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에 모공이 생긴 건

by 새벽달

노화란 무엇일까...


섹스앤더시티에서 자기애 충만한 사만다는 아래에 흰털이 나기 시작했을 때 비명을 지르며 좌절한다.


지금까지 막 살았던 나는 며칠전에 코 옆으로 볼 쪽에도 작은 모공들이 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좌절했다.



이제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다가왔다. 뺨 모공은 아저씨들한테나 있다고 생각했었다.

광대에 기미가 자글자글 생긴 것은 주근깨같으니까...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나를 속여도 기미는 기미지 주근깨가 아니다.


바로 저번주엔 누가 나한테 눈밑지방재배치를 하면 괜찮다고 했다. 나이들면 눈 주위가 푹 꺼진다고, 지금 하면 괜찮다고. '나는 항상 눈이 퀭했어!!' 라고 우겼지만 퀭한 거랑 꺼진거랑은 다르다는 판결을 받았다.


평생 피부에 안 좋은 것만 하고 살았던 것이 지난 연애들보다 더 깊은 후회가 든다.


썬크림 끈적인다고 안 발라 (파운데이션에 기능 포함돼있어서 괜찮아요!)

화장 안 지우고 자는 날이 허다해,

샤워하면서 뜨거운 물로 세수해,

20대 내내 얼굴에 바디로션 발라,

지금도 3단계 이런거 없이 그냥 딱 하나 바르고 끝,

어릴때부터 블랙헤드 짜면서 희열 느껴,

물도 잘 안 마셔, 미스트도 안 써


그냥 안 좋다는 건 다 하고 살아왔으면서 이제 걷잡을 수 없어지니 피부과가 아쉽다.


피부과 다니면 그거 한번 다니면 계속 다녀야 한다, 거기에 쓸 돈이 아깝다 어쩐다 했지만 내가 틀렸다.

내가 뻘짓에 허비한 그 돈으로 틈틈히 피부과를 갔어야 했다.

20대부터 꾸준히 관리해온 내 친구는 아직도 얼굴에 티 한점이 없다.

아니 피부과 전에 그냥 잘못 살아왔다.

샤워하고 마스크 팩을 하려면 머리를 말릴 때까지 기다렸다 얼굴이 땡길때 붙여야 하는지

마스크팩을 붙이고 머리를 말려야 하는지(팩도 말라버리지 않을까) 아직도 분간이 안된다.


폐가 찢어지도록 달려가 보아서 내 여름을 지켜주었어야 하는 것(시 구절인데 박준 시인이었는지..)은 네가 아니라 올리브영이었다.


누구나 죽지만 죽기 전까진 죽음이 자기를 빗겨갈 것처럼 살듯이, 노화는 중력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뻔한 것을 볼에 모공이 생기고나야만 인정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하찮게 여겼던 그 모든 것은 내 눈을 퀭하게, 아니 꺼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어떤 일은 이미 지나가서 어찌할 수 없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계속 어떻게 살아가지만 뺨에 모공이 생긴 사람은 앞으로 밭두렁처럼 온몸이 쭈글쭈글 늙어갈 것을 아주 천천히 지켜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래서 서브스턴스가 명작이구만..






작가의 이전글다정과 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