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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12. 2020

기형아 검사할까, 말까?

[꿈별 맞이]


*첫째는 고래, 둘째는 꿈별이입니다. 글에서 태명을 씁니다.



고래를 임신했을 때는 첫 아이, 첫 임신이었기에 막달을 제외하고는 병원 진료를 빼먹거나 미룬 적이 없다. 고래는 머리둘레도 체중도 큰 편으로 보인다고 임신 후기에 먹는 걸 줄이라는 잔소리를 늘상 들었기에 막달 검사를 한 후에는 예약된 진료를 미뤘다. 기형아 검사, 정밀초음파, 입체 초음파, 임신 당뇨 검사 등 주수에 따라 필요하다고 하는 검사는 전부 받았다. 결과는 항상 문제없음, 정상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고래를 만나고 둘째 꿈별이를 임신하면서 이번에는 산부인과 진료를 자주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임신이라 특별히 불안하거나 궁금한 것도 없고 기형아 검사도 정밀초음파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래를 품고 만났듯이 이번에도 건강한 아이를 만삭까지 품다가 낳을 거라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은 태아 초음파를 우리나라처럼 자주 보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둘째는 검진을 서너 번밖에 가지 않고 낳았다는 지인의 말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최소한의 검사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래를 만날 때 첫 출산이라 집에서 낳는 게 두려워서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에 가서 낳았다. 첫째를 순산하고 나니 둘째는 가정 출산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가정 출산 역시 나와 아이가 매우 건강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병원을 자주 가지 않겠다는 계획도, 집에서 낳겠다는 계획도 임신 12주에 산부인과에 입원을 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피와 양수가 흐른 뒤로는 둘째 임신 내내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되어 건강한 임신부보다 자주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 했다. 정밀초음파 이후로는 아예 전원을 해서 임신 중후기에는 2~3주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검진을 다녔다. 초음파를 보기 위해 한 시간, 진료를 보기 위해 또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게 예삿일이었다. 불평할 수는 없었다. 정밀초음파를 볼 때마다 십이지장에, 심장에, 뇌에, 신장에, 얼굴뼈에 '정상'과 다른 부분이 보인다는 우려 섞인 소견들을 들었기에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검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초음파를 담당한 영상의학과 의사는 자주 한숨을 쉬었는데 그때마다 긴장 때문인지 배가 뭉쳤다.



양수검사 결과를 전하며 다운증후군을 확진할 때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무거운 얼굴로 "아시다시피 낙태는 불법이고(헌법재판소의 낙태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내려지기 전) 우리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말로 내뱉은 건 아니지만, 임신 중지를 원하면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는 뜻으로 들렸다. 의사는 "이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수술이 필요하고, 우리 병원에서 낳는다면 소아외과와 협진해서 바로 수술을 비롯해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취하도록 만발의 준비를 다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검사는 아이를 잘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꿈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필요한 준비를 다 해놓겠다는 의사의 말에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다.



기형아 검사를 영어로는 'screening'이라고 하는데 '가려내다, 거르다'는 뜻이 있는 단어다. 그래서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산모들 중에는 어떤 질병이나 기형이 있다 하더라도 내 아이로 낳아 사랑해주겠다는 결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유산 위험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필요한 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는 김에 기형아 검사까지 하게 됐지만, 유산 위험이 없었다면 12주에 병원 검진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산모의 혈액을 채취해서 하는 쿼드 검사는 정확도가 그리 높지 않고, 니프티 검사나 융모막 검사, 확진을 위해 하는 양수 검사 역시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임신 중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은 경우가 무척 많다. 19년생 다운증후군 아기들 엄마들과의 단체 채팅방에는 50여 명이 있는데 그중 산전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사람이 90% 이상이다. 그렇다면 100% 건강한 아이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닌 기형아 검사, 장애 아이를 걸러내려는 목적의 기형아 검사를 안 하는 게 옳을까?



십이지장 폐쇄로 탄생과 거의 동시에 수술대에 오른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기형아 검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의 나는 병원은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시로 종합병원에 다니는 지금은 현대의학의 성취에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오만한 의사를 만나면 불쾌하기도 하고, 약물 오남용이나 부작용, 의료사고의 위험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에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초음파 기계가 없는 과거에 태어났거나, 의료 시설이 열악한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꿈별이는 며칠도 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을 아기다. 꿈별이를 통해 소화기에,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의료적인 처치를 받지 못했다면 엄마 곁에서 살아 숨 쉴 수 없었을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꿈별이가 존재만으로 나에게 크나큰 행복을 주는 것처럼(육아의 고단함과는 별개로),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았기에 생존해 있는 많은 아이들이 그 가족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고 나서 이상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처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이 발달했기에 뱃속에서부터 의료적인 도움을 받거나 출생 후 보다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기형아 검사는 그런 도움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검사라고 생각한다. 생사를 오가는 정체절명의 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대비하고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은 아이의 생존과 앞으로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꿈별이는 태내에서 여러 이상 징후를 보였고 담당의의 관심과 배려로 같은 병원의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자리가 났을 때, 딱 맞춰서 유도 분만으로 아이를 낳아 무사히 NICU에 들어가 여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자연 진통을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같은 병원 NICU 정원이 다 차서 들어가지 못했다면 갓 태어난 아기를 응급차에 싣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심장에 구멍도 있고 십이지장 수술 후에도 호흡 곤란으로 한동안 NICU에 입원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바로 입원을 하지 못했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미리 검사와 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신생아과, 소아외과, 소아심장과, 유전학과 등 여러 과와 협진을 해서 꿈별이를 말 그대로 '살려 주셨다'. 꿈별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만큼이나 아이 목숨에 큰 도움을 주셨다. 산후 검진 이후 더 이상 그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갈 일은 없지만 언제나 은인으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불안하다는 이유로, 혹은 아이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자주 산부인과를 찾아 초음파 검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정해진 검사들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산부인과가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검사들이 아니라 혹시라도 만에 하나 아이에게 이상이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시기에 맞게 정해둔 검사들이라는 걸 이제는 믿는다. 몇 주마다 병원에 오라는 의사의 말이 잔소리로 느껴지고, 돈벌이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건 임신한 산모와 태아가 모두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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