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May 22. 2020

임신 중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

[꿈별 맞이]


꿈별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임신 중지 권유를 많이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이 나기도 전이었다. 불법으로 수술을 하는 의사를 찾아가서 의료보험도 적용받지 못한 채 환자로서의 권리도 당당히 주장할 수 없는 수술대에 오르라는 말이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낙태, 임신 중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종교는 없지만 태아도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임신 중지가 꼭 필요한 여성도 있을 텐데 법으로 금지를 하는 건 부당하다고도 생각했다. 딱 그 정도였다. 꿈별이를 만나기 전의 내 고민의 깊이는.




임신 중지 합법화에 찬성한다


2012년 임신한 여고생이 불법 낙태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불법이 아니었다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한 생명이 법과 냉혹한 사회 인식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다. 기존의 낙태법 따르면 임신한 여성과 수술한 의사만 처벌받는다. 아이를 혼자 가질 수는 없는데 생부인 남성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임신 초기에 약물로 안전하게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음지에서 건강권을 침해당하며 임신 중지 수술을 받았고, 발각될 경우 범법자가 될 거라는 불안감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임신은 그 자체로 여성의 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다. '정상 가족' 안에서 축복받는 임신을 했다 하더라도 입덧, 소양증, 임신성 당뇨, 관절 통증 등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호르몬 변화에 따른 감정 변화와 불안감 등에 시달린다. 산부인과 진료도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물며 임신을 중지하는 중차대한 수술을 하는데 의료보험의 혜택도, 환자로서 정당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채로 수술대에 오른다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임신, 출산은 오롯의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국가가 여성의 결정권을 강제로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피임 교육, 비혼모 지원,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 여타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다.




"Don't Screen Us Out!"


영국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성 하이디 크라우터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태아 낙태가 24주까지 합법인 데 반해 다운증후군을 가진 태아는 언제든 낙태할 수 있게 한 영국의 낙태법이 "매우 모욕적(deepily offensive)"이라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화가 나고 슬펐다"고 말했다. "아무도 나를 원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영국의 시민단체 "Don't Screen Us Out"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불과 몇십 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무수히 많은 여자아이가 낙태의 대상이 되었다. 원하던 성별이 아니라고, 원하던 건강상태의 아이가 아니라고 태아를 태어나지도 못하게 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세상 빛을 본다는 건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질 수 있는 권리인 것일까. 그 조건은 누가, 무슨 이유로 정하는 것일까. 문명화된 대부분의 국가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 신체나 정신의 어느 부분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국가에서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없다고, 일할 권리가 없다고 차별하는 것과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없다고 차별하는 것이 다른 행동일까. 100%를 보장하지도 않는 검사에서 기형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임신 중지를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장애인이 차별받는 사회의 다른 말이다. 선후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뿐 차별 해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내가 오늘 장애인을 차별할 것인가, 똑같은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명으로 대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태아에게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오면 장애를 이유로 한 임신 중지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기형아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기로 결정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한발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문제다.




여성의 권리와 장애인의 권리는 상충되는가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로서 장애인 차별에 반대한다. 나는 여성으로서 성차별에 반대한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인을 출생에서부터 배제하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유한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어떤 사람도 질병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매우 어려운 문제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나의 결론은 임신, 출산에 관한 한 선택의 주체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대신 아이를 뱃속에 품어줄 수 없고 대신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당사자가 모든 강요와 핍박에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임신한 여성이 장애를 가진 태아의 임신 중지를 원한다면 스스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자각하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존재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상가족' 안에서 계획 임신 하에 둘째를 가졌고 아이를 보살피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기형아를 임신 중지하기로 결정한 여성을 비난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기형아를 태어나지도 못하게 하는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존중하는 동시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건강과 행복을 누릴 권리도 존중하고 싶다. 그게 불가능한 꿈이 아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