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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Sep 01. 2020

나를 지탱해준 그녀들

다운천사 꿈별맞이





양수검사를 하고 다운증후군 확진을 받고 난 후 임신 후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 번 떨어지고 이제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또 땅이 꺼지고, 이젠 정말 바닥이겠지,라고 생각해도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임신 중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민감해지고 감정 기복이 생기기 쉽다. 엄마의 스트레스가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가 고통과 슬픔으로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꿈별이는 다행히 잘 버텨주었다.



고위험군 산모와 기형아


임신 초기부터 유산 위험으로 입원까지 한 고위험군 산모였던 나는 임신 후기에는 양수과다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배 속 꿈별이의 십이지장이 막혀 있어서 양수를 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 중에도 별다른 합병증 없이 건강히 태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꿈별이는 여러 가지 합병증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태아가 양수를 삼켜주지 않아서 내 배 속 양수는 점점 늘어만 갔고 의사가 말하길, 이 정도면 쌍둥이를 임신한 것보다도 큰 배라고 했다.


쌍둥이를 임신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않아도 숨이 차고, 양수가 위장을 압박해서 신물이 올라오기 때문에 음식을 편히 먹을 수도 없었으며 호흡 곤란으로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첫째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쪽잠을 잤다. 그 와중에도 꿈별이는 뻥뻥 발을 차며 놀았다. 양수과다라 아이는 넓어서 편할 거라고 의사가 일러준 게 생각났다. 너라도 편하니 다행이다, 꿈별이에게 말을 건넸다.



몸의 고통을 넘어서는 마음의 아픔


기다리던 둘째 아이가 기형아, 장애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엄마인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에게도 청천벽력이고 겪어본 적 없는 슬픔이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가족들은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꿈별이의 장애는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힘들 때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는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를 보듬어주는 대신 고통의 이유를 서로에게 돌리며 무참히 공격했다.


첫째인 고래를 임신했을 때 나는 아주 작은 자극만 있어도 눈물을 쏟곤 했다. 그런데 고위험군 임신부로 몸이 아프고, 일상생활조차 힘든 와중에 가족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기는커녕 비난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차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의연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너무 큰 절망 앞에서는 오히려 모든 게 단순하게 보였다.


"나는 이 아이를 지킬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이 문장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 아이를 지킬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꼭 이 아이를 무사히, 건강히 만나서 품에 안고 사랑해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원망스럽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울지 않았던 것도 물론 아니다. 거의 매일 울었고 때로는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를 받아들이듯,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지켜보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나를 지탱해준 그녀들


내가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를 같이 키운 육아 동지들과 매주 서로의 삶을 나누는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입덧, 유산 위험, 양수검사, 다운증후군 확진, 가족들과의 갈등이라는 다사다난한 임신 기간 동안 늘 옆에 있어주었다. 친구들은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네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지키기로 했기 때문에 널 지지하는 게 아니야. 네가 아이를 보내주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우리는 너를 똑같이 응원할 거야. 언제나 곁에 있을 거야."


내 선택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나를 지지한다는 말에 이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무조건적인 존중과 응원을 보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큰, 무거운 우정을 받아도 될까 주저될 만큼 친구들은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나를 향한 가족의 비난 중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는 건 네가 이만큼 훌륭한 엄마라고 과시하고 싶은 영웅심리일 뿐"이라는 말이 유독 아팠다. 그 말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함께 공부를 하던 언니가 말했다. "그러면 어때? 영웅심리 때문에 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니야?" 언니의 말에 어깨를 짓누르던 자책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부족함이 많은, 그저 사람일 뿐인데 내 선택이 완전무결하게 거룩한 모성에 의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물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있지만, 어쩌면 내가 이렇게 훌륭한 엄마라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마음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나는 그런 엄마구나. 그런 사람이구나.


인생에서 두 번 겪기 힘들 정도의 큰 고난 앞에서 괴로워하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언제라도 달려와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선생님들도 있었다. 고래가 돌도 되기 전부터 육아 전반을 상의하고 의지하며 따라온 선생님은 내 전화 한 통에 밤늦게 택시를 타고 먼 우리 집까지 달려와 주시기도 했고, 지친 나 대신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도 했다. 또 멀리서 응원을 보내며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을 백방으로 알아봐 준 선생님도 있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더니, 나는 가장 큰 고통 앞에서 내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가족마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나를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고 일으켜주고 온 힘을 다해 지탱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그 지옥 같은 시기를 무사히 버텼다. 나와 꿈별이는, 우리 가족은 그녀들에게 큰 빚을 졌다. 아직은 여력이 없지만 죽기 전에 언젠가 꼭 갚을 날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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