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쪼았다???

by 새벽달

일반인 모델 이야기 겸 조만간 묶어낼 일화 중 하나.


얼마전에 평소에 자주 촬영을 해서 조금 친해진 사진가의 스튜디오에 또 사진을 찍으러 갔다.

아 이걸 어디다가 얘기는 못하겠는 것이, 원래는 사진이 본업인 사람, 그것도 웨딩 전문이라 나로선 나름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촬영)가지고 장난질은 안 치겠지, 밥벌이가 달려있으니 엄한 짓은 못하겠지, 하는 종류의 신뢰.


원래 처음부터 좀 서로 츤츤대며 티격태격할 때가 있었는데, 남의 사진 얘기나 장비 얘기가 나오면 발작 버튼 눌릴 때 진작 알아봤어야했다. 이 사람도 좀 돌아있다는 것을..


그래도 뭐 묻지도 않은 가족사와 누가 돌아가셔서 이런 속얘기도 줄줄 털어놓길래 그래도 인간적인 대화는 가능한 축이다, 라고 생각했었었다. 이성적 호감이 들거나 친구의 범위에 들어오진 못할지언정 그래도, 그래도.


그런데 그 날,

평소보다 티격태격이 좀 더 날 선 듯 하더니, 의자에 앉아있는 내 목을 뒤에서 조르는 자세를 취하길래 어어?해보기만 하시라?풀어라? 했는데 그대로길래 냅다 손목을 물어버렸다.*


*여기서 깨달은 주의사항 : 진짜 강도나 깡패를 만났을때 함부로 깨물거나 해서 영화처럼 으아아 하고 놓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런데 아팠는지 갑자기 진짜로 내 목을 끌고 뒤로 질질 끌고가서 나는 의자에서 떨어져서 5발자국 정도를 질질 끌려갔다. 실화다.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사과를 하긴 했는데 사과라고 하는 말이 "목을 쪼아서 미안해요. 앞으로 안..." ...그정도로 목이 졸려서 끌려가니 진짜로 잠시 정신이 아득하고 눈앞이 까매지던데, 이제 정말 감정이 없어진 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놀라거나 불같이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꼴보기 싫다는 생각 조금, 그리고 제일 거슬린 건 '목을 쪼았다' 라는 표현.


참새도 아니고 목을 쪼은다니? 사투리인가?

서울말 쓰다가 갑자기 목을 '쪼은다'니?

왜인지 이 단어에서 제일 깊은 환멸과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답도 하지않고 절레절레 짐을 챙겨 나왔는데, 그 사람은 아마 내가 소문을 내면 본인 커리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아니 신고를 할 수도 있으니 좀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궁금증은, 그 사람은 왜 그랬나, 가 아니라 왜 나는 화를 낼 감정마저 남아있지 않느냐이다. 응당 화나고 놀라고 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왜 나는 그 무엇도 느끼지 않고 담담히 돌아서며 '목을 쪼아서'에서만 짜증이 치밀고 환멸이 나는가.


오늘 의사선생님에게 이 상황에 대해 말했는데


선생님 : 단둘이 사진을 찍는 건 조심하셔야 될 것 같아요

나 : 프로필 사진도 스튜디오에서 단둘이 찍고 하다못해 여권사진도 단둘이 찍는데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내가 조심하라는 것이 조금 짜증이 나면서,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왜 응당 화나야 할 상황에서 화도 안 날까'라고, 심각하게 감정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건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고 넘어가셨다.


아니 제가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고..이게 괜찮다고 받아들여서 화가 안나는 게 아니고오..


하도 겪은 일이 많다보니 응징하려고 애쓰는 것이 흙탕물 싸움이고 에너지 낭비라는 걸 인정한 걸까. 감정은 차단하고 있는데 이성적으로 '목을 쪼으다'는 말에는 분노할 수 있으니까 분노를 하는걸까.


이러다가 정신을 아예 놓게될까 아니면 득도의 경지에 올라설까. 딱따구리가 뇌와 심장을 '쪼아'먹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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