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임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첫째가 20개월 무렵 다래끼 수술을 했다. 두 달 넘게 커다란 다래끼가 없어지질 않아 대학병원 안과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키운 아이를 전신마취 시켜야 한다니 속상했지만, 예쁜 아이 눈 밑에 커다란 고름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걸 보는 것도 고역이었기에 더 흉 지기 전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첫째는 껌딱지였다. 내 몸에서 반경 1m 이상 떨어진 적이 없었다. 몸집이 크고 발달이 빨랐지만 기어 다니거나 멀리 걸어나가지 않았다. 엄마 옆에 앉아 사부작사부작 놀았고 산책을 나가도 엄마 손을 놓고 세 발자국 이상 걷지 않았다. 잠시도 엄마가 안 보이면 견디지 못해서 빨래를 널 때도, 밥을 할 때도, 청소기를 돌릴 때도 늘 아이를 업고 했다. 엄마 살에 닿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듯 나에게 붙어 있었다. 잘 때도 꼭 내 팔을 만지며 잤다. 팔을 잘라서 아이 옆에 놓고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밤이 무수히 많았다.
첫째는 예민했다.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울었다. 첫째 어릴 때는 웬만해선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공중 화장실에서 누가 핸드드라이어에 손을 말리기라도 하면 그 소리에 기겁을 하고 건물이 떠나가라 울었다. 목청도 컸다. 바깥놀이를 하고 유아차에서 잠이 들어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공기와 소리가 달라지는 걸 느끼고 눈을 떴다. 카시트에서 잠들었을 때도 시동이 꺼지면 깼다. 그래서 첫째가 차에서 잠이 들면 한두 시간을 하염없이 드라이브를 했다. 차에서 잠든 아이를 안아서 집에 들어와 눕히고 자유시간을 갖는다는 육아 동지들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엄마 껌딱지인 예민한 아이를 수술실에 떨어뜨려 놓으려니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수술 당일 아이는 의연했다. 말이 빨라서 제법 의사소통이 되는 시기였는데 수술에 대해, 앞뒤 절차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링거 주사를 의젓하게 맞고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마취과 의사는 젊은 남성이었다. 보통 이렇게 어린 나이의 아이를 수술할 때는 엄마가 안은 채 수면제를 주사하고, 수술실로 옮겨서 전신마취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경우 마취 부작용이 더 심하고 수술 후에 아이가 악몽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아이가 울지만 않는다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장에 가서 전신마취만 하는 게 부작용도, 후유증도 덜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첫째에게 “여기서 엄마 빠빠이 하고 아저씨랑 들어갈까?”라고 말했다. 절대 응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첫째는 예상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래끼 수술은 간단해서 30분이면 충분하다고 담당 의사가 예고했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안내 화면에는 계속해서 수술 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했다. 아이를 수술장에 보내고 밖에서 기다리자니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간단한 수술인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가시진 않았다.
마침내 수술 종료 안내를 받고 담당 의사에게 결과를 듣기 위해 회복실 옆에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아이 피부가 연해서 흉 지지 않게 봉합을 하는 게 어려워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의사는 수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밖에서는 회복실로 옮겨진 첫째가 마취에서 깨어났는지 울기 시작했다. 의료진들이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의사의 설명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이 잘 되었다면 과정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은데, 얼른 가서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데, 의사는 그런 내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천 년 같은 5분을 보내고 회복실로 달려갔다. 첫째는 이제 막 마취에서 깬 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세게 의료진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아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연결해놓은 모니터의 그래프도 요동을 치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왔어. 엄마 여기 있어.” 하고 아이를 안았다. 안자마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내 품에 파고든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들쑥날쑥하던 심박수 그래프가 규칙적인 파형으로 안정되어 가는 순간을 내 두 눈으로 목격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니터의 그래프가 말해주고 있었다. 한순간에 아이를 진정시키는 존재.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전 처음 느끼는 아픔에 놀라고 무서울 때도 그 모든 걸 잊게 하는 존재. 아이에게 나는 세상이고 우주였다. 내 품에서 아이가 드라마틱하게 진정되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나 감격적이어서, 피하고 싶던 전신마취 수술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 품에서 금세 회복해서 모든 수치가 좋아지자 병실로 옮겼다. 아이가 내 품에서 안심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병실 간호사는 특단의 조치로 나를 병실 밖으로 내쫓았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면 폐에 남은 마취가스를 내보내야 하는데 어른은 기침을 하면 되지만 아이들은 울면서 새 숨을 많이 쉬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껌딱지 첫째는 엄마만 옆에 있으면 도통 울지를 않아서 간호사가 아이가 충분히 울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엄마가 안 보이는 것만으로 울음을 발사할 조건이 충족되었다. 첫째는 병실이 떠나가라 울어댔고 금세 엄마가 들어와도 되겠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얼마 전 둘째가 사시 수술을 했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폐쇄된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큰 수술을 치렀다. 그때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기에 내가 품고 달래줄 수가 없었다. 십이지장 수술에 비하면 사시 수술은 간단한 수술이다. 아이를 수술실에 보내는 게 처음이 아니어서인지 이번에는 첫째 때처럼 긴장이 되진 않았다. 15개월에, 아직 앉지도 못하는 발달이 느린 아이라서 첫째 때와 달리 수술장 안까지 내가 안고 들어갔다. 내 손으로 아이 머리에 위생 모자를 씌웠다.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수술 준비를 하는 옆에서 나는 둘째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이제 코코 잘 거야. 그러면 선생님들이 눈을 고쳐줄 거야. 엄마랑 금방 만날 거야. 잘 하고 와. 사랑해.” 아이는 몰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내 품에 안은 채 수면마취제가 주사되었고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수술이 끝난 후 회복실에서 엄마임을 실감하게 하는 심박수 화면을 다시 마주했다. 두 번째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힘든 일을 겪어도 금세 안정을 찾게 하는 존재구나, 너에게 나는. 새삼 엄마라는 자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무거움이 싫지는 않았다.
둘째도 마찬가지로 엄마 품에만 안기면 울음을 그쳤다. 이번에는 아이를 울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또 애가 좀 운다고 큰일 나지 않음을 아는 둘째 엄마였기에 담담하게 울렸다. 병실 침대에 내려놓았다가 한참 울면 잠깐 안아주고, 다시 내려놓고 외면했다가 또 한참 울고 나면 안아 달래주기를 반복했다. 둘째는 아프고 힘든데 대체 엄마가 왜 저러나 야속한 듯, 갓 수술을 받아 잔뜩 충혈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되기란 재미는 하나도 없고, 피곤하고, 힘들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고된 일이다. 동시에 엄마 되기란 대단한 걸 성취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따져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저 엄마라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무한 사랑을 준다. 나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몇 곱절은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분이 좋을 때,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을 때 예쁘다. 울고 짜증 내면 도망가고 싶다. 그렇지만 아이는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나에게 안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한대로 주는 건 엄마인 내가 아니라 아이다. 아이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는 않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 감사하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17호(2020.11.17.)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