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해야 살아남는다

by 새벽달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해외 혼자살이 근무 중 우울증이 생겼고, 1년이 채 안되어 자살할 날짜를 생각하고

급기야 화가나고 답답해 미칠 것 같을 때마다 내 팔을 그어 피를 보고야 잠들었다.

그때는 오히려 출근이 나의 해방구였다.

누구라도 보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 내가 우울한지 모르는 상사가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일을 미친듯이 했고, 일을 벌리고, 안해도 될 일도 열심히 했다.

날 각별히 챙겨주는 상사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밝았다.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밖에서만큼은 나의 썩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왔는데,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롭다..라는 것을 알았다.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맞은 생일은 지금까지와 같이 또 혼자였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해도 마음은 나아질 틈이 없었다.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이제는 아파서 아픈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에서는 난 아직 명랑했다.

한 상사분은 날 보고 한번 '어머, **씨는 어쩜 그렇게 항상 에너지가 넘쳐??항상 웃으면서 들어오잖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건 소셜 마스크에요~~~하고 웃고 넘어갔지만,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에게 '명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나의 사정을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았다.

아직 뭔가를 말하기엔 나 자신도 정리가 안된 스토리에, 자세히 말하면 한도끝도 없고, 간단히 말하면 지나치게 짧았다.


언제부터 나는 나약해졌을까.

마음은 웬지 나을 것 없이 계속 썩고있는 것 같았고, 나아지고 싶은데 나아지지 않았다.

약을 오래 복용하다보니 큰 슬픔도 기쁨도 못느끼는 로봇이 되어갔다.

아, 그렇게 점점 로봇이 되어가는 순간 나는 조금은 편해졌고, 많이 답답했다.

뭘 해도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연애도, 책도, 영화도, 운동도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내 마음을 알아줄 또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연애는 얄팍했고 그 누구도 날 걱정해주지 않았다.

난 그냥 내 몫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지나친 열심은 사람많은 조직에서는 '일하는 척 하려고 너무 오바해' 라는 반응만 이끌어냈다.

일을 해도 성취감이 없었다. 난 성취감의 도파민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일은 적당히 하되, 내 아픔은 숨겨야 하고, 난 누군가 1명이라도 날 이해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시간은 지났는데, 다 잊을 만도 한데, 마음은 자꾸 곪아들어가 답답하고 화가났다.

누군가 차갑게 던진 말 하나에도 집에만 가면 눈물이 났다.

그 후 나는 명랑함을 잃었다.



명랑함을 잃으니 결국 사람들도 조금씩 멀어져갔다.

직장 사람들이라는 얄팍한 관계에서, 적당히 기분좋게, 가벼운 알맹이 없는 얘기만 하는게 최고인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할 말도 없는 점심 시간에 굳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아 혼자 사무실에 있곤 했다.

자꾸 위축되었고, 괜히 자신감도 없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간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까지 겹쳐, 상사들도 날 관심병사 취급했고 인사과도 내 편이 아니었다. 업무 중 부당하고 억울한 것이 있어도 '넌 가만히 있어', '문제 일으키지 마'라는 전제 하에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한 명도, 직장이라는 곳에 내 편은 없었다.

내가 아직 명랑한 사람이었을 때 봤던 사람들은 여전히 날 병신처럼 보지 않는다는 것(적어도 겉으로는)만 유일한 위로였다. 무력감은 나를 더 더 위축되게 했고, 업무로 증명한답시고 열심히 해도 인사과에서는 나를 소환해 '열심히 하지 말아라, 업무로 증명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건강이나 챙겨라'라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명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때는 너무 큰 충격과 아픔에 내가 덜 '우울'했을 수도 있다.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났던 것이다.

진짜 '우울'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날 잠식해왔다. 명랑한 척이라도 할 에너지가 없었다.

난 다시 명랑한 사람이 되고싶다. 기분좋은 에너지를 풍기는, 오바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남들한테 시덥지않은 웃긴 얘기나 하고, 내 뒷면은 보여주지 않고 싶다.

내 지난 과오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난 나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는 것은 정말 무심한 말이다. 적어도 직장에선 남의 시선이 나의 평판이다.

밖에선 무조건, 명랑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휴직을 했다. 이번엔 약을 점차 끊어보려고 한다.

일부러라도 웃을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웃기긴 하더라)

명랑함이 가면일지언정, 내가 날 돕지 않으면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

연말까지 나의 목표는, 집나간 명랑함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어디에서라도 살아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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