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글쓰기

by 새벽달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가 그렇게 두꺼운 책인지 모르고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거의 챌린지하듯이 완독했다. 전자책의 단점은 종이 넘기는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언제 끝나는 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되었다.


1930년 초반에 쓰여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시대를 초월하는 허무주의와 공허함이 역시 클래식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약간 안도감이 들기도 했으며, 이런 생각과 감정을 이 많은 페이지에 다 다른 말과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하고 부러웠다.


이 정도의 허무주의는 얼마나 깊은 곳에서 오는 걸까. 삶을 관통하는 공허함을 이런 문장으로 쓸 수 있다니.


이런 클래식 대작의 찢어낸 한 귀퉁이만도 못한 내 글 또는 쓰고싶은 것들은 너무 부끄러운 것이 많다. 어떤 감정을 유려한 글로 빚어내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싶지만 내가 나를 내려놓고 그런 부도덕성과 이면의 감정이나 비난받을 생각과 같은 것을 쓸 용기가 없다. 솔직하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솔직해지고 싶어서 익명의 공간에서 글을 쓰면서 결국 또 모든걸 적당히 포장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도 결국은 현실을 정교하게 모방한 스토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작가가 느낀 바와 사고하는 방식, 경험과 감정이니까 자기고백적이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싫어하면서도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끔찍한 이야기를 어떻게 머릿속에서 생각해내는 걸까. 평생 소고기를 못 먹어본 사람이 소고기의 맛을 정확하게 쓸 수 있을까? 바다를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바다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그릴 수 있을까?


간접경험과 상상의 영역이 있지만 그런 면은 어딘가에서 덜 봉합된 느낌이 나게 마련이다. 드라마를 보아도 실제 남의 이야기만 듣고 직업 묘사를 한다던지. 알고 겪어봐야 보는 것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니까.


아 판타지의 세계는 또 다른가.


아무튼 글을 쓰고 싶은 욕구와 내 허접한 글에 대한 불만과, 누군가에게 절대 비밀로 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봐줬으면 좋겠다는 모순에 대해 언제쯤 나는 추잡한 것들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아니 에르노처럼).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지도 못해 내놓기도 부끄러운 단순한 감정의 노출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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