옷을 색깔별로 분류하고 소재에 맞게 세탁해서 건조하는 것도 세탁기와 건조기가 다 해주는 일처럼 보인다. 놀잇감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려놓아도 첫째가 집에 돌아오고 10분이면 초토화 된다. 가사노동은 끊임없는 반복이 그 본질인데 종결이 없어서 나를 미치게 한다. 밤 9시, 설거지 산더미, 개지 않은 빨래 산더미, 장난감과 온갖 공작놀이의 잔해로 발 디딜 틈 없는 방, 씻기고 재워야 할 아이 둘을 보고 있노라면, 되뇌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한 게 없다고.
하루는 작정하고 적어보았다. 새벽에 둘째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아침을 차리면서 첫째 도시락을 싸고, 첫째를 깨워 식탁에 앉히고 입고 갈 옷을 준비하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 현관 앞에 내놓고, 틈틈이 둘째와 병원에 갈 내 짐을 챙긴다. 둘째 이유식을 먹이고 첫째가 다 먹으면 씻겨서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 보낸 후 부리나케 돌아와서 내 아침을 흡입한다. 설거지통에 그릇들을 대충 담가놓고 허겁지겁 둘째의 치료실로 차를 몬다. 일주일에 두 번은 집 가까운 곳에 가고 세 번은 편도 40분 정도 거리의 치료실에 간다. 치료가 끝나면 수유를 한 뒤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집에 와서 점심을 흡입하고 한 시간 남짓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쓴다. 둘째 먼저 하원해서 다시 수유를 하고, 첫째를 데리러 간다. 간식을 챙겨주거나 첫째의 일과를 들으면서 거실을 조금 정리하고 빨래도 돌린다. 저녁 차려서 첫째 먼저 먹으라고 주고 둘째 이유식 먹이고 수유한 뒤 내 저녁을 먹는다. 둘째가 잘 놀아주면 하루 동안 모아둔 설거지를 할 수 있고, 잠투정 하는 날엔 그마저도 못하고 내내 안아 재워야 한다. 그 사이 첫째는 혼자 놀면서 언제 놀아줄 거냐고 끊임없이 재촉한다. 둘째를 재우면 첫째랑 집중해서 빡세게 놀아주고 씻기고 동화 들려주고 재운다. 밤사이에 아이들이 뒤척이거나 일어나서 울거나 쉬를 하면 뒤처리를 하고, 아직 가끔 밤중수유도 한다. 푹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적어놓고 보니 잠시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둘째의 병원 외래 일정을 확인해서 재활 치료 시간과 조율하고 아이들 어린이집과 소통하고 공과금을 내고 아파트 소독 일정을 확인하고 식재료와 생필품 재고를 파악해서 주문하는 등의 일들은 5~10분 정도로 짧게 걸려서 목록에 다 적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전업엄마라는 이유로 내 휴식시간은 너무나 쉽게 침해 당한다. 집안이 깨끗하지 않다고 훈수를 두는 사람은 많고, 아이가 아픈 것도,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것도 전부 엄마 책임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시간을 내면 욕심이 많다는 비난을 듣는다.
회사에서 전화한 남편이 끊기 전에 “그래, 쉬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통에 “내가 집에서 쉬는 줄 아냐”고 버럭 했다던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나 역시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데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일 안 하니 얼마나 편하냐?”고 부럽다고 말한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뿐이지 몸이 부서져라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데, 세상은 나에게 ‘집에서 쉰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억울해서 까무러칠 노릇이다.
하루 일과를 적어놓고 보니 온전히 나를 위해서 쓰는 시간은 아이 둘 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 한두 시간이 전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한두 시간은 내가 나를 위해서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설거지와 빨래에 양보하지 말고 나만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 뒤로는 “오늘 한 게 없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에 집이 조금 난장판이어도 애써 못 본 척하며 ‘나 오늘 충분히 수고했어’라고 자위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자버렸다. 깨끗하고 아늑한 집에서 좋은 재료로 정성스레 만든 밥상을 제공하는 상냥한 엄마가 아님을 자책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돈 안 벌지만 나는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내 몸을 돌볼 시간이 없어 아픈 데가 많고 몰아치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 콤보에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하지만 나는 버티고 있다. 내 할 일은 다 하고 있다. 나는 전업엄마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1호(2020.7.1.)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