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는 필요 없어

by 울림



“퇴사까지 했으니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아이를 가진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임신 사실을 안 뒤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임신 초기에 유산 위험으로 회사를 그만두었기에 더더욱 좋은 엄마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일’을 하지 않으니 ‘엄마됨’으로 내 가치가 증명된다고 생각했다.


임신 기간 내내 산모 교실을 쫓아다니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들을 섭렵했다. 네 군데 병원 투어 후에 출산 병원을 선택했다. 출산 계획서도 작성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조리원에서 모유 수유 관련 책들을 주문해서 읽었다. 생후 3주부터 천 기저귀를 쓰고 4개월부터는 기저귀 없는 육아, 배변 소통을 시작했는데 국내에 자료가 별로 없어서 미국에서 나온 책을 찾아 전자책으로 읽기도 했다.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중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소한 분야였기에 공부 모임에 참여해서 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 모든 육아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기를 바랐다. 내가 뭘 몰라서 아이에게 잘못할까 두려웠다. 지식이 있으면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착각이었지만.


지식만 쌓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원칙을 세우면 그것을 고지식하게 지켰다. 모유 수유를 직수로 하겠다고 결심한 후로 젖양이 아이에게 맞춰지는 백일이 될 때까지 매일 울면서 수유를 했다. 치밀 유방에 유두도 짧아서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자연 출산 전문 병원 조산사마저도 직수가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내가 세운 원칙대로 직수를 고집했다. 출산 때도 울지 않았는데 모유 수유에 적응하는 건 더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유두에서 피가 나고 찢어지고, 가슴이 뭉치고 유선염이 오기도 했지만 아파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모유 수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모유 수유처럼 천기저귀도 미련하게 고집했다. 인공, 합성, 일회용 등등이 들어간 제품은 그게 무엇이든 아이에게 닿지 않게 했다. 물티슈 한번 닿은 적 없이 키웠다. 요알못이지만 아이 먹을 것은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시판 이유식을 먹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재료도 유기농만 고집했고 조리도구도 스텐, 무쇠 등만 썼다. 알레르기 있는 아이를 위해 채식 베이킹 등 요리 강습도 찾아다녔다.


미디어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본래 TV 중독이라고 할 만큼 하루 종일 틀어놓고 살던 사람인데 아이를 낳은 후로는 낮에는 아예 틀지 않았다. 밤에 혼자 거실로 나와서 빨래를 개며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아이가 청소한다고 TV에 물을 뿌려 고장 낸 후로는 처분했다. 기계음이 좋지 않다고 하여 소리 나는 장난감도 주지 않았다. 음원을 틀어주는 대신 못 하는 노래지만 내 목소리로 직접 불러줬다. 자연을 접하는 게 좋다기에 세 살 난 첫째를 데리고 숲에 가는 공동육아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독박육아로 지치는 와중에도 세 돌이 넘도록 가정 보육을 했다.


내 육아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애쓰지 말라고, 내려놓으라고 자주 충고했다. 힘겨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힘들다고, 내 방식대로 육아하게 놔두라고, 안쓰러우면 더 많이 도와주면 될 게 아니냐고 말했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되려고 열심히 애를 쓰고 있는데 애쓰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내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좋은 일인데, 왜 나한테 애쓰지 말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지치고 소진되어 갔다.


장애가 있는 둘째를 낳은 후, 물리적으로 둘을 돌보려니 첫째를 키울 때의 육아원칙을 고수할 수 없거니와 둘째 병원까지 쫓아다니려니 보통의 육아도 힘겨워졌다. 그제야 ‘좋은 엄마는 이래야만 해’라는 원칙을 세우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지난날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웠는지 깨닫게 되었다. 사회에서 이미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나는 그 모성 신화에 나만의 원칙들까지 더 추가해서 나 자신을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경력을 포기하는 만큼 누가 봐도 대단한 육아로 그 희생을 대신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막상 그렇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채찍질을 해보니 나는 육아에 별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멋대로 사는 게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혼자 누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누구나 그런 면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애초에 아이들을 좋아한 적도 없다. 내 새끼라 예쁠 뿐이지 지금도 길 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면 당황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육아 공부라고 책을 읽고 강의를 찾아다닌 것들도 ‘좋은 엄마 되기’라는 핑계 아래 아이와 떨어져서 혼자 지적 욕구를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애쓰지 말라는 말은 그렇게 좋은 엄마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노력을 해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요즘 나는 방학을 맞은 첫째에게 넷플릭스로 영상을 틀어주고 비건 피자를 시켜서 같이 먹는다. 둘째에게도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시판 이유식을 병행해서 먹였다. 물티슈가 떨어질세라 새로 주문을 한다. 집에서 낮 동안만 천기저귀를 채우는데 그마저도 귀찮은 날은 일회용 기저귀를 채운다. 이렇게 해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첫째는 여전히 깨발랄하고 냉동 쌀가스 구워만 줘도 “엄마 최고”라고 엄지척을 선사한다. 둘째는 내가 정성 들여 만들지 않은 이유식도 덥석덥석 잘 받아먹고 매일 다른 치료실을 가는 게 고될 텐데도 방실방실 웃어준다.


육아 원칙을 어겨도, 발도르프 교육에서 나쁘다고 말하는 것들을 잔뜩 해도 애들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편해졌다. 몸이 편해졌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게 좋아”의 다른 말은 “그건 나빠”였다. 세세하게 육아 원칙을 세운 만큼 아이에게 나쁜 것들을 상세히 규정짓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악이고 나는 그 악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철벽을 치고 종종거리며 살 때는 가족이나 친구가 사랑으로 보낸 선물조차 해로운 것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게도 피로한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도 은연중에 엄마의 불안과 ‘세상은 나쁜 곳’이라는 인상을 전하는 일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는 썼지만 사실은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아이에게 버럭하는 날도 많았는데 아이는 그래도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 사실 아이는 엄마가 좋은 엄마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다. 그냥 엄마니까, 부족하고 일관성 없고 제멋대로지만 내 엄마니까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가 할 일은 따라서, 그저 엄마가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 옆에서 엄마로서 살아만 있으면 된다.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하자 나는 비로소 마음 편히 엄마라는 자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오늘도 엄마는 어떠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지만 나는 이제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육아 전문가? 교육 전문가? 누가 와도 내 아이들은 나를 더 좋아할 것이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나는 그냥 애들 옆에서 웃고 울며 같이 살아갈 것이다. 좋은 엄마 따위 필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로 이미 충분하다.



조각보3.png 그냥 엄마. 울림 그림


*에세이레터 <조각보> 9호(2020.9.22.)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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