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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ug 31. 2021

화가 난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 읽고 쓰기.



나는 화가 난 상태다. 세상 사람들 다 꼴도 보기 싫다. 절친했던 친구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기도 힘들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웃으며 상대해 줄 에너지가 없다. 특히 첫째를 같이 키웠던 친구들을 보는 게 제일 괴롭다. 우리는 분명 마음이 잘 통하는 육아 동지였는데, 나만 그 무리에서 멀리 내쳐진 기분이다. 나는 변두리로 내동댕이 쳐졌는데 여전히 아름답고 평온하게 육아하는 친구들이 얄밉다. 육아가 힘들다거나 우울하다고 말하면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 힘들어? 뭐가 힘들어? 매일 종합병원 다니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애를 수술장에 들여보내는 것도 아닌데 뭐가 힘들어?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쏘아대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냥 만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장애를 가진 아이도 첫째와 똑같은 내 아기라고, 똑같이 사랑할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각종 합병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의 병원 수발을 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떻게 이 작은 몸에 그렇게 많은 ‘이상’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장애인 첫째를 키우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손 빨기, 뒤집기, 목 가누기, 네발 기기, 앉기, 서기, 숟가락질하기, 컵 쥐고 물 마시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책으로 다운증후군, 발달장애를 공부해도 그때뿐이다. ‘설마 이런 것도 못한다고?’ 아이의 더딘 발달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일 절망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와 눈 맞추고 웃는 둘째를 보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미치도록 싫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서 두 발로 섰으면, 손잡고 아장아장 걸었으면, 밥을 꼭꼭 씹어 먹었으면, 물을 꿀꺽꿀꺽 마셨으면, “엄마 맘마 줘”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배 속에 있을 때 양수검사로 이미 다운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채혈을 해서 염색체 검사를 했다. 결과는 21번 염색체가 세 개인 삼염색체라는 종류의 다운증후군이었다. 다운증후군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마침내 퇴원하던 기쁜 날, 담당 의사와 나는 언성을 높이며 씩씩댔다. 다운증후군 종류에 따라 질병 코드가 각기 다른데 정부 정책이 새로 바뀌면서 의료비 지원인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는 기간에 차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2년이 아니라 5년짜리 질병코드로 산정특례 신청을 해줘야 한다고 내가 따져 물었고, 의사는 바뀐 제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도록 뛰어다니면서 절차를 알아봤다. 기형아 검사 결과 고위험군이라 태아 보험 가입이 거절되었기에 삼염색체 코드를 정확히 받는 게 내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한 후에 진단서와 서류를 잔뜩 받아서 퇴원했다.



둘째는 종합병원 총 열 개 과에 정기적으로 진료를 다니지만 산정특례 외에 다른 지원은 전무했다. 해당 질환이 다운증후군과 관계가 없다고 의사가 결론 내리면 아무런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연관성이 인정되어 산정특례로 의료비의 10%만 부담하는 진료과에서도 비급여 검사를 하게 되면 몇십만 원씩 목돈이 들어갔다. 남편은 미리 태아보험을 들지 않았다고 나를 원망했다. 임신 초기에 유산 위험으로 입원까지 했다가 안정기 접어들어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기형아 검사 이상으로 거절당했는데 내 탓을 하니 억울했다. 임신 후기에도 양수과다증으로 고위험군 산모였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보건소에 찾아가서 희귀난치병 지원에 대해 물었다. 담당 공무원은 남편 소득이 높아서 지원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태어나자마자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영구장애를 갖게 될 거라고 설명해도 아무 지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돌아서는 내 등에 대고 그는 이제 오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받을 때도 그랬다. 둘째는 분명 지원 대상자인데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진단서, 가족 인적 사항, 건강보험료 납부 내역서 등 온갖 서류를 다 준비해 가서 따박따박 따지니 그제야 신청을 받았다. 그 덕에 뒤늦게 발달 센터에서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대학병원 언어치료 대기는 우리 앞에 수백 명이 줄 서 있다. 사설 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회당 5만 원 이상이라 지원 없이 다니기엔 부담이 됐었다. 최근에는 마스크 착용으로 입모양이 보이지 않아 비장애 아이들 중에도 언어발달 지연이 늘고 있어서 치료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나는 불안을 배웠다. 둘째를 만나기 전까지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옳다고 믿는 대로, 소박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단칸방에 살며 폐지를 주워도 우리 가족이 함께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치료실에 다니며, 수시로 몰랐던 이상이 발견되는 아이를 돌보면서 나는 변했다. 얼마 전 잠복고환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수술 코디네이터를 만나 제일 먼저 한 질문은 “수술비는 얼마인가요?”였다. 두 번째 질문은 “산정특례 적용되나요?”였다. 나는 수술 절차나 아이 몸에 미칠 영향보다 수술비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됐다.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 들어도 “비급여인가요?”부터 묻는다. 보건 당국은 우리 가족이 소득이 높다고 판정했지만, 보험조차 없는 외벌이 4인 가족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기엔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올해 둘째는 두 돌이 지나 장애진단을 받았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생후 염색체 검사로 바로 알 수 있고 영구 장애라서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지적장애는 무조건 두 돌 이후에 판정한다. 복지카드를 받기까지의 여정도 험난했다. 재활의학과 의사를 만나서 평가 처방을 받고, 치료사에게 발달 평가를 받고, 다시 의사를 만나 결과를 듣고 밀봉된 판정 서류를 받아서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장애진단은 비급여로 20만 원 가까이하는데 그 돈이 없어서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두 달쯤 기다려서 연락이 오면 사진을 들고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복지카드 신청서를 작성하고, 유성펜으로 찍찍 그어서 써주는 장애등록차량 표지판을 받아서 온다. 열흘쯤 후에 집으로 복지카드가 배송되어 온다. 다른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은 양육자가 일일이 따로 신청해야 해서 아직 못했다. 매일 아이 데리고 치료실 다니기 바빠서 시청에, 복지센터에 찾아다니면서 푼돈 지원해 달라고 요청할 기력이 없다.



연말정산할 때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내가 쓴 카드, 현금영수증, 병원비, 기부금 내역까지 한 번에 조회할 수 있고, 공동 인증서로 로그인하면 아이사랑 사이트 안에서 전국의 어린이집 현황과 대기 순서까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시대인데 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그게 안 된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하나하나 찾아보고 신청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담당 공무원이 내용을 몰라서 내가 설명해 주기 일쑤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닌데, IT 강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통합 홈페이지도, 서비스도 없다는 게 분통터진다.



아이의 복지카드에 모자이크를 한 뒤 sns에 올렸더니 호주에서 자폐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는 페친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 얼굴, 주소, 생년월일이 다 나온 카드를 지니고 다녀야 하는 거냐고. 초보 장애아 엄마인 나 대신 다른 선배 장애아 엄마가 댓글을 달았다. “부정수급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저렇게 사진과 인적 사항을 다 써놓는 거”라고. 공공장소에서 입장료를 몇백 원 할인받으려고 해도 아이를 안고 가서 복지카드를 내밀어 ‘이 카드에 있는 장애인이 바로 여기 있다’고 확인시켜야 한다. 페친이 묻기 전까지 나는 그 과정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인지조차 못했다.



가뜩이나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닌데, 사사건건 따지고 싸워야 하니 갈수록 쌈닭이 돼간다. 오늘도 나는 화가 난다.



'감응의 글쓰기' 첫 수업 과제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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