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밥돌밥.’
코로나로 재택근무와 가정 보육이 시너지를 내며 돌아서면 밥하기가 절정에 올랐다. 돌밥의 연속인 날들이 기약 없이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연예인은 삼시 세끼 밥만 차려 먹어도 출연료도 받고 인기도 얻지만 엄마들의 삼시 세끼 밥돌밥돌밥 노동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에 감사조차 받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로 외식이 힘들어지자 집밥에 관심이 늘었다고 한다. 객지 생활하면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그립다는 토로도 많다. 허튼 우스갯소리 중에는 “예쁜 아내는 3개월, 착한 아내는 3년, 요리 잘하는 아내를 만나면 30년이 행복하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집밥은 무언가 신성하고 따뜻하고 가족의 건강과 정서를 책임지는 대단한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집밥을 해 먹는 건 대단한 일이다. 밥 차리는 건 종합예술에 가깝다. 어떤 식재료를 살지 기획하고, 장을 보고, 각 식품의 보관 방법에 맞게 보관, 저장하고, 유통기한을 확인해서 신선할 때 조리를 해야 한다. 요리는 또 어떤가. 메뉴를 정하고 필요한 재료를 꺼내서 씻고 다듬고 썰고 삶거나 볶거나 굽거나 데치거나 등등 조리한 뒤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려야 한다. 영양 균형도 생각해야 하고 다른 반찬, 국과의 조화도 따져야 한다. 가족 구성원의 입맛과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은 재료를 다시 잘 보관하고 설거지를 하고 상을 치운다. 다음 끼니때가 되면 다시 반복한다. 재료마다 양념마다 소진되는 속도가 다르다. 수시로 재고 파악을 해놓지 않으면 요리를 하려다 재료가 없어서 못 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조리 도구도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따져보고 구매해서 잘 관리해야 하며 손상이 생기면 교체해야 한다. 그릇이나 반찬 용기를 구매하고 관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냉장고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고 탈취 필터 교환 날짜도 체크해야 한다. 정수기가 있다면 필터 교체 일정을 조율해야 하고 오븐,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식기세척기나 믹서기, 푸드프로세서, 착즙기 등의 소형 가전을 구매, 관리, 청소하는 것도 집밥 안에 포함된 일이다.
어떤 쌀을 살지, 도정을 얼마큼 한 것으로 고를지, 제철 채소를 대량 구매했을 때 어떻게 보관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산에 맞춰 재료를 유기농으로 살지, 친환경으로 살지, 마트에서 살지, 시장에서 살지, 배달 시킬지도 결정해야 한다. 간식은 또 따로 챙겨야 한다. 제철 과일을 구매하고 아이들 간식거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때 되면 김장해야 하고, 장아찌 담가야 하고, 매실청 담가야 하고, 장도 담가야 한다. 직접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김치나 된장, 간장, 고추장을 어디서 얼마나 살지 결정하는 것도 집밥 차리는 뒤에 숨어 있는 노동이다. 식품 첨가물이 뭐뭐 들어갔는지, 재료 중에 GMO 식품은 없는지, 믿을 수 있는 제조 업체인지 살펴야 한다. 하다못해 소금 하나만 보아도 굵은 소금, 가는소금, 맛소금, 천일염, 히말라야 소금, 죽염 등 종류와 용도가 다양하다.
물론 아궁이에 불 때서 가마솥에 밥 지을 때보다는 수월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에 나열한 것들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즉석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거칠게 적었을 뿐, 실제로는 신경 써야 할 일, 처리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 집밥 한 끼를 차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동이 투여된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외식을 못하니까 집밥을 먹어야 된다든가, 아이들 건강을 위해 집밥을 해줘야 된다든가, 가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집밥을 해야 한다고, 그게 마치 라면 끓여 먹듯 쉬운 일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들 중에도 집밥을 알뜰하게 잘해 먹어서 외식비를 줄였다고 집밥 사진이나 가계부 사진을 자랑스럽게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거나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밥을 차린 엄마의 노동은 경제적으로 집계가 안 된다. 나도 한때는 집밥에 목숨 깨나 걸었던 사람인데 요즘은 힘들어서 대충 차린다. 그런데 집밥 차리기가 힘들어지고 나서야 질문하게 되었다. 왜 엄마가 집밥 차리는 노동이 당연한 걸로 여겨지는 거지? 왜 외식비를 줄이기 위해 내 손목이 아플 때까지, 다리가 아플 때까지 요리를 해야 하지? 어쩌다 한 끼 맡아도 냉동 만두 데워주는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집밥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고달픈 노동인지.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자영업자들 다음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람이 전업주부라는 기사를 봤다. 삼시 세끼 돌밥돌밥 한다는 건 먹고사는 걸 걱정할 만큼의 스트레스라는 뜻이다. 매일 가족들 끼니를 만들고 차리는 사람은 집밥 예찬 따위 하지 않는다. 애 엄마들은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드문 일이라는 증거다. 집밥은 건강하고 돈이 많이 안 든다. 그러나 차리는 사람, 대부분의 경우 엄마에게 매우 큰 짐을 지우는 일이다.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고 갓 지은 밥에서 김이 폴폴 나는 집밥으로 미화된 이미지 뒤에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퉁퉁 붓고 습진에 시달리는 손을 가진 엄마의 노동이 숨겨져 있다. 집밥 예찬은 그래서 위험하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36호(2021.3.30.)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