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말고 전업엄마

by 울림


이사를 해야 해서 집을 보러 갔다. 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현관부터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아버지와 성인 남성 둘이 잘 둘러보고 가라며 인사를 했다. 그냥 돌아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형식상 집안을 둘러본 뒤 인사를 하고 나왔다. 중개인은 굳은 내 표정을 보고 변명처럼 말했다. “엄마가 타 지역에서 일하고 계셔서 집이 좀 지저분해요.” 고백컨대 나는 깔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집의 더러움보다 그 이유를 엄마의 부재로 돌리는 중개인, 엄마가 없다고 가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성인 남성 셋의 태도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 집에서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이 남자들은 엄마를, 아내를 하녀로 생각하는 건가?



첫째를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는 살림을 하려고 퇴사하는 게 아니라고 다짐했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는 천기저귀를 빨고 내 끼니를 챙겨 먹는 것 외에는 살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애를 안고 방에 틀어박혀서 모유 수유하고 기저귀만 갈아댔다. 간단한 청소나 설거지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몫이었다. 6개월쯤 아이가 기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기어 다니려면 바닥이 깨끗해야 했고 위험한 물건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가 필요했고, 이유식을 먹이려면 요리를 해야 했다. 그제야 살림과 육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림’이라는 게 정말 ‘사람을 살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구나,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살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먹성이 좋았지만 식이 알레르기가 심해서 이유식에 공을 많이 들였다. 달걀, 유제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피부 발진이 심하게 올라와서 채식 이유식, 유아식을 하며 영양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책을 찾아 읽고 베지닥터들의 강연을 찾아다녔다. 아이가 냉장고에 들어갔다 온 음식은 좋아하지 않아서 전기밥솥도 치우고 2인용 압력밥솥에 매끼 새 밥을 지어 생협에서 산 재료들로 밥상을 차렸다. 조리도구도 전부 무쇠 팬, 스테인리스 냄비로 바꿨다. 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장을 직접 담가서 엄마표 된장, 간장으로 요리를 했고 김치도 난생처음 담갔다. 알레르기 때문에 시판 간식을 먹일 수가 없어서 채식 베이킹을 배워 매일 밤 발효종을 돌보고 발효빵을 반죽했다. 또 아이의 돌 한복을 직접 만들고 싶어서 재봉틀을 배웠다. 놀잇감을 뜨개질로 만들고 인형을 손바느질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낮잠 이불도 밤새 재봉틀을 돌려서 만들었다.



만 3년 넘게, 그중 2년은 해외 근무 중인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끼고 가정 보육하면서 이렇게 정성 들여 살았으면 대단한 살림꾼이 되었어야 하는데 현실은 ‘아니올시다’이다. 나는 본디 손이 느리고 게으르며 지저분한 사람이기에 이 모든 살림과 아이 돌봄을 혼자 다 하다 보니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어버리고 말았다. 내 능력 밖의 일까지 욕심을 내고 너무 애를 쓰며 종종거리고 살았더니 힘이 다 빠져버렸다. 마침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아이도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숨을 좀 돌리려니 금세 둘째가 찾아왔다.



둘 육아, 그것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둘째의 병원 수발을 들면서 살림을 돌보는 건 진정한 ‘극한 직업’이었다. 첫째 때의 살림 원칙, 육아 원칙을 내려놓고 내려놓고 더 이상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포기를 거듭해 간신히 생존을 위한 살림만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죄책감이 말할 수 없이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보냈는데 하루 끝에 돌아보면, 아이들은 좋은 재료로 지은 집밥을 먹지 못했고, 제때 개지 않아 구겨진 옷을 입고 하루를 보냈고, 까치집 머리를 하고 목에는 땀띠가 난 채로 어린이집을 다녀왔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내가 원해서 아이를 둘이나 이 세상에 내놓았는데 정성스레 돌보지도 못하다니, 자괴감이 몰아쳤다. 경제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집안 꼴이 난장판이라니, 자책의 한숨이 나왔다.



죄책감만큼의 분노도 치솟았다. 나는 이미 몸이 부서져라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대체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해야 해? 왜 더 잘해야 하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애써야 하지? 왜???????!!!!!!!!!!



그때 <엄마 되기의 민낯 >을 쓴 신나리 작가님이 올린 독서 모임 공고를 보았다. “자본주의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사회학책들을 함께 읽는 모임이었다. 또다시 해외 발령으로 곁에 없는 남편 때문에 홀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둘째 병원 치료를 쫓아다니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도 아닌 어려운 사회학 고전을 읽고 매주 리뷰를 써야 하는 모임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보고, 수유하면서도 책을 보고, 눈을 비벼가며 새벽까지 리뷰를 썼다. 아이 둘을 재우고 허겁지겁 온라인 화상 토론에 접속했다.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 <기획된 가족>, <모성애의 발명>,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사랑의 기술>,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등 어마어마한 책들을 공부하듯이, 씹어먹듯이 읽었다. 나처럼 절박한 여성들이, 엄마들이 잠을 쫓아가며 함께 읽고 썼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 죄책감의 실체를, 그 근원을. 그리고 자책과 동시에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현대 핵가족은 여성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내가 힘든 것은 남편 개인의 탓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가, 시스템이 그리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죄책감의 대부분은 만들어진 모성 신화에 의한 것이며 그 또한 현대 자본주의의 억압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기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다시 스멀스멀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죄책감이라는 놈의 정체를 알았기에 이제 조금은 다룰 줄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문득문득 온몸이 떨리도록 치솟던 분노 에너지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돌려 보았다. 분노의 노래 부르기를 하기도, 분노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렇게 순간의 감정을 해소하고 나니 핵심이 되는 질문이 남았다. 당장 내가 체제를 바꿀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살던 대로 살기도 싫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전업주부 말고 전업 엄마로 살자. 지금 내가 내린 답이며 일시적인 처방이다. 살림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살림이 싫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주 최소한만 할 작정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생존에 필요한 가사노동과 돌봄은 하겠지만 정성 가득한 집밥, 늘 반짝반짝 깔끔한 집, 정갈하게 준비된 살림살이, 그런 것은 제공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즐거운 사람은 살림을 하면 되고, 그게 싫은 나는 그 시간과 노력을 내가 즐거운 일에 쓰는 게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 아닐까.



밖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가족 구성원이 편히 쉴 수 있는 깨끗하고 아늑한 집, 그런 집은 허구다. 그런 집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누군가 24시간 쉬지 않고 집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엄마 역할, 주부 역할,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주 잠시만 전업 엄마로 살 테다. 그런 다짐을 글로 쓰기 위해 이제 막 한국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 둘을 맡기고 집 앞 커피숍으로 나오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섭섭해하는 남편 얼굴을, 엄마 언제 오냐고 묻는 아이의 얼굴을, 여기저기 널브러진 빨랫감을,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아직 닦지 않은 어린이집 식판을 보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기에 눈을 질끈 감고 집을 나섰다.



조각보2.png 바다에서 혼자 신난 철없는 엄마. 울림 그림



*에세이레터 <조각보> 2호(2020.8.4.)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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