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한 살인 것처럼 엄마도 엄마 나이 한 살부터 시작한다. 어느새 고래가 여섯 살이 되었으니 내 엄마 나이도 여섯 살이다. 이제는 꿈별이까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초보 엄마 딱지는 뗀 셈이다. 네 살 터울의 둘째를 키우고 보니 첫째를 키울 때와 내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초보 엄마 고래맘에게 편지를 띄운다.
고래맘 안녕?
나는 고래꿈별맘이야. 5년 후의 네 미래지.
지금 너는 고래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체가 나에게서 태어났을까 놀랍고, 고래가 웃기만 해도 황홀하고, 우주보다 큰 고래의 사랑에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동시에 네가 임신 때부터 많은 책을 보고, 육아 강의를 듣는 등 지식을 쌓고 열심히 자연주의 육아를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고래가 잘 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 거야. 또 한편으로는 종일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의 옹알이에 대꾸하면서, ‘나도 뇌가 있는 사람인데 지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 ‘어른의 대화를 하고 싶다’고 소리 없이 외치며 괴로워하기도 하지.
일단 예쁜 고래에 대해서는, 즐겨. 누려. 곧 미친 고래가 오니까 그 예쁜 천사 고래를 마음껏 사랑하렴. 그리고 말이 통하는 상대와 지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온라인상에서 엄마들과의 소통으로 풀면 돼. 오히려 아무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오니까, 너무 외로워할 필요 없어.
오늘 편지를 쓴 이유는 바로 ‘내가 잘 했기 때문에 아이가 잘 큰다’는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야. 엄마가 된 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한데, 그게 참 나쁜 생각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거든. 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일찍 그 생각을 버리면 좋겠기에,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써볼게.
임신 기간 동안 식이 조절을 열심히 하고 매일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출산에 성공’하고, 모유 수유 책을 읽고 클리닉을 찾아가고 백일 동안 유두가 아파서 울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완모를 성공’하고, 생후 3주부터 아이 피부를 위해 천기저귀를 쓰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배변 소통을 통해 아이와 더 잘 연결된다고 생각했지.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고, 장난감도 거의 주지 않고 몸으로 놀아주면서 나쁜 자극으로부터 고래를 잘 지켜주고 있다고 여길 거야. 유기농 재료로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1m 이상 아이에게 떨어진 적 없이 늘 안고 업고 애착 육아를 하고, 산책을 나가거나 가까운 숲으로 데리고 가면서 ‘자연주의 육아’를 하려고 노력하지. 아이에게 뭐가 좋을지 고민하고, 좋다는 건 열심히 하고 나쁘다는 건 또 그만큼 열심히 배제하면서 육아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클 거야.
그런데 그 모든 게 네가 혼자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딱 잘라 말하면, 너와 아이 모두 건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야. 아이가 아프거나 임신 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출산과 모유 수유는 불가능해질 수도 있어. 천기저귀도 아이가 건강해서 집에 머물 수 있고, 엄마가 손목이 튼튼할 때 할 수 있는 거야. 매일 병원에 가야 하거나 입원해 있는 아이들은 일회용 기저귀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 치료를 받을 때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고 형형색색 플라스틱 장난감을 줄 수도 있어. 사실 아이들 장난감이 비싼 이유는 단지 상술이 아니라 발달에 필요한 놀이를 유도하는 디자인을 연구한 결과이기 때문이야. 형제가 여럿이면 아기 때부터 방치되듯이 혼자 누워있는 시간이 길 수도 있어. 소리와 불빛이 나오는 모빌을 하염없이 보고 있을 수도 있지. 이유식을 도저히 만들 시간이 없어서 사먹일 수도 있어. 산책은커녕 병원과 집만 매일 오가야 할 수도 있어.
이 모든 건 5년 뒤 너의 일상이 될 거야.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제일 힘든 건 ‘이게 좋고, 저건 나빠’라고 여겼던 내 생각을 바꾸는 거였어. 저것들 다 해도 애 절대 안 망쳐.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큰일 생기지 않아. 아이에게 플라스틱 장난감 주면 애 망친다고 말하는 육아 전문가들 있지? 멀리해.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문제행동이라는 걸 정해두고 어떤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면 맥락도 모르면서 부모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그런데 아무리 육아 전문가라도 다른 사람의 사정을 다 알기는 어렵잖아. 그러니까 육아에 대해 뭐가 좋고 나쁘고의 판단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야.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나 혼자 성 안에서 고고하게 육아하는 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고 믿는 것, 바로 그 생각이 아이에게는 가장 해로워. 아이는 엄마가 다른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바로 그 태도를 보고 배울 테니까. 어린이집을 다니는 고래가 요즘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야. “엄마, 누구는 뭐를 잘못했어. 그러면 안 되는데, 걔는 왜 그럴까?” “엄마 오늘은 누가 어떤 말을 했어. 그건 나쁜 말인데. 걔는 이상해.” 네 품 안에서 방긋방긋 웃던 고래는 어린이가 되어 친구들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게 되었어. 어떤 친구는 어때서 좋고, 어때서 귀엽다는 말보다 나랑 다르게 말하고 행동해서 이상하고 틀렸다는 말을 월등히 많이 하는 아이가 되었지.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아? 내가 늘 하던 말이잖아. 어떤 엄마는 애한테 시판 과자를 주더라, 어떤 엄마는 애를 데리고 맨날 마트에 가더라, 어떤 엄마는 애한테 핸드폰 동영상을 틀어주고 밥을 먹더라, 이랬더라 저랬더라.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떠들어대던 바로 그 말투로 지금 고래가 이야기하고 있어. 엄마 나이 여섯 살 고래꿈별맘은 매일 “고래야, 그 친구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 “고래야,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라며 뒤늦게 아이 마음을 넓혀주려 노력하는 중이야.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으니까. 과거의 내가 비난하던 육아를 직접 해보니,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해서는 안 되겠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기에 언젠가는 고래에게 전해지리라고 믿어. 다만 과거의 내 말투를 고대로 따라 하는 고래를 보며 매일 부끄러울 뿐이야.
애쓰고 있고, 잘 하고 있어. 그렇지만 자만심은 조금 내려놓도록 해.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고래를 위해서. 막막하고 불안한 초보 엄마 시절의 너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 그때 잘 버텨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곧 꿈별이라는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아이도 만나게 될 테니까 기대해.
마지막으로, 천기저귀 좀 그만 사. 너무 많다.
그럼 이만 줄일게.
-늘어난 뱃살만큼 제법 성숙해진
여섯 살 고래꿈별맘이.
*에세이레터 <조각보> 13호(2020.10.20.)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