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어제, 왕복 9시간에 걸쳐서 너를 보러 갔어.
내가 요새 많이 힘들었잖아.
회사 여자들이 날 그렇게 괴롭혔는데, 네가 있었다면 절대 내 편 하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더라.
내가 외국으로 나갈때, 내 선임에게 네가 날 잘 부탁한다고,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보냈던 긴 카톡이 기억났어. 이 삭막한 회사에서 사회생활에서 순수하게 날 위해주고, 믿어주고, 응원하고, 내가 걱정돼서 그렇게 긴 카톡을 보내줄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었겠어. 네가 있었다면 내가 당한 어이없는 일들에 나만큼이나 분노했을텐데, 그게 또 그렇게 애틋하고 고맙고 보고싶었어.
버스가 생각보다 막혔는데, 아버지가 날 기다린다고 한 시간이나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시더라구.
사실 널 보러가는 일을 생각하면 참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해. 거기 있는 건 네가 아니라 그냥 땅 밑에 있는 가루더미 뿐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묻힌 곳과, 네 이름이 적힌 걸 보면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이번에도 안 날 것 같은 울음이 또 터져버렸지 뭐야.
네 자리에 있는 나무가 분명 처음엔 묘목이었는데, 지난 번에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더니 갑자기 훌쩍 커져버려서 놀랐어. 그 정도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꾸며줘도 되겠더라. 이 많은 묘목들과 중간 크기 나무들이 더 자라고 자라면 이건 그냥 숲이 되려나, 아니면 나무들이 적당히 자라도록 이곳에서 관리를 하는 걸까 궁금했어. 나무가 그렇게 커진 걸 보니 네가 가고난 뒤의 몇 년이 너무 억울하고 마음이 아파서, 아직도 나는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넌 말이 없고 나무만 쑥쑥 자라는 게 억울해서 울고 또 울었어.
아버지가 너의 언니가 딸을 낳았는데, 너를 똑 닮았다고 얘기하시더라.
부모님 댁에 가니 어머니가 늘 그렇듯이 너무 반갑게 안아주셔서 또 눈물이 났어. 요새 날 그렇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없었거든. 처음 널 보러왔을 때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쓰러지실 것 같은 표정으로 나만 봐도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는데, 안색이 많이 좋아지셨어.
어머니는 밥을 또 진수성찬으로 차려주시고, 과일에 생강차까지, 그간 이런 집밥을 먹어본 게 대체 얼마만인가 싶더라. 우리 집에선 지난 설날에 피자와 치킨을 시켜주더라고 말씀드렸더니 다들 웃으시더라구. 그 말에 어머니는 또 네가 어렸을 때 생활이 어려워서 치킨같은 건 사주지도 못했다고, 중학교 때인가 어쩌나 치킨을 받아왔는데 네가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 얘기를 하시더라. 먼저 보낸 사람의 마음이 늘 그렇듯이, 어머니는 오죽하시겠어. 못해준 건 두고두고 미안하고 마음에 맺히는 거지.
어머니는 너가 뭐든 뚝딱뚝딱 잘 해먹던 게 요리가 타고났다고 하시고, 나도 네가 외국에 있을 때 혼자 족발같은 걸 사서 해먹고, 약식까지 만들어 먹곤 했다는 얘기를 나눴어. 어머니 아버지를 뵐 때마다 그분들이 보지 못하셨을 너의 재밌던 일상을 얘기해드리는 게 좋더라. 그래도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거든.
그리고 어머니가 조카 사진들을 보여주시는데, 정말 놀랍도록 네 얼굴이 보이더라. 특히 눈빛이 너무 똑같아. 아기가 벌써 너를 똑 닮았다니. 어쩌면 너의 일부가 우주를 떠돌다가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눈빛이 그렇게 같을까. 어머니가 조카 사진 보여주실 때는 너무 행복하게 웃으셔서 마음이 한결 놓였어. 역시 집안에 애기가 있어야 하나봐. 다시 행복하게 해드리는 존재가 생겨서 나도 좋으면서도 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도 들고.
아, 이번에 네 자리에 원래 귀여운 피규어들이 많았잖아. 나도 뭐 하나는 놓고 싶은데 그간 고민만 하다가 드디어 생각이 나서 가져다 놨다. 불가리아에서 샀던 예쁜 (아마도 가짜)보석들이 박혀있는 에그인데, 길거리 벼룩시장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너무 예뻐서 샀던거야. 근데 너무 화려해서 누추한 우리 집에선 하나도 어울리지 않게 자리만 차지했었거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쁜 걸 너한테 주고 싶었어. 네가 약속한 대로 내가 있는 쪽에 왔다면 불가리아도 같이 갔을 테니까. 얼마나 재밌었을까. 마침 겨울같은 날씨에 나무도 크리처럼 크고 그 아래 반짝이는 에그를 놔두니까 제법 멋지고 잘 어울려서 좋았어. 설마 누가 가져가진 않겠지!! 그 사람은 저주에 걸릴거야. 에그 안에 원래 보석같은 걸 보관해야 하는데, 난 몰래 내 증명사진 넣어놨어ㅋㅋ너가 그건 빼고 달라고 했을 것 같지만 그냥 뭐 그렇게라도 조금 가까이 있고 싶어서.
내 귀여운 에그가 드디어 어울리는 곳을 찾아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서 기뻤어. 넌 나한테 계속 좋은 것만 해주네.
앞으로 부모님을 뵙는 게 괜시리 네 추억만 곱씹게 만들어드리는 것 같아서, 당분간은 애기 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음번엔 나만 조용히 들렀다 갈게. 겨울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에그도 녹슬지 않으면 좋겠다.
또 갈게.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