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이 된 첫째에게 첫 번째 영구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의 아랫니가 흔들리고 그 뒤에 하얗게 영구치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육아가 안 맞는다고, 빨리 커서 내 품을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갈이가 시작되니 아쉽고 아쉽고 아쉽다.
나는 첫째 육아를 정말 열심히 했다. 유별나다는 소리 들으면서 육아서 읽고 육아 강의 들으며 공부한 대로 키우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육아에 대해 자부심도 강했다. 만약 그대로 쭉 7년을 키웠다면 지금처럼 아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모든 게 변했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겪는 흔한 적응기와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둘째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이틀째에 큰 수술을 했고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초유도 바로 먹지 못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겨울에 세 시간마다 유축한 모유를 들고 병원 면회를 다니느라 산후조리는 폭망했고 내 몸은 툭하면 유선염이 왔다. 퇴원한 후에는 억지로 직수에 적응시키느라 씨름을 했고 결국 모유 수유를 했지만 그만큼 내 몸이 축났다. 십이지장이 기형이라 나오자마자 젖 한 방울 먹지 못하고 수술대에 올랐기에, 소화기가 약하게 태어난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유 수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종합병원 총 아홉 개 과에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며 주 5일 서너 시간씩 재활치료를 다닌다. 둘째가 돌이 되기 전 남편이 또다시 해외 발령을 받았다. 첫째를 키울 때 이미 2년간의 해외 근무로 독박 육아를 했던 터라 내 팔자는 왜 이러냐며 울었다. 남편마저 없는 상태에서 아이 둘을 돌보고, 병원 뒷바라지를 하자니 유난 떨던 육아는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첫째는 영상물을 보기 시작했고 장난감을 자주 갖게 됐다. 방치되는 첫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물질적인 보상밖에 없었다. 저녁에 아이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엔 내 체력도 에너지도 부족했다. 엄마는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엄마는 밥 주고 돌봐주는 사람이라고, 놀자고 다가오는 첫째를 밀어냈다. 둘째와 네 살 터울이기에 그 사이에 엄마를 온전히 독차지했던 첫째는 너무 외롭다며 아빠 보고 싶다고 울었다. 누나가 울자 둘째도 울었다. 우리 셋은 부둥켜안고 매일 밤 울었다.
자연에서 놀기, 미디어 차단, 자연물 놀잇감, 유기농 재료로 차린 자연식 밥상 등등 첫째를 키우며 옳다고 생각했던 육아 원칙을 하나씩 전부 내려놓았다. 알레르기가 있는 첫째를 위해 장을 담그고 발효빵을 직접 구워주던 유난스러운 엄마였던 나는 반찬 배달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툭하면 비건 피자를 시켜 저녁을 해결했다. 그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이 둘과 함께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첫째가 좀 방치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그건 둘째 탓도 아니고 엄마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다.
자극적인 영상을 보기 시작하자 첫째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면서 울 때가 많아졌고, 동화를 들으면 “이거 다 가짜잖아?”하고 물었다. 자기가 혼자 남겨질 것 같다고, 엄마 아빠가 떠날 것 같다고 집착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다섯 살, 여섯 살 첫째에게 동생이 태어난 후 생긴 변화는 너무 가혹하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써 모른 척했다. 일단 내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 마음까지 헤아리고 품어줄 여유가 없었다. 아이의 새 이를 보기 전까지는….
이갈이가 시작되면 학교 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더 이상 내 품 안의 귀여운 아가가 아니구나. 첫째가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구나. 나는 과연 첫째의 영유아기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줬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둘째를 낳은 후 첫째에게 소홀하게 된 것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일과, 더 이상 하나도 남지 않은 육아 원칙…. 모든 게 너무 속상했다. 더 잘 했어야 하는데, 더 잘 하고 싶었는데. 다시는 오지 않을 아이의 첫 7년을 이렇게 마무리하다니 너무 아쉽다. 앞으로 첫째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둘째가 태어나 미치게 힘들었던 그 시기를 떠올리며 자책하게 될 것 같다. 그때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었다면, 그때 내가 좀 더 체력이 있었다면, 여유가 있었다면 첫째의 다섯 살, 여섯 살을 그렇게 외롭고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그 순간엔 늘 최선이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다만 아이에게도 최선이었을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느리게 크는 나의 둘째를 미치게 사랑하지만 종종 둘째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그럼 첫째는 지금쯤 둘째와 함께 재잘거리며 뛰어놀았을 텐데,라고.
정신없이 몇 년을 보냈더니 내 건강에 무리가 왔다. 난소 기형종이 커져서 얼마 전 응급 수술을 받았다. 이제 첫째는 누워있는 엄마 때문에 또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린다. 어제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내 소원이 두 개 있어. 하나는 엄마가 건강해지는 거고 하나는 동생이 빨리 커서 나랑 노는 거야.”
나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31호(2021.2.23.)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