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이직 준비를 하면서 어째 서류가 붙은 공공기관에 시험을 보러 갔다. NCS를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20대..) 비슷한 류의 문제를 풀 때 꽤나 쳤던 것 같아서 따로 공부는 하고 가지 않았다. 대신 국사 문제가 있길래 이 나이에 또 소수림왕이 태학을 설립했다는 걸 보고 있다니, 내 인생도 별나다 하면서 며칠간 국사를 훑어보고 갔다. 하도 여기저기 서류를 많이 넣어서 이번에도 경력직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시험을 본다는 것이 신입 채용이었구만, 하면서 젊은이들과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NCS를 푸는데 수리사고 영역? 에서 갑자기 생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A는 공휴일에 영업을 하지 않고, B는 A가 영업을 하지 않는 날엔 영업을 하지 않고, C는 공휴일에도 영업을 하고, D는 어쩌고 하는데 분명 예전같으면 돌아갔을 뇌가 회색 실타래로 엉켜버린 느낌이었다. 한두 문제 낑낑거리다가 시간이 다 되어 나머지는 거의 찍고 나왔다.
- 또다시 이직 얘기로..퇴사를 하고 나왔어야 '배수의 진'을 치고 더 치열하게 했을 텐데,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배산임수'라고 말해버렸다.
- 아침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한참 고민할 때가 있다.
- 샤워하면서 방금 샴푸를 했는지 또는 린스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두 번씩 하는 편이다.
- 올해 업무하면서 콘텐츠 내용보다는 정말 말도 안되는 오타나, 날짜를 잘못 적어 곤란한 일이 많았는데, 신입도 안 할 실수를 자꾸 하는 것을 보면 집중력 또는 전체를 훑어보는 판단력 자체가 흐려진 것 같다.
이외에도 너무 멍청해진 사례가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우울증 약을 너무 오래 먹다보니 생각을 깊이 하는 능력 자체가 없어진 것 같다. 약 자체가 감정에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어느정도 생각을 차단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약을 먹기 시작한 초반엔 어떤 생각 자체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뿌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감정 자체는 조절이 안되니 더욱 답답하기도 했고.
이제 약을 거의 5년째 먹고있다보니 그 머리가 foggy해지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약을 안 먹으면 생각이 맑아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한다. 어제 오랜만에 본 동기들 중 내가 NCS를 미리미리 공부하지 않은 것을 혼내는 언니도 있었지만, 언니가 가고나서 나만큼이나 우울증 약을 오래 먹은 동기는 자기도 머리 돌아가는 것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며 이전의 총명함을 잃었다고 둘이 한참 그 얘기를 나눴다.
어쩌면 매일 술을 먹고 담배를 피니 뇌세포가 파괴되어서 건망증이 심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노화도 단단히 한 몫 하는 것 같고.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지금 나에게 어떤 총명함이 필요하긴 한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나에겐 지상 최대 업적인데, 총명함을 요구하는 일이 주어지기나 하던가. (마침 시험 발표 2일 뒤에 내가 떨어진 공공기관은 지방으로 이전된다는 뉴스가 떠서 오히려 러키비키.......)
멍청해지고 싶진 않지만 지금 상태로 보아 몸의 건강이 두뇌 건강보다는 중요한 시기여서 조금 슬프다. 술을 5년간 1년에 3일 정도 빼고는 매일 마셨으니 건강할 리가 없겠지. 으휴.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 - 약, 술, 담배 등을 하나씩 줄여내고 싶지만
약을 줄이면 당장 후유증이 심하고 잠은 절대 잘 수가 없고,
술이 없으면 저녁 시간을 맨 정신으로 보내기가 너무 힘들고,
담배가 없으면........담배는 끊어볼 만 할 것 같다.
사실 담배야말로 별 크리티컬한 영향 없이 내가 즐길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뭐 하나라도 끊어내고 싶다. 뭐라도 잠시 클린해지고 싶다.
뭐, 이런 생각 자체가 든 것도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