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첫째를 임신하고 초기에 피고임이 심해서 퇴사를 한 뒤 7년째 전업 엄마로 살았다. 첫째는 일곱 살이 되었고 둘째는 10개월 발달을 보이는 세 살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전업 엄마로 살 생각은 아니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만큼 나는 일에 진심인 편이었다. 직장에서 자아실현 할 거라고 몸과 영혼을 다 쏟아부어 일했고 사회적 성공을 바랐다. 아이를 낳으면 몇 년쯤 육아한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첫째를 독박 육아하고, 둘째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병원 뒷바라지, 재활치료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어느새 7년 차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경단녀’라는 말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던데 나에게는 딱 들어맞는 단어다. 이전의 커리어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럴 수도 없고 마땅히 다른 기술이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기 때문이다. 살림과 돌봄은 고도의 종합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노동이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력이 되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포기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내면의 성장은 객관적인 수치로 계량해서 내보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출산 이전의 내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고, 얼마나 능력 있는 직장인이었는지는 이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말을 ‘경력 유보 여성’이라고 바꾼다고 육아나 살림 경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육아나 살림이 적성에 맞아서 7년이나 전업 엄마로 산 것은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이 아이 돌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친정엄마의 희생을 전제로 내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몇 년쯤 ‘경력 단절’이 되어도 얼마든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성취 지향적인 내가 도대체 완결이라고는 없는 무한반복의 살림을 매일 하고, 내 계획이나 목표보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한 육아에 매진하려니 매 순간 내면에서 태풍이 몰아쳤다.
아이가 어릴 때만 해도 육아를 회사 일하듯 당면한 과업을 잘 해결하고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모유 수유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면 백일 동안 매일 울고 유두가 찢어져 피가 나고 유선염이 와도 끝내 완모를 했고, 천기저귀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하루에 서너 번씩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기저귀 뗄 때까지 ‘올천기저귀’를 했다. 자연에서 노는 게 좋다기에 운전이 서툴면서 매일 국립공원으로, 산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녔고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매일 빵을 구웠다. 두 돌까지는 퀘스트 완료하듯이 육아하는 게 통했다. 그러나 말이 빨랐던 첫째는 두 돌이 지나자 자아가 태동하여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의 약점을 기가 막히게 안다. 바닥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울고불고 떼를 쓸 때는 평온하던 엄마가 말대꾸를 하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걸 첫째는 귀신같이 파악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순하고 조용한 세 살배기 아이지만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만 들리게 신경을 긁는 소리를 해댔다. 애랑 유치하게 말다툼하고 있으면 주변에서는 나의 미성숙한 성정을 나무랐다. 꼬맹이가 얼마나 속을 헤집을 수 있을지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밤마다 육아서를 읽고 유명한 육아 강의를 다 찾아들었지만 끝내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 새끼는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부터 육아가 싫어졌다. 주도적인 삶이 중요한 나에게 아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맞추는, 혹은 아이에게 좋다는 방식으로 생활을 변화시켜야 하는 육아는 더 이상 기쁨이 되어주지 못했다. 인정욕구가 강한 나에게 육아는 아무런 성취감을 주지 못했다. 엄마가 자기 애 키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가족들조차 칭찬하거나 감사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맘충’이라고 손가락질하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애 하나 잘 키웠다고 인정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20년 후에 아이가 명문대에 입학이라도 해야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줄까 말까 한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둘째를 조금만 키우고 다시 공부를 해야지, 일을 시작해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 산후조리도 없이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유축한 모유를 싸 들고 면회를 다니면서 둘째 육아를 시작했다. 설상가상 남편은 또다시 해외로 발령이 났다. 코로나19로 한동안은 어린이집 도움조차 못 받고 애 둘을 혼자 키워야 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무사히 살아남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둘째의 몸 상태 때문에 이민 준비도 좌절됐고, 가까운 친구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장애아 엄마인 내게는 상처가 되어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구원한 건 글쓰기였다. 온전히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상담사의 도움도 있었지만, 상담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터져 나오는 슬픔을 쏟아낼 방법은 쓰기뿐이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장애를 가진 둘째를 낳고 우리 가족의 앞날이 깜깜하고, 내 커리어는 더더욱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에 1년 동안 초보 장애아 엄마의 분투를 연재하고, 에세이레터 <조각보>에 매주 에세이를 쓰게 되었으며,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열심히 에세이를 써서 올렸더니 EBS와 브런치가 공동 주관하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집에 내 글이 실리기도 했다. 당장 큰 수익이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글쓰기는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 좋았다. 잠을 줄이고, 아이들을 미디어 기기 앞에 방치하면서도 읽고 썼다. 팟캐스트 채널도 만들었다. 어차피 육아랑 살림은 열심히 해봐야 본전인데 다른 할 일이 있다는 게 신이 났다. 매일 둘째 재활치료실과 병원에 다니고 첫째 도시락을 싸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엄마 역할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는 무언가를 한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엄마로서 육아기를 쓰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틀어박혀 밥만 해대고 기저귀만 갈아대는 것과 육아 에세이를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언어를 가지자 내 안에 힘이 생겼다. 매일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내면의 힘을 키워갔다. 조각보 작가 소개에 얼굴을 공개하고, 블로그에 실명을 공개하고, SNS에 내 이야기를 공개하고, 점점 세상 밖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이제 나는 전업 엄마를 때려치우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간다. 아침에 아이 둘 아침 먹이고 첫째 등원시키자마자 둘째랑 재활치료실 다녀오고, 둘째까지 어린이집 보내면 온전히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한두 시간 남짓이다. 운 좋으면 글 한 편 쓸 수 있고, 다 못써도 아이들 하원 하러 가야 한다. 그래서 애들 재우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거나,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에 먼저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팟캐스트를 녹음한다. 그래도 그만두고 싶지 않다. 아니 더 많이 하고 싶다. 오랫동안 밥벌이보다 자아실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 아이 둘이 된 네 식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돈도 많이 벌고 싶다. 내년에 학교 가는 첫째 피아노도 원목으로 사주고 싶고, 책상도 좋은 걸로 사주고 싶다. 일반 아기 신발을 못 신어서 꼭 직구해야 하는 둘째 운동화도 바꿔가며 신을 수 있게 여러 켤레 사주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전업 엄마말고 ‘홈 워킹맘’하려고 한다.
살림과 돌봄도 일이고 노동이다. 그러나 돈도 지위도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몸이 부서져라 애를 써도 아무런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다. 안 맞는데 억지로 7년을 버텼다. 육아서에서 애착 육아가 중요하다기에, 어린 시절이 너무 중요하다기에, 엄마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기에, 엄마 노릇 잘하고 싶어서 억지로 했다. 이제는 안 하련다. 누가 아이에게 엄마가 옆에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 “당신이 해보던가!”라고 쏘아붙여 줄 테다. 육아가 너무 중요하고 고귀한 일인데 왜 아빠들은 매일 12시간씩 집을 비워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가. 왜 2021년에도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은 포기하는 거라는 말이 들려오는가. 왜 아빠가 회사 다니는 건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 있는 행동이고, 엄마가 커리어를 가지는 건 애를 떼어놓는 매정한 선택인가. 싸워야 할 일이, 바꿔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풀타임 정규직으로 취직을 할 수도 없고 당장 가게를 차릴 수도 없지만, 틈틈이 뭐든 해볼 계획이다. 사업의 ‘ㅅ’도 모르는데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제 나는 전업 엄마가 아니다. 전업 엄마를 사직한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40호(2021.4.27.)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